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포옹, 여성 엘리트 반복 노출, 레드카펫...김주애를 ‘익숙하게’
■북한 이미지정치 리포트  2026년 02월 

●당대회에서 이름은 빠졌지만 김주애 등장은 계속
2026년 2월 말 평양에서 열린 조선 노동당 9차 당대회 열병식에서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이름없이 공식 참석했다. 그러나 김주애가 후계자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2026년 2월 12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은 “과거 김주애는 후계자 수업 중이라고 표현해왔는데 이제는 ‘내정단계’라고 판단된다”였다. 공군절 행사 참석 등 군 관련 행사 참여, 혈통 계승의 상징인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현장 시찰 때 일부 시책에 의견을 내는 정황 등을 근거로 ‘수업’에서 ‘내정’으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김주애가 더 많이 등장한다”가 아니다. 화면에는 김주애를 ‘중요한 권력자로 보이게 하는’ 기술이 들어가 있다. 그 기술은 크게 세 갈래로 압축된다. 하나는 스킨십을 통해 민심과의 접촉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 리더십을 체제의 ‘가능한 미래’로 익숙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마지막 하나는 레드 카펫이라는 일종의 데뷔 무대를 만들어 보여주는 전략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합될 때 효과가 커진다. “여성도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추상적 선언보다, 주민과의 포옹 같은 구체적 장면을 통해 더 빨리 ‘상식’으로 굳어진다.

●포옹의 정치학: ‘민심 접촉 능력’을 먼저 훈련시키다
먼저 스킨십이다. 김주애는 최근 파병 유족 주거단지인 ‘새별거리’ 준공식(2월 15일)에서 아이들을 직접 안아주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어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김정은이 전날(2월 16일) 평양 화성지구 4단계 1만 세대 살림집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하며, 김주애가 행사 전 과정에 동행했다고 전했다. 특히 통신은 김주애가 새 주택 입주자들을 직접 껴안고 축하를 건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부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정은이 주민을 안았다”가 아니라 “김주애가 주민을 안았다”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고위 당정 간부가 아닌 김주애가 일반 주민과 스킨십을 하는 모습이 노출된 것은 이례적이다. 체제 내부를 향해 ‘백두혈통’ 계승자를 더 생활 가까운 거리에서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화성지구 5만 세대 주택 건설은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에서 결정된 핵심 사업이다. 북한은 5년간 매년 1만 세대씩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번 4단계 준공으로 ‘근 6만 세대’가 완공됐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화성지구를 정치, 경제, 문화적 구성요소를 빠짐없이 갖춘 본보기 구역으로 완성하겠다”고 말한 자리에서 김주애가 함께 등장하고, 김주애의 포옹 장면이 반복되는 것은 ‘치적’이 ‘성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승’으로 이어지도록 장면을 설계한 것으로 읽힌다. 쉽게 말해, 치적 사업이 “김정은의 업적”에 머무르지 않고 “성과의 공동 상속자”가 존재한다는 그림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스킨십은 따뜻한 제스처처럼 보이지만, 후계 이미지를 안정적으로 이식하기 위한 효율적인 정치 기술이기도 하다.

스킨십이 정치에서 갖는 기능은 단순한 호감이 아니다. 첫째, 주민과의 거리감을 줄여 “낯선 권력”이 아니라 “이미 본 적 있는 얼굴”로 바꾼다. 둘째, 지지와 충성을 ‘이성’이 아니라 ‘정서’로 연결한다. 셋째, 무엇보다 “이 사람은 인민을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격을 이미지로 부여한다. 북한의 후계 구도가 문장으로 선포되기 전에 장면으로 훈련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주애가 주민을 안는 장면이 반복될수록, 내부 주민에게는 그 장면이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원래 그런 존재’로 굳어진다.

●여성 리더십의 일상화: 여성 엘리트를 반복 노출, 정상값으로 
두 번째 축은 여성 리더십의 ‘일상화’다. 남성 중심의 폐쇄적 사회인 북한이 주요 당정 간부에 여성을 포진시키고 활약상을 조명하는 흐름은 오래전부터 관찰돼 왔지만, 최근에는 그 노출이 더 일관된 서사로 묶인다. 통일부도 “김정은이 집권 후 꾸준히 여성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는 맥락에서 최선희 외무상, 현송월 당 부부장, 김여정 부부장 등 핵심 여성들의 배치를 거론했다(2월 18일). 특히 최선희는 2024년 말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격하며 권력 서열 10위권으로 올라섰고, 김여정은 ‘김정은의 입’으로 불리며 주요 대외 메시지를 전담해왔다. 최고인민회의에도 박금희 부의장 등 여성 간부가 포진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여성이 많아졌다”가 아니다. 여성이 상징적 자리에 반복 배치되고, 그 장면이 ‘정상적’으로 소비되도록 설계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기존에 남성이 주목받던 분야에서도 여성 활약상을 전면에 놓아 화면의 상식을 바꿔왔다. U-17 여자 월드컵, 2024년 U-20 여자 월드컵 우승 선수단을 직접 만나 격려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공군절 행사에서 여성 조종사를 치켜세우는 장면도 같은 결을 갖는다. 여성 엘리트를 ‘예외’로 처리하지 않고 ‘체제의 정상적 구성요소’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흐름은 김주애 프레이밍과 만나면서 더 선명해진다. 김주애는 단순히 “딸”이 아니라 여성 엘리트들과 연결되는 미래의 중심으로 배치된다. 삼지연 관광지구 호텔 준공식 보도에서 드러난 ‘북한 여성 5명의 서로 다른 거리’는 그 상징적 예다. 김주애는 화면의 정중앙으로 들어오고, 이설주는 보호자이자 보조자로 이동하며, 현송월은 ‘보이게 만드는 권력’으로서 관리자 역할을 지속하고, 최선희는 혈연 밖 여성 엘리트의 상징으로 자리하며, 김여정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만든다. 북한 사진은 우연처럼 보이는 차이를 통해 서열을 말한다. 그리고 그 서열의 정점 쪽으로 김주애를 계속 밀어 넣는다. 여성 리더십의 확장과 후계 이미지의 강화가 한 장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레드카펫의 데뷔 무대: ‘주인공의 입장’을 김주애에게도 허용
여기에 김정은 시대의 또 다른 장치가 결합된다. 김주애 후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세 번째 전략은 레드카펫이다. 레드카펫은 낯선 소품이 아니다. 영화제에서 배우들이 걷는 길이기도 하고 국가 의전에서 정상들이 환대를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북한에도 레드카펫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쓰임이 달라졌다. 레드카펫이 ‘손님을 위한 길’이 아니라 ‘주인공의 입장’이 되는 장면이 늘었다. 2026년 2월 8일 건군절 78주년 국방성 방문 장면에서 김정은은 레드카펫 중앙을 걷고, 양옆 병사들은 길처럼 정렬돼 있다. 외국 정상이 없는 자리에서도 김정은을 위해 레드카펫이 깔리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집중적으로 담는다. 의전이 ‘쇼’가 되는 순간이다. 중요한 점은 레드카펫 장치가 김주애의 등장 장면에도 함께 사용된다는 점이다. 김주애가 레드카펫 위에 서고 걷고 카메라를 받는 장면이 반복되면, 김정은의 권위를 강조하던 장치가 어느 순간부터 ‘다음 세대’를 암시하는 장치로 확장된다. 북한 주민들은 공식적으로 김주애의 나이와 이름을 모른다. 외부에서는 2013년 1월생으로 추정하는 분석이 있고 그 기준이면 2026년 설 이후 한국 나이로 14세 안팎으로 계산된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나이대에 흔히 허용되기 어려운 ‘주인공 연출’을 이미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죽 점퍼와 선글라스 같은 소품은 유년 이미지를 지우고 “특별한 존재”라는 신호를 증폭시켰다.  레드카펫은 더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기정사실화 되어 가는 ‘공주’ 
정리하면, 김주애를 후계자로 ‘익숙하게 만드는’ 시각 전략은 노출 횟수를 늘리는 방식만이 아니다. 북한이 선택한 방식은 더 정교하다. (1) 주민과의 스킨십으로 ‘민심 접촉 능력’을 이미지로 부여하고, (2) 여성 엘리트의 반복 배치로 ‘여성 리더십’을 체제의 정상값으로 만들며, (3) 대형 치적 사업과 결합해 ‘성과의 공동 상속자’로 자리매김시키는 한편 레드카펫 같은 스펙타클 장치로 ‘주인공의 입장’을 반복 재현한다. 
북한은 지금 “여성이 권력을 가져도 낯설지 않다”는 감각을 체제 내부에 미리 훈련시키는 과정에 있다. 후계의 발표는 없지만, 이미지는 이미 ‘공주’의 등장을 기정사실화시키고 있다.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

사진1= 레드카펫 위를 걷는 김주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5년 11월 30일 "조선인민군 공군 창설 80주년 기념행사가 11월 28일 제2공군사단 59길영조영웅연대 갈마비행장에서 성대히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이 자리에는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호명된 딸 주애도 동행했다. 노동신문 뉴스1
사진2= 해외 파병 군인들의 가족을 포옹하는 김주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6년 2월 16일 "새별거리 준공식이 2월 15일 성대히 진행됐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현장에는 딸 주애와 해외작전부대 지휘관, 전투원과 공병부대 관병, 국방성 지휘관, 각급 인민둔 부대 장병들 등이 참석했다. 노동신문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