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냉혹한 남북관계 스포츠 무대에서 확인

■ 북한 이미지정치 리포트 / 2026년 5월
 스포츠와 한반도 정세 시각 매뉴얼의 변화
                                           
 스포츠 무대에서 만나는 남북한 선수들의 모습은 오랜 시간 한반도 정세의 거울 역할을 해왔다. 정치와 외교의 영역에서 정리된 관계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시각 자료인 셈이다. 이달 한국을 찾은 북한 여자 축구팀의 행보는 현재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상징적으로 웅변했다.

● 2016년 리우 올림픽: "위대한 몸짓"

2016년 8월 7일 브라질 리우 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개인종합 예선 직후, 한국의 이은주(17)가 북한의 홍은정(27)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언니, 사진 찍자." 홍은정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도마 금메달리스트이자 북한 여자 기계체조 사상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홍은정은 코치의 허락을 받은 후 이은주 옆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이 장면은 외신 카메라에 포착되어 전 세계로 타전됐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이를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라 평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리우 올림픽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순간 1위로 이 셀카를 꼽았다. 국제 스포츠 무대가 만들어 낸 남북 화해의 상징적 이미지였다.

● 2018년: 평화 모드의 정점

2년 뒤인 2018년에는 평화의 이미지가 더욱 적극적으로 연출됐다.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은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했다. 김여정 부부장의 방남과 청와대 방문도 이어졌다. 평창은 스포츠가 정치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표적 사례였다. 같은 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 단일팀(여자농구) 경기장을 찾은 남북 유학생들이 함께 셀카를 찍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됐다.

● 2024년 파리 올림픽: 마지막 화해 이미지

8년이 지난 2024년 여름까지만 해도 이러한 화해의 결은 어렴풋이 이어졌다. 파리 올림픽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 동메달을 딴 한국의 임종훈·신유빈 조와 은메달을 딴 북한의 리정식·김금영 조가 나란히 섰다. 시상식이 끝난 뒤 임종훈이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자, 메달리스트 6명이 모여 함께 셀카를 찍었다. 여자 복싱에서도 동메달리스트인 임애지(한국)와 방철미(북한)가 시상대 위에서 '셀카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포츠 무대의 관성이 작동하고 있었다.

● 2026년 수원: 냉랭한 표정의 북한 선수들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은 지난 5월 17일이었다. 북한 여자 축구 클럽팀인 '내고향축구단' 선수와 스태프 35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한국 취재진과 실향민을 포함한 환영단의 인사에 철저히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특히 입국 현장에서는 결정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북한 선수단이 손에 '여권'을 든 채 검색 게이트를 통과한 것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남북 간 인적 왕래는 특수관계를 반영해 여권이 아닌 '방문증명서'를 사용해왔다. 이번 대회 역시 대한축구협회가 단체 방문증명서 발급을 대리했고 통일부가 이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 즉, 굳이 여권을 꺼내 들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일부 선수들이 한국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여권을 손에 쥐고 지나간 행위는 대단히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올해 개정된 북한 새 헌법 제2조(영토 조항)를 몸소 실천한 셈이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 내부가 아니라 별개의 국가"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였다. 이 같은 행동은 5월 24일 출국 때도 똑같이 반복됐다.

남북협력기금을 지원받은 공동응원단이 폭우 속에서도 열성적인 응원을 보냈고, 내고향축구단은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훈련 도중 잠시 옅은 미소를 보인 순간도 있었지만, 이들은 출국할 때까지 한국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는 끝내 웃음을 아꼈다. 그러나 이들의 표정은 26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마자 180도 바뀌었다. 당과 가족들의 대대적인 환영 속에 꽃목걸이를 걸고 카퍼레이드를 벌인 선수들은 그제야 활짝 웃어 보였다. 한국 카메라 앞에서의 무표정과 여권, 북한 카메라 앞에서의 미소와 꽃다발. 이것이 2026년 5월 북한 선수들이 보여준 극단적인 두 얼굴이었다.

● 2024년과 2026년 사이, 북한 내부의 거대한 변화

이러한 단절은 정치적 흐름에서 이미 예견된 결과다. 북한은 단계적으로 한국과의 절연을 선언해왔다.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를 시작으로, 2023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특수 관계' 개념을 공식 폐기했다. 이어 2024년 1월에는 대한민국을 제1의 주적으로 간주하라는 지시와 함께 대남 기구들을 폐지했고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6년 3월, 제15기 제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며 영토 조항(제2조)을 신설하고 통일 조항(제9조)을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통일부가 이 개정 조문을 공식 확인한 것이 5월 6일이었으니, 영토 조항이 신설된 이후 대한민국을 공식적인 '외국'으로 상정하고 방남한 첫 대규모 선수들이 바로 이들이었던 셈이다.

2016년부터 이어져 온 스포츠 무대의 화해 이미지는 2026년 5월을 기점으로 결정적 단절을 맞이했다. 두 국가 노선이 정치적 선언을 넘어 헌법으로 법제화되기까지 약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면, 그 법제화가 최일선 선수들의 신체적 행위와 표정으로 발현되는 데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목격된 35명의 무표정과 여권 노출은 통제 매뉴얼이 이미 완벽히 구축되었음을 보여주는 시각적 증거다.

● 어떤 표정이 진짜일까

북한 선수단이 보여준 정반대의 표정은 둘 다 '진짜'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지만, 피사체는 자신이 어떻게 기록될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맥락이 요구하는 바에 맞춰 표정을 짓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장례식장에서 울고 결혼식장에서 웃는 것처럼.  다만 선수단 전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은 이 선택이 개인의 감정이 아닌 철저한 정치적 통제의 결과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10년 전 리우에서 홍은정 선수가 코치의 허락을 받아 미소를 지었던 메커니즘과 본질은 같다. 달라진 것은 그때의 매뉴얼은 미소를 허락했고, 지금의 매뉴얼은 냉담을 요구한다는 점뿐이다.

한국과 완전히 돌아서려는 권력의 의지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표정과 시각적 이미지 역시 인위적으로 연출되고 있다. 인천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던 내고향축구단 선수들의 차가운 눈빛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

사진 1. 북한 여자축구 클럽팀인 내고향여자축구단이 17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오는 20일 수원종합경기장에서 수원FC위민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치른다. 인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사진 2.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에서 우승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평양에 귀국해 환영을 받았다고 27일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방남해 수원에서 열린 AWCL 4강전(20일)과 결승전(23일)을 치르고 귀국했다. / 노동신문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