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얼굴이 보이지 않는 집단 기념사진의 변화 그 의미
■ 북한 이미지정치 리포트 2026년 01월
● 김정은 시대 북한 얼굴보다는 규모 미묘한 변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6년 1월 30일 "새년도 지방발전 정책 대상 건설의 시발로 되는 성대한 착공식이 1월 29일 은률군에서 진행됐다"며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착공식에 참석하시였다"고 보도했다. 수천 명으로 추산되는 참가 인원 가운데 김정은을 찾아내는 것은 쉽다. 화면 맨 앞줄 맨 중앙에 검정 가죽 점퍼를 입고 있은 채 서 있다.
비슷한 사진이 지난 2026년 1월 17일 노동신문에도 실렸다. 신의주 온실종합농장 건설 현장에서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 5000명이 참여한 대합창 공연 ‘김정은 시대와 백두산영웅청년’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신문 지면에 실린 사진은 압도적이다. 빨간 구호판, 화면을 채운 인원, 철제 계단에 옆 사람 얼굴을 가리지 않고 가지런히 서 있는 대열은 북한 선전 이미지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이전과는 다른, 북한의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들의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돌격대에 대한 북한 내부의 존중이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이런 식의 기념사진 조차 신문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문 한 개 면에서 개별 얼굴로 식별 가능한 인원은 많아야 5000명 안팎이다. 신문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200자 원고지 25장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얼굴만 보이고 몸은 가려지도로 철제 연단을 정확하게 설치해야 가능하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이 경계를 넘는 순간, 얼굴은 인물이 아니라 점이나 패턴이 된다. 다시 말해 5000명을 넘어서면 기념사진은 ‘누가 누구인지 남기는 사진’이 아니라 규모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성격이 바뀐다.
김정은 시대에 등장한 대규모 집단 기념사진들은 바로 이 경계를 넘어서 있다. 장관이지만 개인의 기억은 남기기 어렵다. 이 변화는 북한 집단 기념사진의 기능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 십여 명의 김일성 시대, 선물을 대신한 김정일 시대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등장하는 사진은 ‘1호 사진’이라 불린다.
1호가 현지지도를 나설 때면 행사에 참여한 간부, 노동자, 군인들과 함께 집단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이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권력이 인민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장치였다.
행사가 끝나면 기념사진은 참가자 각 가정에 전달되었고, 액자에 넣어 집안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렸다. 이 관행은 1970년대 이후 50여 년간 이어져 왔다.
김일성 시대의 기념사진은 제한적이었다. 김일성의 초기 집권 시절에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촬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념사진의 형태로 김일성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유일사상 체계가 확립된 이후 시기부터 외빈 접견이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는 기념사진의 형식으로 신문에 실리기 시작했다. 건강 문제 등의 정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고민된 것으로 해석된다. 등장인물도 대체로 수십 명 이내였다.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며 기념사진의 성격은 바뀐다. 현지지도와 행사 이후 촬영되는 집단 기념사진은 잦아졌고 규모도 커졌다. 수십 명을 넘어 수백 명 수준까지 확대됐다. 이 시기 기념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수령과 인민을 연결하는 ‘인전대’ 역할을 했다. 또한 역사만들기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물질적 선물의 대체재로 사진이 활용됐다. “함께 찍혔다”는 경험, “집안에 걸어둘 수 있는 사진”은 체제와 개인을 연결하는 상징적 보상이었다. 기념의 중심에는 여전히 개인의 얼굴이 있었다.
● 김정은 시대 수백명에서 수천명으로
김정은 집권 초기, 집단 기념사진은 과속에 가깝게 쏟아졌다. 필자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집권 1년 6개월 동안 175장의 단체 기념사진으로 약 12만 명과 함께 찍었다. 대략 500~600명이 사진 한 장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2년 7월 26일자 노동신문에는 6개 면에 28장의 기념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새 권력의 존재를 빠르게 각인시키기 위한 해법이었다. 초기 기념사진의 속도로 지난 14년간의 김정은 집권 기간을 고려해 단순 누적으로 계산하면 약 100만 명이 기념사진에 등장했을 것이다. 북한의 인구를 2600만명으로 잡고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면 총 가구수는 약 650만 가구인데 김정은과 기념사진을 찍은 누적 인원이 약 100만 명이라고 한다면 전체가구의 약 6~7가구 중 1가구는 김정은과 직접 만나 기념사진을 찍은 구성원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가구 단위의 경험으로 보자면 김정은의 기념사진 정치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을지 추측할 수 있다.
● 우크라이나 사망 병사...예외는 있다
김정은의 집단 기념사진은 시간이 지나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빈도는 줄고, 규모는 커진다. 수백에서 수천 명 단위로 이동한다. 5000명 기념사진은 이 전환을 상징한다. 사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개인의 얼굴은 남기지 않는다. 기념사진은 개인에게 귀속되는 증거에서, 국가가 소유하고 전시하는 집단 장관으로 변한다.
모든 경우에 이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과정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는 30여 명 안팎,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기념사진이 촬영됐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한 경우에도 김정은이 소규모의 기념사진을 함께 찍는다. 북한은 언제 얼굴을 남겨야 하고, 언제 지워도 되는지를 알고 있다. 희생을 감내한 가족에게는 ‘기억의 증거’를 남기고, 대규모 동원 행사에서는 개인을 익명화한다. 얼굴의 소멸은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가
첫째, 사진의 과잉이 누적됐다. 집권 초기 성공한 전략은 반복될수록 상징적 가치를 잃었다. 기념사진이 예외적 경험에서 일상적 풍경으로 바뀌는 순간, 동원의 보상으로서 효력이 떨어진다.
둘째, 동원 규모의 확대가 개인을 지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최근 정치 이벤트는 야간 연출, 대형 조명, 음악과 영상 편집이 결합된 스펙타클로 커졌다. 수만·수십만 동원이 반복되며 개별 얼굴을 담을 공간은 급격히 줄었다.
셋째, 내부의 ‘보는 눈’이 변했다. 북한 내부에서도 사진과 방송은 반복 소비된다. 익숙한 구도와 장면은 피로를 만든다. “또 기념사진”이라는 피로감이 형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더 큰 규모와 자극으로 시선을 붙잡지 않으면 효과를 유지하기 어렵다. 김정은의 이미지가 점점 스펙타클화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대가로 개인의 기억은 포기된다.
넷째, 기념사진의 기능이 대체됐다. 과거 ‘사진이라는 영수증’은 개인의 공간에 남았다. 방송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의 표정이나 반응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개인에게 전달되는 물리적 소유물로서의 사진과는 성격이 다르다. 화면 속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액자에 걸린 사진만큼 오래 남지 않는다.
다섯째, 예외의 존재가 기준을 증명한다. 우크라이나 참전 유가족과 스포츠 선수들은 얼굴을 남겼다. 이는 북한이 얼굴을 남길 대상과 지울 대상을 구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택의 기준은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
● 영수증 사라지고 국가의 전시물로 남아
과거 집단 기념사진은 행사 동원에 대한 상징적 보상, 즉 ‘사진이라는 영수증’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진은 국가의 것이고 기억은 위에서 아래로 관리된다. 방송 화면 속 클로즈업은 액자에 걸린 사진처럼 개인의 공간에 남지 않는다.
더 많이 동원되지만, 그에 상응하는 흔적은 줄어드는 구조다.
5000명 기념사진은 북한의 동원 능력을 과시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이 사진은 북한이 기념을 조직하는 방식, 그리고 개인을 기억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 변화의 핵심은 ‘영수증’의 소멸이다. 얼굴이 식별되지 않는 대규모 기념사진은 더 이상 개인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사람은 더 많이 모이지만, 개인에게 남는 흔적은 줄어든다. 사진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전시물이 되고, 기념은 경험이 아니라 장면으로 대체된다.
2026년 1월 북한 이미지 정치의 핵심은 개인화, 스펙타클, 대규모 동원의 결합이다. 김정은은 유일한 주연으로 부각되고 인민은 거대한 배경이 되며, 기억은 나눠지기보다 관리된다. 집단 기념사진이 신문에서 사라지는 현상은 변화의 결과이자 상징이다.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체제의 안정성과 힘을 시각적으로 과시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동원의 피로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남긴다. 북한의 주민들이 앞으로도 계속 ‘1호 행사’에 동원되는 그 자체만으로 영광이며 충분한 보상이라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관찰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

사진설명: 北 은률군 착공식 참석한 김정은…군인건설자들과 기념사진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0일 "새년도 지방발전 정책 대상 건설의 시발로 되는 성대한 착공식이 1월 29일 은률군에서 진행됐다"며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착공식에 참석하시였다"고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