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병관

신수정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
화정 김병관 회장의 제창으로 1996년 제1회 동아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국제음악콩쿠르였다. 한 해 전인 1995년 초부터 콩쿠르 기획 작업에 들어갔고 여기에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국내 언론사가 최초로 창설한 동아국제음악콩쿠르는 본디 일민 김상만 회장 때부터 아이디어가 나온 바 있었다. 1961년 동아음악콩쿠르가 시작된 뒤 피아니스트 정진우 선생을 비롯한 여러 음악계 인사들이 일민 회장께 “국제음악콩쿠르도 해야 한다”고 제안을 드렸다. 1994년 일민 회장이 타계하시고 화정 회장 대가 되어 ‘이제는 때가 왔다’는 생각으로 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것은 수직 상승한 국내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실력에 상응하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들이 나오고 있는데, 1961년부터 동아일보사가 동아음악콩쿠르를 개최해 온 것에 크게 힘입었다. 그 덕분에 한국인 음악가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었고,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화정 회장님 때는 동아국제음악콩쿠르도 열리게 되었다. 이런 바탕에 씨가 뿌려지면서 한국이 클래식 강국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은 많은 국내 음악가들이 국제음악콩쿠르 심사에 참여하지만, 내가 1991년 처음 뮌헨국제콩쿠르 심사를 갔을 때만 해도 국제콩쿠르 경험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때까지 내가 도쿄국제콩쿠르를 비롯한 여러 콩쿠르를 심사하면서 모아두었던 규정집, 요강 등을 모두 동아일보 사업국에 제공했다.

또한 국내외의 아는 인맥들을 동원해 가능한 한 많은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도쿄콩쿠르 사무국의 다카모리 미야코 씨, 제네바에 있는 국제음악콩쿠르연맹 사무국장 레나테 로네펠트 씨 등이 자문에 응하도록 했고, 심사위원 선정과 규정 정리 등에도 지식을 보탰다. 당시 국제음악콩쿠르연맹 회원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이 까다로웠지만, 동아일보라는 매체의 권위 덕분에 첫해부터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동아국제콩쿠르는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매년1개 부문씩 열렸는데 첫해는 피아노 부문부터 시작했다.

콩쿠르 창설기념식은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여기서 김병관회장은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100년 만에 우리 음악계의오랜 숙원이던 국제음악콩쿠르를 개최하게 돼 감회가 깊다”며 “세계적인 콩쿠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콩쿠르로 육성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개최한 1996년 동아국제음악콩쿠르는 국내에서 처음 치르는 국제음악콩쿠르였음에도 매끄러운 운영과 진행, 참가자들의 수준 높은 연주로 성공을 거뒀다. 콩쿠르 기간 내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3층까지 청중이 들어찼다.

시상식에서 김병관 회장은 콩쿠르를 협찬한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함께 6위부터 번갈아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며 일일이 축하를 건넸다.

김병관 회장은 가회동 자택이나 덕소 별장에서 종종 뵙기도 했는데 아버님을 닮으신 풍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민 회장과 마찬가지로 음악가들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음악가들 모두가 그런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국제음악콩쿠르를 개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동아음악콩쿠르를 운영하고 있는 동아일보로서는 이미 국내 최고인 콩쿠르에 안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안주하길 거부하고 국제음악콩쿠르를 통해 한 단계 더 발돋움했다. 그것은 화정 김병관 회장의 뜻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서울국제음악콩쿠르(동아국제음악콩쿠르에서 이름이 바뀜)에 오는 해외 심사위원들은 모두 한국의 음악 수준에 경탄하고 돌아간다. 국제 음악계에서 한국 음악가들에 대한 인식은 내가 처음 국제음악콩쿠르를 심사하러 나갔던 1991년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한국 음악인들의 수준이 너무나 높아졌다. 이 모든 것이 동아음악콩쿠르, 그리고 김병관 회장이 창설한 동아국제음악콩쿠르 덕분에 축적된 역량의 결과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동아국제음악콩쿠르의 ‘원년(元年) 우승’을 차지했던 이스라엘의아비람 라이케르트 씨는 현재 서울대 교수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의 제자들이 2017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입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일민 회장과 화정 회장께서 그 토양을 다듬고 씨를 뿌린 데 대해 그 소중함을 거듭 느끼게 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