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제목[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통일한국 위해 ‘金씨 일가’ 인권 유린 어떻게 다뤄야?



Q. 먼 미래의 일이지만, 그리고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일일 수도 있지만 북한과 통일을 하게 된다면 북측에서 벌어진 체제 불법 사태에 대한 극복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북측의 체제 불법 행태를 주도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노동당 주요 수뇌부에 대한 엄준한 단죄가 필요하다 생각하는데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통일 한국의 사회적 통합을 위해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이른바 통일한국의 ‘사회적 통합’을 위해 독재정권인 김씨 일가가 감행한 인권 유린 사태를 묵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안녕하세요. 이렇게 소통하게 돼 반갑습니다. ‘현재’와 ‘국제법’을 먼저 언급한 후 ‘통일 이후’에 대해 답해보겠습니다.


인권 유린 문제는 지금도 북한 외교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킬레스건’입니다. 평양은 그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김정은’ 이름 석 자가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총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핵은 자위적 수단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나 인권 문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논쟁할수록 북한이 수세에 몰립니다.


 유엔이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를 채택한 것은 2005년부터로 올해가 14년째입니다. 12월 유엔 총회에 상정돼 처리될 북한인권결의안에는 “반인륜 범죄에 해당하는 인권 침해에 ‘가장 책임 있는 자’들을 제재하고 이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가 담겼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도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했으나 히틀러와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독일과 소련의 정치범수용소는 사라졌습니다. 반면 북한은 3대 세습을 거치면서 60년 넘는 세계 최장 기간 동안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모부(장성택) 처형과 이복형(김정남) 암살도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겠고요.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주권자(국민)의 대리인(agent)을 처벌하는 것은 국제법 이론에 어긋난다고 봤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난 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를 중립국 침략, 화학무기 사용 등 혐의로 형사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었으나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원수는 그 나라 국민에게 정치적 책임을 질뿐이고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국민주권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칸의 도살자’라고 일컬어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신(新)유고연방 대통령이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를 학살한 혐의 등으로 유엔 안보리에 의해 1999년 6월 제소된 후 체포돼 재판을 받은 게 인류 역사상 현직 국가원수가 기소→체포→재판→단죄 과정을 밟은 최초 사례입니다.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전 재판관은 “국가원수 재직 중 국제사법기구에 기소돼 결국 재판에 회부된 예는 밀로셰비치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법상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합니다. 재판 도중인 2006년 3월 사망한 밀로셰비치가 국가원수도 면책특권은 없다는 국제법상 전례를 남긴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2002년 특정 개인의 인권 침해가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할 때 기소해 처벌할 ICC를 창설합니다. ICC는 집단학살, 전쟁범죄, 반(反)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최초의 상설 국제법정입니다. ICC 초대 재판관으로 선임된 후 2009년부터 6년간 ICC 소장을 맡은 송상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ICC 회부는 김정은이 평생 차고 다녀야 할 족쇄다. 언젠가 처벌받을 범죄자가 되는 것은 그를 ‘최고 존엄’으로 떠받드는 북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ICC 제소를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렇듯 국제법상으로는 지금도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인권 유린에 책임이 있는 노동당 수뇌부를 처벌할 길이 열려는 있습니다. 북한은 ICC 설립 근거 조약인 로마규정 가입국이 아니어서 ICC가 관할권을 갖지 못하기에 원칙적으로는 김정은을 제소할 수 없으나 우회로가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결의하면 ICC 회부가 가능합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기에 현실성은 낮다고 하겠습니다.


통일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겠으나 급진적 흡수통일과 점진적 합의통일로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북한 주도 통일을 논외로 한다면 급진적 흡수통일의 경우 인권 침해 책임자들에 대한 단죄가 통일 과정에서 반드시 거론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국제법상 ‘국가’였으므로 이 경우에도 통일한국의 국내법이 아니라 ICC에 제소하는 방식으로 처벌 절차를 밟는 게 국제법적으로 타당합니다.



인권은 인류가 확립한 보편적 가치입니다. 로마규정이 명시한 국가원수의 면책특권 부인은 인류가 지혜를 모아 합의에 도달한 원칙이고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독재자 개인을 단죄하는 동시에 회복적 정의와 치유적 정의를 아울러 실현하자는 게 로마규정의 정신입니다. 통일한국의 사회적 통합을 위해 독재정권이 감행한 인권 유린 사태를 묵과하는 게 옳을까요. 그것은 한국이 가입한 로마규정의 정신과 인류가 마련한 국제형사법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점진적 합의통일은 평화 공존과 남북 교류가 장기간 이어져 공동 번영이 이뤄진 후에야 실현이 될 겁니다. 먼 훗날에도 북한 체제와 인권 상황이 현재와 비슷하다면 합의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북한에서 체제 진화나 변동이 이뤄진 후 합의통일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사면이나 묵과가 필요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화해와 용서를 통해 인종 통합을 지향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점진적 합의통일 형태로 남북이 하나가 되더라도 책임자 처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제형사법의 근간에 따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통일한국을 살아갈 당대의 시민들이 지혜를 모아 결정할 사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송홍근 신동아 기자carr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