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김주애 재등장...후계자 이미지 조율 고도화
■ 북한 이미지 정치 리포트 2025년 1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약 3개월의 공백을 끝내고 공식 매체에 재등장했다. 9월 베이징 열병식 이후 잠행이 지속되던 가운데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11월 28일 갈마비행장에서 열린 공군 창설 80주년 기념행사를 상세히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호명된 김주애가 김정은과 함께 참석했다. 주목할 점은 조선중앙TV가 공개한 42분 분량의 뮤직비디오 형식 영상이다.
현장음은 대폭 줄이고 배경음악과 내레이션 중심으로 구성했으며, 컷 길이는 대부분 2초 이내다. 이는 시청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광고적 문법이자, 젊은 세대 시청자를 명확히 겨냥한 제작 방식이다. 영상은 드론, 조종석 내부 카메라, 지상 촬영을 혼합해 에어쇼를 동적 화면으로 구성했고, 망원–광각의 반복을 통해 속도감을 극대화했다.
김주애 관련 장면의 편집 방식은 후계자급 대상에게만 허용되는 수준이었다. 투샷과 원샷을 교차 배치하고, 혼자 장교들의 경례를 받는 장면을 삽입했다. 복장 역시 검정 가죽 점퍼와 선글라스로 ‘유년기 이미지’를 벗어나 정치적 상징성이 강화됐다. 특히 여성 조종사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남성 조종사와의 악수보다 긴 분량이 배치되었고, 단체사진에서도 김정은 바로 뒤 좌우에 여성 비행사가 자리했다. 이는 북한이 ‘여성 엘리트’ 서사를 후계자 이미지와 함께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조선중앙TV 1만 4,115시간을 분석한 결과, 김주애가 2022년 첫 등장 이후 600일 이상 화면에 등장한 날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평균 1.83일마다 노출된 셈으로, 북한 후계자 이미지 구축 역사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그러나 2025년 9월 이후 약 3개월의 잠행은 이례적 현상이 아니라 북한의 전통적 ‘인터벌 전략’에 속한다. 북한의 후계자 노출은 항상 ‘등장 → 과잉 → 인터벌 → 강화된 재등장’ 이라는 점증적 구조를 따른다.
이 과정에서 인터벌은 ▲노출 피로도 제거 ▲김정은 중심성 회복 ▲후계자 신비성 증가 △재등장 시 주목도 극대화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 지정 이후 6년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김정은 역시 “호칭 → 직책 → 사진 비공개→ 단체사진 → 공개 노출”의 순서로 점증법을 활용했다. 김주애의 3개월 잠행도 이 같은 구조에 위치시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등장한 김주애는 외형·태도 면에서 더욱 성숙해졌으며, 김정은의 금색 ‘국무위원장’ 엠블럼이 박힌 컵을 사용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는 후계자급 상징을 간접적으로 부여하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김기남 전 비서 이후 등장한 이미지 실무진 세대는 ▲노출 리듬 ▲구도와 위치 ▲간부들의 표정·시선·동작 ▲대외 메시지와 화면 싱크
등을 과거보다 훨씬 정교하게 조율하고 있다. 이번 김주애 재등장은 이들이 구축한 고도화된 이미지 정치 시스템의 작동 결과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진설명 1> 2022년 11월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주애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상징성이 크다. 체제의 안정성, 세습의 당위성, 군사력 과시가 한 장의 사진에 응축되어 있다. 북한은 그 모습을 우표로 제작하기도 했다. 조선우표사 홈페이지 캡처

<사진 설명 2> 김주애가 여성(처녀) 비행사로부터 경례를 받고 있다. 거수경례를 하는 김정은과 달리 목례로 답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쳐

<사진 설명3> 축하공연을 보고 있는 김주애 오른쪽에 최고권력자의 엠블럼이 금색으로 칠해진 컵이 놓여 있다. 김정은의 전용인 엠블럼을 김주애도 나눠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중앙TV 캡쳐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