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병관

신성일
신성일영화배우
조선일보, 한국일보는 영화상을 매년 시상해 그쪽 사주들과는 자연스럽게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영화보다 형편이어려운 연극을 후원하는 동아연극상은 있어도 영화상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영화는 자체적으로 수익을 많이 올리던 문화 분야인 데다 다른 언론사가 영화상을 오랜 기간 시상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동아로서는 영화상을 하나 더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화정은 예술 분야에서도 어렵고 소외돼 있던 연극과 국악 지원에 열과 성을 쏟았다.

화정과의 만남은 내가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1기로 그와 동기생이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1기에는 영화인들이 많이 들어갔다. 나를 필두로 배우 신영균, 강수연, 영화감독 임권택, 촬영감독 정일성씨 등도 있었다. 영화 외에 다른 각계 저명인사로는 윤세영 SBS 회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이정일 전 의원, 김명하 김앤에이엘 회장 등 이 같이 수업을 들었다.

저녁에 1, 2교시 수업이 끝나고 나면 인근 술집으로 몰려가 ‘3교시 수업’을 하곤 했다. 가끔은 골프도 쳤다. 김병관 회장은 ‘딩동댕’이라는 게임을 창안해 전파했다. 한 팀당 일정액의 기금을 조성하고 게임 성적에 따라 배당을 받는 방식이다. ‘딩’은 타수에 관계없이 먼 곳에서부터 쳐서 그린에 가장 먼저 올리는 ‘퍼스트 온’이 갖는다. ‘동’은 핀에 가장 가까이 붙이는 ‘니어리스트’가, ‘댕’은 컵에 ‘퍼스트 인’을 하는 사람이 차지한다. 그러나 핸디캡이 낮은 사람은 딩동댕 가운데 한 종목만 상금을 타갈 수 있다.

이렇게 18홀이 끝나면 핸디캡에 관계없이 대개 플레이어 한 명당 10만 원 안팎에서 고르게 상금이 돌아가게 된다. 물론 골프 실력이 좋은 사람이 조금 더 가져가게 되지만, 상금을 똑같이 나눠 갖는100% 평준화 방식으로 하거나 완전 뽑기 식으로 운에만 맡기면 게임을 하는 재미가 없다. 실적과 분배를 적절히 안배한 딩동댕 게임은 아마추어들의 경기에서 유행으로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팀을 이뤄 뽑기를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홀에서는 딩동댕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딩동댕 게임에 가요처럼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 부를 때마다 로열티가 지급되는 방식이 적용됐다면 딩동댕 게임을 만들어 보급한 화정은 거부(巨富)가 됐을 것이다.

내 형수(이영춘)와 화정의 부인(안경희)은 경북여고 동창이다. 그래서 나는 형수를 통해 화정의 집안 소식도 가끔 들었다.

나는 2008년 화정이 작고했을 때 문상하지 못한 것을 지금까지도 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당시는 내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년간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경북 영천에 칩거하며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있을 때였다.

나는 2017년 6월 폐암 3기 진단을 받았으나 방사선 및 항암치료를 통해 상태가 호전돼 수술은 안 하기로 했다. 폐암의 경우 수술을 하면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의사가 폐암의 원인을 규명하는 문진을 하면서 “담배를 언제까지 피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1982년에 골프를 시작하면서 담배를 끊었다. 의사는 “담배가 아니면 스트레스가 원인인 모양”이라고 말했다. 나는 2년 동안 의정부교도소 1.3평 독방에 갇혀있었다.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다. 화정도 정권과 맞서다 고초를 겪고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화정을 회고할 때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다. 저 세상에서 화정을 만나면 딩동댕 게임을 해보고 싶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