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병관

김종량
김종량학교법인 한양학원 이사장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회장님 빈소를 찾아 조문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10년을 되돌아보니 겉으로는 소탈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마음속에 굳은 심지를 갖고 계셨던 회장님의 생전 모습이 떠오릅니다. 회장님 그 마음속 심지가 한국 현대사의 전환에 큰 획을 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큰 화제입니다.그런데 고문치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하고 연일 대서특필을 해서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게 한 것은 바로 동아일보였습니다.1987년은 회장님께서 동아일보의 발행인이 되셨던 해이기도 합니다.물론 시대적 사명감을 지닌 동아일보의 여러 기자들이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였지만, 김병관 회장님이 발행인으로 계시지 않았다면 그 진실은 묻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정부의 보도 중지 압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연일 기사화하여 사회적 관심사로 이끌어낸 것은 회장님의 마음속 굳은 심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회장님을 잘 아시는 분들은 모두 입을 모아 회장님의 깊은 속과 그 안에 자리 잡은 심지 곧음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회장님의 옳고 강건한 마음은 아마도 조부이신 인촌 김성수 선생님과 부친이신 김상만 회장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촌 선생님께서는 건국 초기 제2대 부통령이 되셨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재선을 하기 위해 잘못된 정치적 파행을 거듭하자, “민주주의를 유린한 행위”라며 부통령을 그만두셨습니다. 이처럼 부통령직도 그만둘 수 있는 인촌 선생님의 심지 곧음을 회장님께서 그대로 물려받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회장님과 저의 인연은 고려대와 한양대라는 대학을 통해 맺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대를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그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군데가 짜릿해지기도 합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회장님의 조부이신 인촌 김성수 선생님과 저의 외조부이신 근촌 백관수 선생님은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근촌 선생님은 동아일보 사장을 지내시기도 했지요. 지금도 고창에는 두 분을 기리는 동상이 나란히 서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숭앙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회장님과 저의 인연이 조부님들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깊은 인연에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회장님께서 고려중앙학원의 이사장으로 계실 때, 100주년 기념식에 초대받아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이사장님의 치사 중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의 인프라나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길 소프트웨어이고 프로그램”이라는 요지의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한양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며 대학 경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교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제 총장직을 물러나 법인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말씀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1994년 그린스카우트(녹색소년단)가 출범할 때의 일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린스카우트 출범은 청소년들이 자연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환경 교육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였습니다. 500여 개 초중고교가 참여했는데, 그때 회장님과 제가 부총재를 맡았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그린스카우트에 관한 내용을 연일 기사화해 보도했고 그린스카우트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회장님은 “그 나라의 청소년을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그 무렵은 우리 사회에서 환경 의식이 많이 부족할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회장님은 환경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고, 동아일보의 캠페인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회장님은 언론인으로서도, 그리고 대학 경영자로서도 참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판단력과 옳다고 생각하면 실행하실줄 아는 결행력까지 갖추셨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판단력은 있되 실행력이 부족한 이도 있고 올바른 판단은 하지 못하고 밀어붙이는 실행력만 있는 사람도 있지만 회장님께서는 이러한 두 가지의 능력을 모두 갖추고 계셨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이겠지요.

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모든 장례 절차를 간소화해서 대학의 학사 일정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셨다는 내용의 보도를 본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며 크게 감명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 회장님의 올곧은 심지를 다시 한번 만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기도 해서 그 혼란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때에 올바르고 굳은 심지를 지니셨던 회장님이 더욱 간절히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늘 많은 일을 안고 평생을 부지런히 뛰어다니셨던 회장님, 그곳에서 부디 평안히 잘 쉬시기 바랍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