내가 본 김병관

이종세
이종세전 동아일보 체육부장·한국체육언론인회장
1976년 경력 기자로 동아일보에 입사해 지방부, 체육부를 거쳐 2007년 스포츠사업팀장(국장급)을 끝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그 30여 년간 화정 회장님을 가까이서 모신 적은 없었지만 동아마라톤과 관련해선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화정 회장님은 선대의 업적이어서인지 동아마라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한마디로 동아마라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화정 회장님의 노력과 집념, 그리고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대회 스폰서 확보와 우수 선수 초청, TV 중계에 신경을 쓰셨고 대회 하루 전 열리는 개회식과 대회 당일의 시상식에는 꼭 참석하셨다. 1992년 8월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자다음 해 1월 화정 회장님은 3억5000만 원의 동아일보 출연금을 포함해 각계의 성금으로 올림픽 제패 기념 동아마라톤 꿈나무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매년 동아마라톤대회의 재정을 지원하고 우수 선수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 또한 2005년엔 제주 서귀포에 동아마라톤센터(대지 7866㎡, 연건평 2053㎡)를 지어 선수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동아마라톤이 서울국제마라톤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톱10’ 반열에 오른 것은 2004년 대회에서 거트 타이스(남아공)가 2시간 7분 6초로 그해 세계 6위의 우승 기록을 세우면서다. 서울국제마라톤은90년 가까운 오랜 역사와 전통, 대회 기록(2시간 5분 13초·2016년세계 4위 우승 기록), 4만 명이 넘는 참가 인원, 188개국에 TV 중계하는 미디어 커버리지 등 세계 10대 마라톤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최상급 마라톤 대회에 부여하는 ‘골드 라벨’ 칭호 역시 9년째 받고 있다. 국내 경쟁지들이 주최하는 여타 마라톤 대회와는 품격과 차원이 다르다고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이 없는 이유다. 동아마라톤의 발전에는 늘 화정 회장님이 계셨다.

1994년 3월 체육부 차장 때 일이다. 경주에서 열린 동아국제마라톤에서 김완기 선수가 2위에 오르며 2시간 8분 34초의 한국 최고기록을 수립했는데 조선일보가 42.195km의 코스가 짧게 설정됐다고 사회면과 체육면에 대서특필했다. 전날 밤 KBS가 9시 뉴스에서 “코스가 짧은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조선일보가 이를 확인하지않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때 충정로 사옥 20층에 계시던 화정 회장님은 8층 체육부에 내려오셔서 “대회를 주관한 대한육상연맹이 코스 실측을 다시 해 짧은 것이 사실이라면 지면을 통해 잘못을 인정하자”고 하셨다. 대담하고 솔직 담백한 말씀이었다. 나도 그해 1월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공인해준 코스인 만큼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대한육상연맹의 코스 재실측결과를 기다렸다. 3월 23일 조선일보 등의 육상 담당 기자들이 입회한 가운데 굴렁쇠를 굴려가며 재는 롤러테이프 방식으로 코스를 측정한 결과, 오히려 12.5m가 긴 것으로 나왔다(마라톤 코스는 1cm라도짧으면 안 되지만 42.195m 이내의 긴 것은 허용 오차여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에 동아일보는 3월 24일자 1면 왼쪽 상단에 계기판 숫자가 선명한 사진과 함께 ‘동아마라톤 코스 이상 없었다’는 제하의 기사를 사이드 톱으로 실었다.

결국 조선일보는 약 열흘에 걸친 동아일보와의 지면 공방 끝에 3월 30일 박갑철 체육부장이 ‘기록의 엄밀성을 위해 문제 제기를 했다’는 내용의 변명성 칼럼을 실었고 동아일보는 다음 날 김용정 체육부장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독자 앞에 설 수 있어 기쁘다’는 내용의 반박 칼럼을 게재해 코스 시비를 마무리했다. 며칠 뒤 화정 회장님은 김정웅 사업부장을 통해 체육부 회식 비용으로 금일봉을 보내주셨다.

1991년 3월 잠실 코스에서 황영조라는 걸출한 스타를 발굴해낸 동아마라톤은 교통 혼잡을 피해 1992년 3월 강원 춘천 코스를 거쳤다가 1993년부터 1999년까지 7년간 경북 경주에서 대회를 치렀다.국내 최초로 일반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동호인이 즐기는 마스터스마라톤의 돌풍도 함께 주도했다.

그러나 경주는 매년 늘어나는 마스터스 참가자들을 수용하기에는 시설이 좁고 숙소도 모자라 장래를 위해 코스 이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더욱이 수도 서울은 마라톤 대회가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 조선일보가 춘천에서 서울로 대회 장소를 먼저 옮길 경우 동아마라톤의 서울 입성은 영원히 무산될 수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세계 어느 도시든 1개의 풀코스 마라톤 대회만 허용해 조선일보가 선수를 칠 경우 동아마라톤은 지방 대회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2000년 1월 1일은 새로운 천년의 시발점으로 동아일보의 광화문 신사옥 준공도 계획돼 있었다. 1999년 3월 동아마라톤이 끝난 뒤 나는 화정 회장님께 “이제 동아마라톤 코스를 서울로 옮겨 뉴욕,런던, 베를린 같은 도심 달리기 축제로 발전시키려고 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화정 회장님은 “서울 도심에서 마라톤 행사를 치를 경우 교통 체증을 유발하고 이것이 시민 원성과 독자 이탈로 이어질수 있다”며 걱정스러워 하셨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정 회장님은 “외환위기 사태로 1998년 없앴던 국제 부문을 되살려 2000년 대회부터 국제 대회로 복원하고 광화문 광장 앞을 출발하는 새로운 코스도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이 같은 결정은 당시 사장실 실장이었던 김재호 상무가 화정 회장님을 설득한 것이 주효했고, 화정 회장님의 용단은 결과적으로 동아마라톤의 세계 톱10 진입의 계기가 됐다. 매년 3월 서울 광화문 본사 앞~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마라톤 축제가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사실 화정 회장님께서는 동아마라톤 경주 코스의 서울 이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1998년 당시 이원식 경주시장은 매년 봄 경주에서 동아마라톤이 열리는 것에 대한 감사의 징표로 화정 회장님께 경주 명예시민 증서를 드리려고 했으나 대상이 외국인으로 국한돼 있어 무산됐었다. 하지만 이 시장은 그해 관련 조례를 내국인에게도 줄 수 있도록 바꿔 1999년 화정 회장님에게 명예시민증서를 수여했는데1년도 안 되어 코스를 서울로 옮기게 됐으니 개인적으로는 이 시장과경주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셨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때문인지 화정 회장님은 2000년 3월 동아국제마라톤의 서울 이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매년 10월 경주에 마스터스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도록 지시했다.

2002년 월드컵 축구 대회를 앞둔 2001년 9월, 이명박 서울시장을 설득해 대회 명칭을 동아국제마라톤에서 서울국제마라톤으로 바꾸고 서울시가 동아일보와 함께 대회 공동 주최로 참여하게 됐다. 서울이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국내 어느 도시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 인지도도 높았기 때문이다. 화정 회장님은 평소 ‘동아’라는 이름에 애착을 보이셨다.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리러 일민미술관 2층 전명예회장실에 갔는데 의외로 명칭 변경 건을 흔쾌히 받아들이시면서 “수고했다”고 칭찬하셨다.

2003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83주년 기념식에서 나는 동아마라톤의 성공적인 서울 이전과 개최의 공로 등으로 좀처럼 받기 힘든 ‘동아대상’을 수상했다. 기념식이 끝나고 명예회장실에 인사를 갔는데 “상금은 얼마나 받았나?” 하고 물으시길래 “500만 원 받았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동그라미 하나는 더 있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하셨다. 화정 회장님은 면담 중 들어온 손세일 전 국회의원과 함께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중식당 싱카이에서 공부가주(孔府家酒)를 곁들인 축하 점심을 사주셨다. 그때 “동아마라톤이 뉴욕마라톤 못지않은 국제 마라톤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2년부터 중국의 CCTV와 일본의 TV도쿄가 중계해온 서울국제마라톤을 2006년부터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유로스포트(케이블TV)가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56개국에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때 소식을 전해 들은 화정 회장님은 내게 전화를 걸어 “이 국장, 수고 많았어”라고 격려해 주셨다. 회장님은 이렇게 아랫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분이었다.

화정 회장님. 이제 3월이면 회장님의 노력과 열정이 배어 있는 서울국제마라톤의 행렬이 어김없이 광화문광장을 떠나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향해 달립니다.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