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병관

김승유
김승유전 하나금융지주그룹 회장
나와 동아일보의 인연은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때 맺어졌다. 당시 나는 30대였다. 백지광고 사태가 일어났을 때 동아일보 사옥 정문은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용기 있게 동아일보를 찾아가 개인 자격으로 내 이름의 백지광고를 싣고 왔다.당시 돈으로 50만~100만 원 정도 되는 큰 금액이었던 것 같다. 일반회사원의 한 달 치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돈이었다.

내가 동아일보에 백지광고를 게재한 것은 선친 때부터 평생 동아일보를 구독해 왔고 동아일보가 항상 올바른 길을 간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광고를 내러 갔을 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아일보 사옥 앞에는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저마다 큰돈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동아일보를 지지하려는 사람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결국 동아일보와 같은 신문이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때 이후 동아일보는 광고 압력이든, 세무조사든 꿋꿋하게 버텼다. 언론이 이렇게 힘들게 자기의 정도(正道)를 지켰다는 점은 우리 신문 역사에 길이 남아야 한다. 사회 정의를 지키는 게 바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이 동아일보라는 매체를 통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화정 선생은 나보다 고려대 7, 8년 정도 선배이고 연배도 그 정도위다. 나 스스로 고려대와 인연이 많아 대학 동문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 함께 여러 번 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워낙 격의 없이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셨다는 점이다. 화정 선생은 실제로 과묵한 편이고 별로 말씀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여러 화제들을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누셨다. 특히 젊은 사람들과 통하는 면이 많았다. 물론 술이 상당히 세셨다는 것도 나이나 세대를 초월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화정 선생은 동아일보 기자들과도 많은 얘기를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젊은 언론인들과 대작을 하면서도 체력적으로 밀리지 않으셨다는 일화부터 혈기왕성한 기자들이 술자리에서 거침없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잘 받아주셨다는 등의 얘기를 듣곤 했다.

화정 선생에 대한 또 다른 좋은 기억은, 아마도 20년 전 쯤인가, 동아일보 기자들과 함께 북한에 가셨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정 선생은 ‘어려운 남북 관계를 해결하는 데 있어 왜 정부만 중심이 되어야 하느냐, 민간에서 특히 언론에서 이 문제를 같이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화정 선생 때의 동아일보는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심도 있게 다뤘다. 선대(先代)에서부터 이런 민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집안이어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화정 선생은 나라의 장래에 대한 걱정을 상당히 많이 해 오신 분으로 알고 있다. 동아일보 정도의 신문이라면 당연히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대해 사주(社主)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화정 선생을 비롯한 동아일보 사주는 항상 그래 왔다.

화정 선생은 문화에 대한 이해도 뛰어났다. 내 기억에는 화정 선생 스스로 판소리를 잘하셨다. 술자리에서 화정 선생이 직접 판소리를 한두 곡조 꺼내시는 걸 가끔 들었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어 있어야 가능할 텐데 노래를 부르고 추임새를 넣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화정 선생은 국악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꾸준히 우리 국악계를 지원했다.

한국 미술 작가에 대한 회고전도 동아일보가 제일 먼저 시작했다. 다른 신문들은 한참 뒤에 따라왔다. 이런 모습을 보며 신문의 역할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언론에서 이런 문화적인 향기가 많이 사라져 안타깝기만 하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한국 주류 언론들은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1987년 6월 항쟁 때 내 사무실이 있던 을지로 입구는 시위의 중심가였다. 당시 기자들은 시위대에 섞여 있으면서 투사같이 취재했다. 기자들은 실제 피를 흘리면서 자기 스스로를 던졌다. 그때 곤봉을 든 경찰을 피해 사무실로 기자나 시위대가 찾아오면 그들을 숨겨주기도 했다. 1987년 동아일보는 민주항쟁의 맨 앞에 있었고 그때 발행인은 화정 선생이었다.

화정 선생을 추모하는 기회에 동아일보를 비롯한 요즘 언론에 제언을 좀 하고 싶다. 처음에 언론사에 입사했을 때, 언론인들은 사회를 위해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가 있었을 것이다. 언론사가 전반적인 사회의 큰 방향을 제시해 주려면 예전에 화정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사주와 기자들의 생각이 맞아야 한다. 사회 비판에만 그칠 게 아니라 언론이 자기 스스로 사회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정 선생의 생각과 행동처럼 말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