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엠블럼 대신 해방탑...북한, 러시아 카드 꺼냈다
■ 북한 이미지정치 리포트 / 2026년 8월
다시 꺼낸 사진
2026년 8월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7년 전인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김정은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었다. 앞서 트럼프는 6월 13일에도 2018년 싱가포르 회담 당시 김정은과 함께 걷는 사진을 별다른 설명 없이 게시한 바 있었다. 두 달 사이에 북미 정상회담 사진을 두 번 꺼낸 것이다.
8월 15일 게시글에 트럼프는 이렇게 썼다. "이 사진에서는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웃고 있는 사진도 많이 있다. 김정은과 나는 사이가 좋다!(Kim Jong Un and I get along GREAT!)" 이튿날인 16일에는 김정은과의 관계를 이유로 한미 연합훈련 규모를 축소하라고 지시했다. 17일에는 "이봐 도널드, 우리 사이 괜찮지?(HEY DONALD, WE COOL… RIGHT?)"라는 말풍선이 붙은 밈 사진을 올렸다. 기자들에게는 "김정은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거리를 뒀다. 8월 19일 밤, 김여정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냈다. 북미 정상 간 소통에 대해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김정은이 트럼프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으며 두 지도자의 관계는 여전히 훌륭하다고 덧붙였다. 밀어내는 듯하지만 문은 닫지 않았다.
2018년의 준비: 세 가지 소품
미국의 제안으로 다시 북미 회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 6월 12일을 떠올려 본다. 이미지 정치 차원에서, 북한은 당시 북미 회담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했을까. 그리고 지금 북한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두 정상은 12개의 깃발 앞에서 악수했다. 6개는 성조기, 6개는 인공기. 숫자도 높이도 간격도 똑같았다. 카메라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두 지도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북한이 만든 시각적 대칭, 즉 동등한 프레임이었다. 회담장의 양국 국기만 시각적으로 동등한 것이 아니었다.
북한은 세 가지를 준비했다. 첫째, 엠블럼이었다.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김정은을 상징하는 엠블럼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전용 비행기에 엠블럼을 인쇄했다. 북한은 전용기인 참매 1호의 외부 도장을 2018년 5월 중국 다롄 방문 때 처음 바꿨다. 그때까지 참매 1호를 포함한 북한 국가급 항공기의 동체에는 인공기가 새겨져 있었다. 수정은 인공기를 지우고 국무위원장 배지를 넣은 것이었다. 변화는 작았지만 의미는 달랐다. 기체 위의 권위 표시가 국가에서 지도자 개인으로 바뀐 것이다.
이 엠블럼은 참매 1호 동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김정은의 전용 방탄 차량의 문에도 붙었고, 연단과 마이크 스탠드에도 붙었다. 김정은의 개인 물컵에도 엠블럼이 붙었고 공식 서류 케이스에도 들어갔다. 이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참조한 원형은 분명하다. 미국 대통령들의 엠블럼이다. 연단의 대통령 문장(Presidential Seal), 캐딜락 원 차체에 양각된 문장, 마이크에 붙은 문장, 공식 봉투의 문장. 북한 김정은은 자신의 물건에도 미국 대통령의 시각 문법을 적용해 오고 있다. 김일성도, 김정일도 이런 장치를 쓰지 않았다. 김일성 김정은 시대의 권력 시각화는 ‘심장 위에 다는 배지’ ‘건물 어디든지 지켜보는 초상화’ ‘노동신문 1면에 반복 등장하는 사진’의 형식이었다.
둘째, 전용기였다. 참매 1호는 소련제 Il-62M 장거리 여객기로 1960년대 후반 설계된 기체다.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15년 7월 31일 노동신문을 통해서였고, 한국 땅을 밟은 이력도 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최룡해·김양건 실세 3인방이 전격 방남할 때 이 기체를 타고 왔다.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이 기체를 정비했다. 동체 도장을 바꾸고 내부를 개조해 대통령 전용 수송기에 걸맞게 준비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싱가포르에 참매 1호를 타고 가지 않았다. 에어차이나 보잉 747을 빌려 탔다. 전용기를 준비해놓고 정작 쓰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가 회담 장소로 플로리다 사저 마러라고를 제안했을 때, 그 선택지는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었다. 참매 1호의 항속거리로는 평양에서 플로리다까지 직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라는 외교적 선택은 부분적으로는 항공기 성능이 결정한 것이었다.
셋째, 경호차량과 경호원이었다. 김정은이 공식 행사에서 사용하는 메이바흐 S600 풀만 가드의 운영 방식은 미국 대통령 전용차 캐딜락 원, 이른바 비스트(The Beast)의 경호 동선을 상당 부분 따른 것이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검은 양복 경호원들이 주행 차량 옆에서 뛰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같은 장면이 그해 6월 싱가포르 회담과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반복됐다. 이 대형은 미국 비밀경호국이 비스트와 함께 이동할 때 쓰는 것과 유사하다.
2018년 다롄 방문 때 메이바흐들은 별도 화물기로 사전에 이송됐다. 미국이 C-17 수송기로 비스트를 미리 배치하는 방식과 같다. 차량 두 대가 동일하게 생긴 채 호송 행렬을 이뤄 어느 쪽에 지도자가 탔는지 외부에서 알 수 없게 운영됐다. 그런데 메이바흐 S600 풀만 가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2397호에 따라 북한 수출이 금지된 사치품이다. 정상국가처럼 보이려 동원한 소품이 제재 위반의 증거이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가 이 부분을 크게 문제 삼는 거 같지는 얺다.
새로운 파트너, 새로운 연출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협상은 결렬됐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했고 북한은 제재 완화를 원했다. 접점이 없었다. 그 후 트럼프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왔고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면서 북한은 문을 닫았다. 그 사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북한은 러시아의 요청에 응해 파병을 결정했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국제사회는 추정하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북한이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무기 판매·병력 파병·해외 노동 등을 통해 최대 220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했다(Bloomberg Economics, "Kim Jong Un Flouted Sanctions to Amass $22 Billion Windfall," August 6, 2026, https://www.bloomberg.com/graphics/2026-north-korea-windfall/). 북핵 제재 첫 4년(2018~2021년)의 4배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대러 파병과 군수물자 수출만으로 최대 144억 달러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한다(임수호, 「북한의 대러 파병 및 군수물자 수출의 경제적 효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https://inss.re.kr/publication/bbs/js_view.do?nttId=41037787).
북한의 2025년 GDP가 47조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국가 경제 규모에 비견될 만한 금액이다. 그 돈은 건설과 제조업에 재투자됐고 경제성장률은 3년 연속 3%대를 기록했다. 위성 야간조명 분석에서도 2020년과 비교해 평양의 밤이 눈에 띄게 밝아진 것이 확인됐다(한국경제, 2026. 8. 14,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141900i). 파이낸셜타임스는 평양 대성백화점에서 오메가 시계와 샤넬 화장품이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Financial Times, 2026. 8. 23).
그 변화 속에서 북한이 꺼낸 것이 해방탑이었다. 평양 모란봉 언덕에 높이 30미터짜리 탑이 서 있다. 꼭대기에는 붉은 오각별이 달려 있고, 받침대에는 조선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강점으로부터 조선 인민을 해방하고 자유와 독립의 길을 열어준 위대한 쏘련 군대에 영광이 있으라! 1945년 8월 15일." 이 탑은 1946년 8월 15일, 해방 1주년이 되는 날에 세워졌다. 김일성이 소련의 후원으로 권력을 굳혀가던 시기였다(정근식, 「냉전과 소련군기념비: 중국과 북한에서의 형성, 변화, 영향」, 『아시아리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15).
그런데 북한의 모든 역사 교과서는 김일성이 조국을 해방시켰다고 가르친다(DailyNK, 「평양 해방탑서도 드러난 北 사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2016. 9. 19, https://www.dailynk.com/평양-해방탑서도-드러난-北사상과-현실/). 탑의 비문과 교과서가 충돌한다. 북한은 전국의 소련군 추모탑 13기를 철거했지만 해방탑만은 허물지 못했다. 북러 관계를 고려하면 철거보다 유지하는 편이 나았다(RFA, 김현아 칼럼, 「해방탑이라는 계륵」, 2024. 8. 19, https://www.rfa.org/korean/commentary/ae40d604c544/khacu-08192024093526.html).
김정일은 집권 기간(1994~2011) 내내 이 탑을 찾지 않았다. 소련군 추모탑을 공식 방문하는 것은 해방의 주역이 김일성이라는 서사와 어울리지 않았다(RFA, 같은 글). 김정은은 2024년 6월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이후 3년 연속 광복절에 해방탑을 찾았다(서울경제, 2026. 8. 15, https://www.sedaily.com/article/20079799).
연분홍 정장과 해방탑
올해는 딸 김주애를 데려갔다(파이낸셜뉴스, 2026. 8. 15, https://www.fnnews.com/news/202608151028453820). 8월 14일 김정은은 리설주, 김주애와 함께 해방탑에 헌화했다. 같은 날 대성산혁명열사릉과 항일혁명열사추모비 참배에도 동행했다. 지난달 전승절에 참전열사묘를 처음 찾은 데 이어, 이번에는 항일의 역사와 소련군의 역사 앞에 함께 섰다. 7월에서 8월로 이어지는 한 달 사이에 김주애는 북한이 소환하는 역사의 현장을 차례로 밟았다.
사진에서 눈에 띄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배치와 의상이다. 김주애는 어머니 리설주를 제치고 김정은 바로 옆, 당·군 간부들보다 앞에 섰다. 화면 중앙선이었다. 북한 사진에서 중앙은 주인공의 자리다. 그 문법은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고 보는 이들은 그것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안다(한국일보, 2026. 8. 15,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1318250002017). 의상도 달랐다. 지난달 전승절 참배 때는 검은 정장이었는데 이번에는 연분홍 정장이었다(KBS, 「김주애, 홀로 연분홍 정장…옷으로 존재감 부각?」, 2026. 8. 15, https://v.daum.net/v/20260815191057074). 추모 행사에서 혼자 밝은 색이었다.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같은 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내 북한군 파병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 "공동사업"을 언급하며 "전례 없이 높은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강조했다(한국일보, 2026. 8. 15,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1318250002017). 해방탑 헌화와 크렘린 축전이 같은 날 나란히 놓였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파병은 병사들의 목숨을 판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과 신분 차별이 내재화된 북한 사회에서 인민들이 이 변화를 체감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김정은과 김주애의 지도 아래 북러 밀착으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서사가, 평양의 밤이 밝아지는 것을 눈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러시아로부터 얻어낸 성과를 다음 세대의 공적으로 각인하는 장면이었다.
김정은은 화환에 이렇게 썼다. "쏘련군 렬사들의 공적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그리고 딸을 데려갔다.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해방탑 앞의 연출은 러시아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인가, 아니면 미국을 향한 페인트 모션인가. 두 해석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러시아 파병의 경제적 실익은 실재한다. 그 성과를 김주애와 연결해 대내적으로 각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미지 전략이다. 동시에 트럼프가 북미 대화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시점에, 러시아 밀착을 과시하는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우리에게는 다른 파트너가 있다"는 무언의 신호다.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을 치는 척하며 서쪽을 노리는 전략이다.
북한은 오랫동안 강대국 사이에서 이 방식으로 생존해왔다.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그리고 이제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해방탑 앞의 연분홍 정장은 그래서 하나의 메시지가 아닐 수 있다. 러시아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고, 미국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고, 북한 인민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방향이 다른 두 사진
트럼프의 사진 외교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1기 백악관 NSC 북한 담당 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는 8월 27일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협상에는 "북핵 암묵적 용인, 종전 합의, 한미연합훈련 영구 중단이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가 "평양 또는 중립지대에서 김 위원장과 합의에 서명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연합뉴스, 2026. 8. 29).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은 세 가지를 준비했다. 엠블럼, 전용기, 경호팀. 미국과 대등해 보이기 위한 시각적 소품들이었다. 소품은 치밀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그러나 김정은이 미국을 따라하던 상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김정은의 엠블럼은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의 계승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었다. 그리고 그 수입의 의도는 미국과의 동등한 지위를 주장하려는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에 트럼프가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김정은의 준비는 다르다. 소품이 아니라 레버리지다. 러시아 파병으로 쌓은 외화, 북러 조약으로 굳힌 동맹, 해방탑 앞에 세운 후계자. 2018년에는 미국처럼 보이려 했다면, 2026년에는 러시아라는 카드를 손에 쥐고 미국과 마주 앉으려 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이미 자신의 몸값을 올려놓은 것이다.
트럼프는 7년 전 사진을 꺼내 대화의 문을 두드린다. 김정은은 딸을 해방탑 앞에 세운다. 두 사람이 보내는 신호의 방향은 다르다. 그러나 향하는 곳은 같을지 모른다.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

사진설명 1. 2017년 경부터 등장한 김정은의 엠블럼은 전용 비행기와 차량 뿐만 아니라 물컵, 연단, 마이크, 가죽 점퍼 등 김정은의 물건에 붙어 있다.

사진설명 2. 북미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이 서류철을 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