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죽음을 단결로 바꾸는 치밀한 무대 연출
■북한 이미지정치 리포트/ 2026년 4월
-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준공식의 미장센 연출 분석
● 행사 개요
2026년 4월 26일, 평양에서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준공식이 열렸다. 러시아 쿠르스크 탈환 1주년에 맞춘 날짜 선택이었고, 준공식에 맞춰 방북한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국가두마 의장과 벨로우소무위원장은 준공식에 이어 야외 추모음악회와 유가족 위로연까지 직접 챙겼다. 노동신문은 약 80여 장의 사진과 김정은의 연설 전문을 27일자 신문에 실었다. 조선중앙TV는 1시간 30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해 공개했다.

사진 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월27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장관이 이끄는 러시아 내무부 대표단이 26일 해외 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을 찾아 전사자들을 애도했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중앙 TV캡처.
이날 연출된 일련의 장면들은 단순한 보훈 행사가 아니다. 파병으로 죽은 청년들에 대한 유족들과 사회 구성원들의 슬픔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처리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숙제 앞에서 평양이 어떤 해법을 갖고 있는지를 무대 연출 형식으로 제시한 자리였다.
● 시간 연출 - 일몰에서 밤으로
이 행사가 보여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시간 선택이다. 준공식은 해가 지는 시간대(sunset)에 시작되어 야간 추모음악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낮의 행사에 비해 밤의 행사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빛나게 연출할 수 있다. 동시에 밤은 종교적 시간이다. 의례, 추모, 영혼, 한(恨) 이라는 단어에 어울린다. 평양은 이 행사를 국가의 시간이 아니라 영혼의 시간으로 설정했다. 야간 음악회의 눈물 흘리는 유가족 사진을 보면, 한국 사람이면 누군가 익숙한 형식인 ‘굿’이 떠오른다.
쿠르스크 전장에서 파병되어 죽은 청년들. 시신조차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노동신문 연설문에서 김정은이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데려다 우리 국기를 덮어 꼭 따뜻한 조국땅에 묻어주자 했던 그 소원"을 강조한 대목은, 역설적으로 그 소원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이런 죽음은 유가족과 공동체에 응어리를 남긴다. 한국 무속의 언어로 말하면 '풀어주어야 할 한'이다. 북한은 이 한을 개별 가정의 슬픔으로 두지 않고, 국가 차원의 의례로 끌어올려 집단적으로 풀어내는 무대를 만들었다.
● 피에타의 차용 - 조각이 말하는 것
기념관에는 희생된 병사들을 형상화한 상징탑과 조각이 설치되었다. 특히 기념관 실내에 세워진 조각의 구도가 묘했다. 김정은이 흰 국화꽃을 들고 걸어가며 위를 바라보는 지점에 있는 조각의 사진을 들여다 봤는데, 개인적으로 서구 미술의 대표 도상인 ‘피에타(Pietà)’와 유사했다.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의 도상이다.
김정은의 연설문에서도 이 도상학은 언어로 반복된다. "어머니 조국에 바칠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조국의 한줌 흙이 될것을 다짐하며", "조국은 참전용사들이 가장 신성하게 간직하고 항상 경모해마지 않던 우리 수도에…그들 모두를 따뜻이 품어안을 시각" - 죽은 아들을 품에 안는 어머니의 형상이 텍스트와 조각 양쪽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여기서 어머니는 누구인가? '조국‘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 조국을 인격화한 존재는 결국 김정은으로 수렴된다. 죽은 청년 어머니조국의 품 → 그 품을 대표하는 지도자. 이 삼단 구조가 이미지와 언어 양쪽에서 정교하게 배치된다. 피에타는 본래 기독교 도상이지만, 평양은 이 보편적 슬픔의 구도를 빌려와 체제 충성의 서사로 재코딩했다.

사진 2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 베드로 대성당, 로마)
●고개 숙인 지도자 - 권위의 새로운 문법
김정은은 이날 행사에서 영상으로 확인되는 것만 서너 차례 이상 고개를 숙였다. 이는 평양의 시각 정치에서 중요한 변화 신호다. 전통적으로 북한 지도자의 신체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사열을 받고, 현지지도를 하고, 손을 들어 인민을 향해 응답하는 모습이 표준이었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서 김정은은 죽은 자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것은 권위의 약화가 아니라 "나도 너희의 슬픔을 함께 나눈다"는 메시지를 시각화함으로써, 지도자는 권력자에서 공동 애도자의 자리로 이동한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자식의 죽음이 최고지도자가 직접 고개를 숙일 만한 가치를 가진 죽음으로 격상된다. 이는 보상보다 강력한 위로 장치다. 동시에 이 장면은 김정은을 '정(情)이 있는 지도자'로 재포장한다. 핵·미사일의 차가운 이미지에 인간적 온기를 덧입히는 작업이다.
●인공기 기둥과 건축적 웅장함 - 공간의 압도
행사장 곳곳에는 인공기를 게양한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도열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국가화하는 장치다. 참석자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든 국기와 마주치게 만듦으로써, 개인의 슬픔이 국가의 서사 안에 자동적으로 위치되도록 유도한다. 사진도 참석자 뒤쪽에 항상 인공기가 걸리도록 촬영하게 된다.
●러시아의 동참 - 외부 시선의 차용
볼로딘 의장과 벨로우소프 장관의 참석, 그리고 푸틴 대독 편지는 이 행사에 국제적 정당성의 외피를 입힌다. 평양 단독으로 치르는 추모 행사였다면 내부 선전용으로 평가절하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고위 인사들이 참석해 함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들어가는 순간, 이 행사는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는 의례로 격상된다. 또한 이는 향후 북·러 군사협력의 정치적 토양을 다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죽은 자들의 피로 맺어진 동맹이라는 서사는, 단순한 외교 협정보다 훨씬 강력한 결속력을 만든다.
●현장음의 차단 - 설득의 단성성
이번 행사 영상에서도 역시 현장의 자연음, 특히 유가족의 울음소리나 군중의 반응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잘 정돈된 음악과 김정은의 연설이 사운드 트랙 전체를 지배한다. 이는 의도적 선택이다. 진짜 슬픔의 소리(통곡, 흐느낌, 절규)가 그대로 노출되면 통제 불능의 정서가 발생할 수 있다. 슬픔이 너무 생생해지면 "왜 죽었나"라는 질문으로 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 슬픔을 대신하고, 정돈된 추모 의례가 통곡을 대체한다. 이렇게 되면 슬픔은 안전하게 관리된 형태로 전달되고, 보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동참하면서도 비판적 거리를 두기 어려워진다.
● 자폭과 자결의 미학화 - 가장 위험한 대목
이번 연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김정은이 직접 언급한 '자폭의 폭음'과 '자결의 길'이다.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될 상황에 처한 북한 군인들이 자폭·자결했다는 사실을 공식 무대에서 영웅적 행위로 의미 부여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다. 평양은 이 죽음들을 앞으로의 군인 윤리의 표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노동신문 연설문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 보수를 바라지 않는 헌신, 이것이 우리 군대의 충실성의 높이에 대한 정의로 될것"이라고 적시한다. 자폭이 예외적 비극이 아니라 모범적 선택지로 코드화되는 순간이다. 장기적으로 이 메시지는 향후 파병이나 충돌 상황에서 북한 병사들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시에 국제사회와 한국 사회에는 북한군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있어 새로운 분석 변수가 추가된 셈이다.
● 결론 - 분열이 아닌 단결의 무대로 기획되다
파병으로 죽은 청년들의 존재는 본래 체제에 잠재적 위험요인이다. 유가족의 분노, 동년배의 두려움, 사회적 동요가 잠재되어 있다. 평양은 이 위험을 정면으로 다루는 대신, 무대와 의례를 통해 의미를 바꿔버리는 길을 택했다. 시간(밤), 공간(웅장한 건축), 도상(피에타), 신체(고개 숙인 지도자), 외부 시선(러시아), 사운드(통제된 음악), 언어(어머니조국)가 한 방향으로 정렬되었고, 어느 하나도 우연이 아니다. 북한의 이미지 정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정교하다는 것을 이번 행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