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병관

이범증
이범증전 중앙중학교 교장
나는 1999년 9월부터 2007년 정년퇴임까지 8년간 중앙중학교 교장을 지냈다. 2003년 화정 선생께 행정실장(옛 서무과장) 후보를 추천하고 면접을 부탁드렸고 화정 선생은 일요일 오전에 면접을 보자고 하셨다. 막상 정해진 면접 시간에 화정 선생이 오시지 않아 댁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손녀 데리고 조금 전에 산책 나가셨다”고 했다.

초조해하고 있던 차에 잠시 후 화정 선생이 손녀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교장실로 들어오시더니 “이 사람이오?”라고 다짜고짜 물었다. 행정실장 후보자가 부동자세로 “예” 하고 답했다. 그러자 화정 선생은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우리 학교는 학교의 모든 일을 교장 선생에게 맡기고 운영하니까 교장 선생을 통해 좋은 학교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세요.” 다른 군더더기 한마디도 없고 이력서도 보지 않았다. 옆에서 바짝 얼어붙어 있던 후보자는 면접에 떨어진 줄 알았다. 화정 선생은 “나 바빠서 그만 갑니다” 하며 손녀와 함께 교장실을 나갔다. 그때 나는 ‘아, 저렇게 멋진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화정 선생과 가까워졌다. 화정 선생과 의논하는 일도 많아졌다. 화정 선생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내치는 법이 없었다.나는 학교 운영에 있어서 만큼은 신뢰를 받았다. 나는 더욱 학교를 위해 헌신했다.

옛 중앙중학교 건물은 1958년에 지은 것이었다. 이 건물을 새로지어야겠다고 생각하신 화정 선생은 유명한 건축가에게 중앙중학교건물 설계를 맡겼다. 그 건축가에게 “일본 학교를 모델로 하지 말고 미국 기업체 연구소 스타일로 설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기업체사옥 스타일이라니,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내부는 하나부터 열까지 교장과 교사들 의견을 반영하도록 했다. 정남향 해가 쫙 들어오는 곳은 학생 교실로 했다. 북쪽 그늘지고 불편한 곳은 교무실, 서무실, 관리실로 했다. 학생 위주로 건물을 지은 것이다. 화정 선생의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건물 설계에 이렇게 반영된 것이다.지금 중앙중학교를 가보면 건물이 미국 숲 속에 있는 기업 연구소 분위기다.

화정 선생은 학교와 관련해서는 철저히 위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절대 간섭하지 않았다. 2003년과 2004년에 컴퓨터실 2개를 설치해 컴퓨터 80대를 한꺼번에 사들인 일이 있었다. 그때 화정 선생이 오셔서“이건 좋은 컴퓨터인데 누가 결정한 거냐?”라고 물었다. 내가 “제가 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화정 선생은 “이런 건 돈도 많이 들어가는데 좀 물어나 보고 하지”라고 한마디 하셨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다.

화정 선생은 기억력이 아주 탁월하고 명석한 분이었다. 화정 선생은 종종 중앙중고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 근처 막걸리집, 소줏집에서 소탈하게 술을 마셨다. 선생님들과 술을 마시다 취했을 때 부축을 해서 차에 태워 가회동 집에 모셔다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선생님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모두 기억하셨다. 어떤 때는 혼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대동상고와 중앙중고 아이들이 드나드는 분식집 구석에 앉아 김밥 한 줄 시켜 먹으면서 아이들 이야기를 다 듣기도 했다. 학교 분위기를 생생하게 접하고 싶어 일부러 분식집을 찾아가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화정 선생은 그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처음 교장이 되고 나서 보니 학교 통장 잔액이 140만 원밖에 없었다. 12월까지 2400만 원을 긴급 지원받지 못하면 학교가 부도가 날 지경이었다. 소식을 들은 화정 선생은 그 자리에서 법인 상무이사에게 중앙중에 당장 2400만 원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2007년 퇴임할 무렵 당시 화정 선생은 병원에 계셨다. 내가 퇴임하겠다고 했더니 화정 선생은 종이에 써서 필담으로 “이 교장은 임기를 지켜 달라”고 했다. 이를 거절했더니 법인 사무국장에게 “유임시켜라. 이 사람은 앞으로 1년 반 임기가 남았는데 굳이 퇴직한다고 하면 1년 반 치 위로금을 줘라”라고 다시 필담으로 전해 왔다. 얼마 뒤 현승종 이사장이 부르기에 찾아뵈었더니 내게 2000만 원을 주시면서 “병원에 계신 화정 선생 뜻이니 받아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중앙중 교장을 지내면서 만나 뵈었던 화정 선생은 이렇게 깊고 넓은 이였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