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인공기 치마와 무릎 꿇는 김정은
■ 북한 이미지정치 리포트 / 2026년 7월

끊임 없는 과거 소환하는 상징 정치

북한 체제는 크건 작건, 진짜건 과장이건 김일성이 항일투쟁과 한국전쟁에서 했던 역할을 정당성의 무기로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이 정권을 십수 년간 유지하는 것 역시 그 혈통의 영향 아래 있다. 그래서 북한 권력은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해 현재 권력의 정당화에 활용한다. 김정일은 항일투쟁의 본거지였던 백두산 산자락에서 태어났고, 김정은은 젊은 시절 김일성을 닮았다는 점이 은연중에 강조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이 구사하는 상징 정치다.

김정은이 혁명시대와 전쟁 영웅들을 우대하고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보다. 노동신문 2026년 7월 29일자에는 김정은이 전쟁노병과 전시공로자들을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며 11장의 사진이 실렸다. 기념사진에는 수백 명이 한꺼번에 앉아 있고, 가운데 빨간 마크가 있는 자리에 김정은의 의자가 놓여 있다. 전형적인 기념사진 구도다. 나머지 10장에서 김정은은 노병들의 환호와 눈물 속에서 얼굴을 맞대거나 포옹을 하고 있다.

역사와 권력을 정당화해주는 노병들의 환호와는 별개로, 북한의 젊은 세대들이 혁명과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권력의 입장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해마다 북한은 전승절을 크게 보도해 왔지만 올해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전승절이 예년보다 유독 컸던 데는 이유가 있다. 

북한은 통상 5년·10년 단위 정주년에 맞춰 대규모 행사를 치른다. 73주년은 정주년이 아니다. 그런데도 약식 열병식까지 동원한 대대적인 행사를 열었다. 이 비례의 어긋남이 오히려 의도를 비친다. 올해 전승절의 진짜 목적은 73년 전 전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진행 중인 권력 승계를 가시화하는 것이었다. 전승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에 김주애를 처음으로 세운 것 , 그것이 비정주년에 대규모 행사를 치른 이유였다.

권력 승계 가시화 7.27 대규모 행사

지금 북한은 김정은의 어린 딸에게 권력을 나눠주고 김씨 혈통으로 권력을 이어가려는 계획을 가시화하는 시기로 보인다.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들을 통해 올해 전승절 분위기를 살펴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김주애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와 과거 세대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는 점이다. 

준비는 21일부터 시작됐다. 평양 시내 청년·학생들과 전쟁노병의 상봉 모임이 열렸다. 나무 그늘 아래 노병이 의자에 앉고, 그 주위를 MZ세대 청년들이 빙 둘러앉은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렸다. 설명하지 않아도 구도가 말한다.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와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마주 앉아 있다. 22일에는 전승혁명사적관 관람 사진이 나왔다. 실물 크기로 재현한 전투 장면 모형 앞에 여군 해설사가 서고 군인들이 둘러보는 구도였다. 전쟁이 박물관 콘텐츠가 된 장면이다. 같은 날 현대식 전투복을 입은 군인이 열사 묘비의 훈장에 손을 얹는 클로즈업 사진도 실렸다. 장비는 현대, 정신은 전통이라는 메시지를 구도로 전달했다. 

23일에는 민간인 청년들이 꽃을 들고 열사묘를 향해 걷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 전경에는 포탄 조형물이 배치됐다. 24일에는 붉은 넥타이 소년단원들이 한복 입은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용표혁명사적지 사진이 실렸다. 야외 숲속 현장학습이었다. 25일에는 전승혁명역사박물관 사진이 나왔다. 김일성의 흑백 사진 앞에 사복 차림의 젊은 관람객들이 뒷모습으로 서 있었다.

노동신문은 엿새 동안 전쟁을 단계적으로 꺼내놓았다. 노병의 증언, 박물관의 유물, 사적지의 기념비, 역사 사진. 텍스트로 설명하던 전승절 서사를 이미지 시퀀스로 대체했다. 마치 유튜브 시리즈처럼, SNS 스토리처럼, 한 편씩 공개했다. 세대 연결 → 공간 순례 → 역사 학습 → 감정 폭발. 기획된 흐름이었다. 

그리고 27일이 왔다. 빌드업이 조연들의 무대였다면, 27일은 주인공이 직접 등장하는 날이었다. 연출의 스케일이 달랐고, 감정의 강도가 달랐다. 석양을 배경으로 방사포가 불을 뿜는 사진이 있다. 군사 사진이지만 색감이 아름답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과 발사 순간의 불꽃이 겹쳐 있다. 전쟁 무기를 찍었는데 영화 포스터처럼 보인다. 와이드렌즈로 찍은 인공기 펄럭임 사진도 있다. 깃발이 화면 가득 물결치고 그 아래로 비석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원근감이 과장되어 있다. 사진 한 장이 광활함과 숭고함을 동시에 전달한다.

인공기 치마 두른 소녀와 노병 등장 파격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공기로 하체를 감싼 소녀 사진이었다. 노병과 소녀가 나란히 기념탑을 바라보는 뒷모습 구도인데, 소녀는 인공기로 등과 엉덩이를 덮고 있다. 치마처럼, 케이프처럼. 낯선 장면이다. 국기는 전통적으로 신성한 상징물이었다. 접어서 보관하고, 훼손하지 않으며, 몸에 두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이 파격의 원조는 북한이 아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 거리에서 처음 나타났다. 붉은악마 응원 열기 속에서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태극기를 치마처럼, 어깨에 두르는 망토처럼 걸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파격이었다. 국기를 몸에 두르는 것은 금기였지만, 그 파격이 오히려 애국심의 새로운 표현 방식이 됐다. 엄숙한 국기가 생동감 있는 패션이 된 순간이었다. 이번 전승절 사진의 인공기 치마는 다르다. 국가가 기획하고 연출한 장면이다. 자발적 파격이 아니라 설계된 파격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는 이미지의 언어는 같다. 북한은 그 언어를 빌려왔다.

이 사진들을 이해하는 데 미국의 이미지 이론가 W.J.T. 미첼의 개념이 도움이 된다. 미첼은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의 인식이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그가 '픽토리얼 턴(pictorial turn)'이라 부른 이 전환 이후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가 MZ세대다. 이들은 설명보다 장면으로, 논리보다 감각으로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구호가 아니라 색감에 반응하고, 교훈이 아니라 구도에 끌린다. 북한도 그것을 알고 있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린 김정은 사진과 영상도 있다. 대성산혁명열사릉 반신상 앞에 무릎을 꿇고 꽃을 올리는 장면, 기념공연을 관람하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공개됐다. 이 포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5년 6월, 북한은 러시아 파병 전사자의 유해 앞에서 김정은이 무릎을 꿇고 울먹이는 장면을 처음 공개했다. 최고지도자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보이는 사진은 그 이전까지 거의 없었다. 파병 희생자 추모에서 시작된 이 포즈와 눈물이 이제 전승절 열사릉 참배와 기념공연으로 이어졌다. 최근 1년 사이에 자리를 잡은 새로운 이미지 문법이다. 절대 권력자가 몸을 낮추고 눈물을 흘린다. 위계를 거스르는 이미지가 오히려 권위를 높인다. 감성 콘텐츠에 익숙한 픽토리얼 턴의 세대는 설교하는 지도자보다 우는 지도자에게 더 강하게 반응한다. 북한은 그 반응을 학습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 김주애가 섰다. 김정은·리설주와 함께 대성산혁명열사릉을 참배한 사진에서 김주애는 두 부모 사이 정중앙에 배치됐다. 더 정확히 보면 어머니 리설주를 제치고 김정은 바로 옆에, 당·정·군 고위급 간부들보다 맨 앞에 섰다. 이것은 새로운 문법이 아니다. 북한 사진이 오랫동안 써온 전통적 문법이다. 화면 중앙, 지도자의 바로 옆 — 이 약속된 구도, 즉 스키마(schema)를 북한 사진은 수십 년간 반복해왔고, 보는 이들은 그 문법을 이미 몸으로 안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구도가 말한다.

52일간 사라졌던 김주애 전승절에 등장  

주애가 전승절 관련 행사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전열사묘와 혁명열사릉을 찾은 것도 처음이다. 6월 4일 구축함 항해시험 이후 52일간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던 주애의 복귀 무대로 북한이 전승절을 선택한 것이다. 이날 주애는 검은 정장 차림으로 헌화하며 진중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과거 공식석상에서 아버지에게 볼 뽀뽀를 하던 '귀여운 딸'의 이미지는 없었다. 김정은이 전쟁 노병들을 격려할 때 주애는 한두 걸음 뒤에서 따라가며 노병들을 직접 안아주고 인사했다. 가장 늙은 세대와 가장 어린 권력자가 몸으로 연결되는 장면이었다. 당·정·군 고위 간부들 앞에서 국가 의전을 수행하는 후계자의 모습이었다. 김주애가 중심인물이라는 메시지를 이미지가 넌지시 던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전략이 같은 지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인공기 치마, 석양 조포, 영화적 뒷모습 구도로 MZ세대의 새로운 시각 감수성을 자극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십 년간 훈련된 스키마로 권력의 메시지를 심는다. 새로운 언어로 끌어당기고, 오래된 문법으로 각인시킨다.

이 모든 연출의 이면에는 북한 권력자들의 고민이 읽힌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전승절의 의미를 몸으로 아는 세대가 사라져가고 있다. 노병과 청년의 상봉 모임, 박물관 관람, 사적지 순례, 역사 사진 앞의 청년들 — 엿새에 걸친 빌드업은 희미해져가는 전쟁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시도다. 논리로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지로 주입하기로 했다. 텍스트로 읽히지 않는 세대에게 역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북한 선전 사진가들은 조용히 바꾸고 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 역사가 얼마나 희미해지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연극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배우와 관객, 그리고 서사. 전승절 73주년 노동신문 사진에서 배우는 김정은이고, 관객은 MZ세대이며, 서사는 73년 전 전쟁의 기억이다. 달라진 것은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구호 대신 이미지, 텍스트 대신 구도, 설명 대신 연출. 북한은 같은 서사를 새로운 언어로 다시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 무대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무대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북한 선전의 고민을 말해준다.


사진1. 참전용사와 학생들의 만남 행사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23일 "전쟁노병(참전용사)과 평양시 안의 청년들, 학생소년들의 상봉모임이 21일과 22일 각각 진행됐다"라고 전했다. 모임에서 노병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적 군사사상과 탁월한 군사전략, 인민군 군인들과 인민들의 영웅적인 조국수호 정신에 의하여 마련된 고귀한 결실이라며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의 승리를 주장했다. 노동신문 뉴스1



사진 2 김정은과 노병들의 기념사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29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전날 조국해방전쟁승리 73주년 경축행사에 참가한 전쟁노병과 전시공로자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사진 3. 전승세대 사진 들고 행진하는 북한 청년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29일 전승세대의 넋을 이어나가기 위한 청년전위들의 계승 행진이 전날 평양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청년들이 북한이 주장하는 전쟁영웅들의 초상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사진  4. 인공기를 두른 소녀와 노병이 기념탑을 바라보는 장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7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3주년을 맞아 전날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를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전쟁노병과 참전열사 유가족 등의 참배와 조포·축포 행사 모습. 노동신문·뉴스1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