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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잊혀서는 안되는 6·25[정전 70년, 끝나지 않은 6·25]
[24회] 에필로그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의 ‘연희 104고지’ 안내판. 구자룡 기자

서울 신촌을 오가는 버스에서 ‘연희 104고지’ 정거장을 문득 본 적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5월 초 지인 2명과 함께 찾아가 보니 주택가 뒤편으로 단 비탈길 입구에 빨간 글씨로 ‘해병대수도서울 탈환 104고지 전적비’가 보였다. 조금 더 올라가면 작지 않은 공터 한 켠에 전적비가 우뚝 세워져 있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 탈환을 위한 해병대의 경인지구 작전 지도가 소개되어 있다.

인천상륙 이후 13일만에 서울을 탈환할 때 두 번 뺏고 뺏기는 육탄전속에 최후의 고비였던 연희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기자가 근무하는 서대문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정전 70년’이 먼 과거의 일이 아니고 연희고지 만큼이나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정전 70년, 끝나지 않은 6·25’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6·25 전쟁은 오랜 기간 잊혀진 전쟁이었다. 한국에서는 6·25가 몇 년에 발생한 전쟁인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시리즈는 정전 70년을 맞은 올해 ‘6·25가 그렇게 잊혀져도 되는 전쟁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틈틈이 현장을 다니며 주 2회씩 마감을 하다보니 어언 시리즈를 마쳤다. 6·25가 잊혀지지 않고 나아가 ‘북핵 위협’ 시대에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시리즈의 보람으로 삼으려 한다.

공간이 주는 영감과 상상력

경기도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의 시계 조형물. 미군이 북한군과 맞섰던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반이 표시되어 있다. 오산 = 구자룡 기자

전국에 흩어져 있는 6·25 전투 현장의 전적비 위령비 충혼탑 충혼비 기념관 박물관 등 흔적을 찾아다녔다. 처음 찾아간 곳은 6·25 발발 후 한국에 첫 파병된 미 보병 24사단 선발대 ‘스미스 특임부대’가 북한군과 처음 전투를 벌인 경기도 오산의 ‘죽미령 평화공원’. ‘초전기념관’이 있다는 이곳에 가면서 ‘70여년 전 전투가 있었던 곳의 돌덩이(기념비 충혼비 등)를 본들 당시의 복잡했던 전황을 이해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자료를 하나라도 더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기념공원의 시계탑 조형물을 보고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1,2차 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을 자부했던 미군이 이름도 잘 안 알려진 한반도 북쪽의 ‘공산 괴뢰 집단’의 군대와 만나 첫 전투에서 버틴 시간이 불과 6시간 반이었다니! 시계탑 조형물 등을 세워놓은 죽미령 평화공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영감과 상상력이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때 이후 현장에서 보이지 않게 충전된 기운이 조금은 무모하게 시작한 ‘현재를 찾는 과거로의 긴 여정’을 지탱해 준 에너지가 됐다. 국가보훈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국가수호 현충시설’은 1312건이다. 독자들이 가까이에 있는 어느 곳이라도 한 곳에 들러 6·25에 대한 관심을 갖는 실마리를 찾기를 기대한다.

강원도 인제의 현리전투 위령비. 현리전투에서 숨진 장병들을 화장한 곳에 세워졌다. 인제 = 구자룡 기자

현리 위령비의 서늘함

전투과 상처의 흔적을 찾아 하나 하나 현장을 갈 때마다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다. 대표적인 곳이 ‘현리 전투 위령비’였다. 마을 뒷산을 오르는 듯 산길을 따라 올라 현리전투 위령비를 찾아갔을 때 뭔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현리전투에서의 참혹한 패배로 전사한 장병들을 화장한 곳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는데 영령들이 주위에 있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경기도 가평의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에 새겨진 벽화. 영국 글로스터 대대원중 이렇게 고국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난 병사는 극소수였다. 가평 = 구자룡 기자

경기도 가평의 설마리 전투에서는 영국 글로스터 대대가 사실상 옥쇄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내용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추모공원에 귀환한 병사가 부인과 딸을 만나 포옹하는 장면을 보고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추모공원에 새겨진 벽화처럼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난 병사는 사실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군은 용감했다

6·25 전쟁 3년의 전황을 분석하는 많은 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미군에 비해 한국군이 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다 군의 기강도 엉망이었다. 실전 경험과 지도력을 갖춘 장교가 거의 없었다. 중공군 개입 이후에는 ‘공중증(恐中症)’으로 중공군만 보면 달아나기 바빴다. 미군이 제공한 고가의 무기와 장비도 내팽개쳐 중공군 손에 넘어가게 했다. 중공군은 미군이 아닌 중동부 전선의 한국군을 만만하게 보고 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등등.

경기도 의정부 축석령에 세워진 ‘포병용사 김풍익전투기념비’. 의정부 = 구자룡 기자

이번 시리즈 취재를 위해 현장을 다니면서 그게 다는 아니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의정부 축석령을 지키던 2사단과 육군포병학교 교도대 등은 북한 전차와 만나 50m까지 전차가 근접해 포격을 가한 뒤 적의 전차포 사격으로 전사했다. 근접 포사격은 육탄 돌격이나 마찬가지였다. 개전 직후 홍천 전투에서 6사단 19연대 11명의 육탄돌격대는 수류탄만 들고 적의 전차를 타고 올라가 해치를 열고 수류탄을 집어 넣었다. 휴전 협상 중 고지전 혈전이 벌어지던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에서 9사단 30연대의 삼용사는 수류탄을 들고 적의 기관총 진지에 들어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백선엽 장군은 회고록에서 ‘잘 된 것은 미군탓, 안되면 한국군 탓’하는 미 8군 사령관이 있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한국군이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한국군만을 탓할 것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열악한 상황속에서 분투했던 국군에 대해 애틋하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때도 됐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한미원조기념관. 중공군 13병단의 포병지휘소 자리에 세워져 있다. 단둥 = 홍진환 기자

새삼 다시 본 ‘단둥의 6·25’

베이징특파원 시절 김정일의 방중이나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북중 관계에 변화 조짐이 보일 때 접경 도시 단둥에 종종 갔다. 단둥 시가지 뒤편의 항미원조기념관에도 종종 들렀다. 그런데 이번에 시리즈를 위해 단둥에 가서 ‘단둥의 6·25’를 새롭게 보았다. 과거 단둥에 갔을 때는 현재의 북한을 보기에 바빴다. 북중 교류, 제재를 피하는 밀수, 탈북자, 달러벌이 일꾼 등을 수소문하고 다니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 단교’ 위에 펑더화이가 중공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단둥 = 홍진환 기자

그런데 단둥은 현재는 북중 교역의 최대 관문일 뿐만 아니라 6·25 전쟁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곳이었다. 미국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 ‘압록강 단교(斷橋)’ 위에 중공군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도하하는 장면의 조각상이 생생했다. 압록강 상류에는 중공군이 도하하기 위해 부교를 놓았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6·25 이후에도 한반도 분단의 역사가 끝나지 못한 데는 단둥에서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는 중공군의 참전과 무관지 않다. 한중 교류 30년이 지났으나 중공군의 ‘정의롭지 못한’ 6·25 참전의 업보는 쉽게 없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6·25 국제연대의 힘 살려야’

경기도 양평 지평리전투기념관에 전시된 세계 지도에 전투병, 의료, 물자지원국들이 표시되어 있다. 양평 = 구자룡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요일 새벽 느닷없이 발생한 6·25 전쟁 같은 무도한 일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벌어질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세계 많은 국가가 불법적인 침략이라고 규탄한다. 그럼에도 미국과 서유럽 국가 등이 무기를 지원하고 군수 물자나 의료 장비 등을 지원하지만 전투 병력을 직접 파견한 국가는 없다.

6·25 전쟁 때는 어땠나. 발발 24시간만에 유안안보리가 ‘북한의 남침은 평화의 파괴’ ‘북한군의 침략중지 및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 요구’ 등을 요구했고, 이틀 후 회원국의 파병을 결의했다. 이같은 결의에 따라 미국 178만 9000여명, 영국 5만6000여명 등 연인원 195만 여명이 참전했다. 전사자만 3만7900여명이다. 6·25 당시 한국 지원은 ‘16+6+38=60’이다. 전투병 파병 16개국 외에 의료지원 인원 파견 6개국, 물자지원국이 38개국이다.

캐나다 총리는 파병을 결정하면서 “특정 국가와의 싸움이 아니라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수의 국가가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하나로 뭉친 것은 유사 이래 유례가 없는 일이다. 지금은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은 마비된 것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소련이 침략국인데다 중국이 편을 들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올해 정전 협정이 체결된 7월 27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행사는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행사로 열렸다. 70년 전 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리고, 의료 및 물자 지원을 했던 국가들은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한국이 그들을 잊지 않을 뿐 아니라 연대의 끈을 굳게 할 공통의 유산이 있는 귀중한 우호 우방국가들이다. 한 때 ‘잊혀진 전쟁’이었던 6·25는 이제 한국과 세계 각 국을 잇는 귀중한 자산으로 만드는 것은 피로 지켜낸 이 땅을 물려받은 우리의 몫이다.


참고문헌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각 장의 뒤에 참고문헌을 소개했다. 6·25 전쟁의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주요 문헌을 분야별로 소개한다.

◇ 6·25 전쟁의 정책 결정자, 지휘관, 직접 참관자가 쓴 자서전 회고록

백선엽 지음, 『군과 나』, 시대정신, 2009.
백선엽 지음, 유광종 정리, 『백선엽의 6·25 전쟁 징비록』 1〜3권, 책밭, 2020.
신화봉 지음, 『휴전선이 열리는 날』, 한국논단, 1993.
이승만 구술, 프란체스카 지음, 조혜자 옮김.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기파랑, 2010.
정일권 지음, 『전쟁과 휴전- 6·25 비록 정일권 회고록』, 동아일보사, 1986.
정일권 지음, 『정일권 회고록』, 고려서적 광명출판사, 1996.

더글러스 맥아더 지음, 『맥아더 회고록』, 2권, 일신서적, 1993.
딘 애치슨, 『Present at the Creation』, Norton & Company Inc., 1969.
마거릿 히긴스 지음, 이현표 옮김, 『자유를 위한 희생』, 코러스, 2009.
마크 W. 클라크 지음, 김형섭 옮김, 『다뉴브강에서 압록강까지』, 국제문화출판공사, 1981.
매슈 B. 리지웨이 지음, 박권영 옮김, 『리지웨이의 한국전쟁』, 플래닛미디어, 2023.
에드워드 L. 로우니 지음, 정수영 옮김, 『운명의 1도』, 후아이엠, 2014.
터너 조이 지음, 김홍열 옮김,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 한국해양전략연구소, 2003.
펑더화이(彭德懷) 지음, 이영민 옮김, 『나, 펑더화이에 대해 쓰다』, 앨피, 2018.
해리 S. 트루먼 지음, 손세일 옮김, 『시련과 희망의 세월-트루먼 회고록』 하, 지문각, 1968.
훙쉐즈(洪學智) 지음, 홍인표 옮김, 『중국이 본 한국전쟁』, 한국학술정보, 2008.

◇ 6·25를 학술적이고 논쟁적으로 분석하기보다 대중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책

김계동 지음, 『한국전쟁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명인문화사, 2014.
김철수 지음, 『그 때는 전쟁, 지금은 휴전 6·25』, 플래닛미디어, 2017.
남도현 지음, 『6·25, 끝나지 않은 전쟁』, 플래닛미디어, 2010.
남시욱 지음, 『6·25 전쟁과 미국』, 청미디어, 2015.
남정욱 지음, 『밴플리트 대한민국의 영원한 동반자』, 백년동안, 2014.
이상호 지음, 『맥아더와 한국전쟁』, 푸른역사, 2012.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정윤미 이은진 옮김, 『콜디스트 윈터』, 살림, 2009.
리처드 손튼 지음, 권영근 권율 옮김, 『강대국 국제정치와 한반도』, 한국국방연구원, 2020.
마틴 러스 지음, 임상균 옮김, 『브레이크 아웃』, 나남, 2004.
로이 E. 애플먼 지음, 허빈 옮김, 『장진호 동쪽-4일 낮 5일 밤의 비록』, 다트앤, 2013.
바브 드러리 & 톰 클라빈 지음, 배대균 옮김, 『장진호 전투』, 진한엠앤비, 2017.
스탠리 웨인트라웁 지음, 송승종 옮김,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작전』, 북코리아, 2015.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 지음, 최필영 윤상용 옮김, 『이런 전쟁』, 플래닛미디어, 2019.
윌링엄 R. 맨체스터 지음, 박광호 옮김, 『맥아더 2』, 미래사, 2016.
윌리엄 T. 와이블러드 엮음, 문관현 등 옮김,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한국전쟁 일기』, 플래닛미디어, 2011.
조셉 굴든 지음, 김병조 발췌 번역, 『한국전쟁 비화』, 청문각, 2002.

데이빗 쑤이(徐澤榮) 지음,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옮김. 『中國의 6·25 戰爭 參戰』, 한국전략문제연구소, 2011.
선즈화(沈志華) 지음, 김동길 옮김, 『조선 전쟁의 재탐구』, 도서출판 선인, 2014.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