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탱크 위의 13세 김주애, 권력 세습 시각적 선언
■북한 이미지정치 리포트/ 2026년 3월
1960년 8월 25일. 김정일, 18세. 제105탱크 사단. 탱크.
2010년 1월 6일. 김정은, 25세. 제105탱크 사단. 탱크.
2026년 3월 20일. 김주애, 13세. 탱크.
김일성 이후 북한 후계자들이 탱크에 오른 시점과 당시의 추정 나이이다. 세 장면 사이의 간격은 각각 50년과 16년이다. 숫자는 줄었고, 나이도 줄었다. 북한은 김정일의 선군 혁명 영도가 1960년 8월 25일 제105탱크 사단 방문에서 시작됐다고 선전해왔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후 첫 행선지로 같은 제105탱크 사단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김정일의 선군 정치 유훈을 따르겠다는 것을 같은 장소, 같은 방식으로 보여준 것이다.
2010년 1월 6일,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지켜보는 가운데 탱크를 직접 몰았다. 노동신문에도 사진이 실렸지만 아무도 당시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얼굴이 너무 작게 찍혔고 설명에 이름도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김정은의 사진을 처음 공개한 것이 탱크 부대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엔 13세 소녀다. 나이가 어릴수록 장면이 주는 충격은 커진다. 13세는 탱크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어색함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그 시선이 멈추는 순간, 메시지는 이미 전달된다.
1. 탱크를 내세우는 문법
북한에서 군사 관련 이미지는 언제나 후계자를 알리는 방식이었다. 김정일은 전방부대 시찰과 무기 수여 장면으로 군 통수권자의 이미지를 쌓았다. 군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총과 망원경이 등장했다. 이 소품들은 김일성이 사망하고 5개월이 지난 1995년 1월 2일부터 시작되어 김정일 시대 내내 이어졌다. 기념사진에서 김정일 오른쪽 또는 바로 뒷줄의 병사는 공통적으로 쌍안경을 들고 있었고, 뒷줄 병사들은 은빛 총을 들고 있었다. 쌍안경과 총은 김 위원장이 중대급 부대에 주는 선물이자, 외부의 침입자를 경계하고 격퇴하자는 상징으로 이해되어왔다.
이 의식은 2008년 8월, 김정일 건강 이상설이 불거진 이후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2008년 8월 11일자 노동신문사진이었다. 지도자의 건강이 흔들리자 총을 들어 전달하는 의식도 사라진 것이다. 김정은은 권력을 받은 후 2012년 2월 7일 해군 796부대를 시찰하면서 이 의식을 부활시켰다. 대를 이어 혁명을 계승하겠다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군부의 충성과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주애는 올 해 직접 총을 쏘는 장면을 연출했다.
총과 함께 북한이 전통적으로 활용한 군사 관련 상징이 탱크다. 북한은 1960년 8월 25일 김정일이 김일성과 함께 근위 서울류경수 제105탱크 사단을 방문한 날을 선군혁명 영도의 시작으로 선전해왔다. 단, 이것은 2005년에 소급해서 만들어진 공식 서사다. 선군정치의 실제 시작은 1995년 1월 1일 다박솔 초소 시찰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선군정치 등장 초기에 이날을 선군정치의 기원으로 내세웠으나, 2005년 8월 노동신문 기사를 통해 기원을 1960년으로 앞당겼다. (한국경제, 「선군절 10돌…김정일 트레이드마크 선군정치」, 2023.8.25.) 규모가 작은 다박솔 초소 대신 북한군 최고의 상징인 탱크 사단을 선군정치의 발원지로 교체한 것이다. 군사적 업적이 없는 김정일에게 최고사령관 직책에 걸맞은 군 관련 역사를 만들기 위한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당시 기사는 전하고 있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후 첫 행선지로 같은 제105탱크 사단을 선택한 것은 그 서사를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선언이었다.
2. 3주 안에 세 장면: 김주애 이미지 연출이 말하는 것
주목해서 볼 것은 최근 김주애가 들고 있던 소총과 권총 그리고 탱크에 올라 탄 모습이다. 3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연속으로 공개된 군 관련 이미지는 과거 김정일 김정은의 후계 작업 과정과 비교할 때 ‘과속’이다. 2월 27일, 북한은 김주애가 저격 소총을 조준 사격하는 ‘단독’ 사진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 등 다른 인물 없이 오로지 김주애만 등장하는 사진을 대내외에 보도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3월 11일에는 군수공장 시찰에서 권총 사격 장면이 공개됐다. 그리고 3월 20일, 탱크 탑승 장면이 나왔다. 소총 → 권총 → 탱크. 3주 안에 세 번. 이것은 우연한 일정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은 올 해 (2026년) 2월 2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김주애가 이미 후계 내정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했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탱크 운전 장면은 앞서 공개된 소총·권총 사격 장면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다고 전해졌다. "탱크 부대에서 복무하지 않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데일리NK, 2026.3.26.)
3. 13세 소녀 비현실적 장면
탱크·권총·군복은 원래 어른 남성의 권력을 보여주는 도구였다. 13세 소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서도 자연스러운 조합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 어색함이 이 장면을 강하게 만든다. 소녀가 탱크 위에 서 있는데 주변 군 간부들은 아무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 표정들이 비현실적인 장면을 현실로 굳힌다. 나이도, 성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7세기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는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의 기마 초상〉(1634년~1935년, 프라도 미술관 소장)에서 5~6세의 왕세자를 뒷발로 선 군마 위에 올리고 오른손에 원수봉을 쥐어줬다. 말은 전쟁터용 대형 군마, 아이는 작고 통통한 유아의 몸이었다. 그 충돌이 오히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 자리의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아이의 몸과 권력의 기호가 충돌할수록, 역설적으로 혈통의 특별함이 더 강조됐다. 김주애의 탱크 사진은 그 구조와 정확히 같다. 390년의 시차가 있을 뿐이다.
4. 이 사진이 불편한 이유
이 이미지에서 시선이 멈추는 곳은 탱크가 아니다. 그 위에 선 소녀의 나이다. 탱크는 크고 묵직하다. 소녀의 몸은 작다. 그 크기의 차이가 오히려 소녀를 더 강하게 보이게 만든다. 압도적인 것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조합은 불편하다.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가 한 장면에 있을 때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데 불편함의 이유는 시각적 충돌만이 아니다. 두 가지가 더 있다.
첫째, 문화적 낯섦이다. 조선시대 어진은 오직 왕만을 위한 것이었다. 왕세자는 왕이 되기 전까지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다. 왕의 자식이라도 예외가 없었다. 어진은 왕 그 자체로 간주되는 신성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통 안에서 보면 후계자가 되기도 전에 이미지를 만들고 유포하는 것 자체가 이질적이다. 한국인에게 이 사진이 특히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 문화적 기억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둘째, 더 근본적인 불편함이 있다. 현대 사회는 부와 권력이 능력이 아닌 혈통으로 세습되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13세 소녀가 탱크 위에 서는 장면은 그 불공정함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무런 검증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권력의 자리에 올려지는 것.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이 느끼는 불편함은 단순한 이질감이 아니라 현대적 공정의 감각이 반응하는 것이다. 북한은 그것을 안다. 그래서 더 강하게 보여준다.
5. 결론: 점점 어려지는 권력 세습
북한은 후계자를 발표하지 않는다. 탱크 위에 세운다. 1960년에도, 2010년에도, 2026년에도 방식은 같았다. 장소도 같았다. 달라진 것은 나이뿐이다. 그리고 그 나이가 점점 어려질수록 이 체제가 보내는 메시지는 더 선명해진다. 권력은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뜻이다. 권력은 반복적으로 보여지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의례, 초상화, 퍼레이드와 같은 시각적 장치는 오랫동안 권력을 정당화하는 핵심 도구였다. 탱크 위의 김주애는 그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진1 설명=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김정은 동지께서 3월 19일 조선인민군 수도방어군단 직속 평양 제60훈련기지를 방문하시고 보병, 땅크(탱크)병구분대들의 협동공격전술연습을 참관했다”라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사진2 설명 =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의 기마 초상〉(1634년~1935년, 프라도 미술관 소장)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