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현송월, 김정은 이미지 핸들러
■북한 이미지 정치 리포트 2025년 7월 

지난 달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의 이곳 인터넷사이트 이슈 & 포커스에 포스팅한 ‘북한 이미지 정치 리포트 2025년 6월'을 통해 김정은의 사진 촬영 현장이 점차 대형화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행사에 동원되는 주민들의 피로도가 커지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른바 ‘김정은 스펙타클’은 어떤 방식으로 기획되고 촬영되며, 어떻게 행사장 밖의 대중에게 전달되는 것일까? 행사의 실질적인 기획과 집행은 누가 맡고 있는가? 선전선동부를 비롯해 군사, 경제, 역사 등 분야별 팀들이 시기와 목적에 맞춰 행사 콘셉트를 기획하고, 콘텐츠 제작 및 인력 동원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으리라는 점은 비교적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각 부문에서 올라온 기획안을 최종적으로 승인하고, 김정은의 입장에서 실행에 옮기는 또 다른 주체가 존재할 것이다. 북한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보도를 내놓은 바는 없지만, 이번 7월 리포트에서는 ‘북한 사진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 아래, 김정은 사진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현송월’에 주목해 보았다.

● 숲을 보는 현송월
다음은 7월 14이자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이다.

<사진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김정은 동지께서 지난 13일 낙원군 바닷가양식사업소건설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이날 건설이 완료된 살림집들도 돌아보고 군인 건설자들의 수고를 높이 평가했다.(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위원장이 낙원양식장 건설 현장을 시찰하는 장면이다. 북한이 공개한 20여 장의 사진 중에서 드론으로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은 9장이다. 나머지 사진은 일반적인 눈높이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 중 한 장에선 김정은 바로 옆에서 메모를 하던 한명의 군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한다. 항공 촬영을 하고 있는 드론이 내는 소음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 것이다. 지표면에 있는 사람들이 드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최고정치지도자의 일정을 보도하기 위해 드론을 활용해 촬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 들어 드론 샷을 정치 현장 취재에 많이 허용하고 있다. 

현장에는 두 명의 1호 사진가가 배치되어 있으며, 방송용 TV팀은 동행하지 않았다. 영상 촬영은 없이 사진 촬영만 허용하고 있는 점도 북한식 정치 현장 기록과 보도의 특징이다. 동영상은 스틸 사진과 달리 불필요한 정보를 노출시킬 수 있는 약점이 있다. 해상도가 좋은 영상 화면을 외부 관찰자들이 컷 하나하나를 캡쳐해 가며 분석해 정보화할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은 시대에도 군사 현장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된 장소의 경우 영상 촬영팀 없이 사진 촬영팀만 작업을 하게 된다. 
정보 유출을 최소화하겠다는 목적 외에도 화면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다수의 촬영팀이 현장에서 김 위원장을 촬영하다 보면 화면이 복잡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풀(POOL) 취재 형식으로 촬영팀의 숫자를 10명 이내로 제한한다. 북한은 그보다 더 미니멀하게 촬영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2025년 6월 13일자 노동신에 실린, 5000톤급 구축함 '강건'호 진수식 때도 꽃을 바치는 김정은 옆 바닥에 소형 액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TV 촬영팀은 김정은 거리를 둔 채 촬영하고 있다. 사전에 동선을 확인하고 설치한 것인데 사람이 찍는 것보다 화면이 단순해지는 장점이 있다. 
 
7월 14일자 드론 촬영 사진에서도 확인되듯, 1호 사진가 중 한 명은 DSLR 위에 소형 액션캠을 장착해 동시에 영상 촬영을 시도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DJI 매빅 시리즈의 드론 수납가방과 유사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사진 2. ⓵의 사진가는 왼쪽 어깨에는 DSLR 카메라를 메고 있고 오른쪽 어깨에는 드론 수납용으로 보이는 작은 가방을 메고 있다. 양 손으로는 드론 조종기를 들고 있다. ⓶의 사진가의 렌즈 위에는 소형 액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스틸 사진을 찍으면서 동시에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북한식 촬영 형태이다 ⓷ 현송월은 본대와 떨어져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에서 행렬을 따라 다니고 있다.>
<사진 3. ⓵의 사진가>
<사진 4. ⓶의 사진가>

동선은 사전에 철저히 기획되어 있다. 김 위원장은 건물들을 정해진 순서대로 방문하고, 실내에 들어가서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화장실 수압까지 확인한다. 이 모든 순간은 연출된 사진으로 남는다.
이날 사진들에서 주목할 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은 종종 프레임 안에 등장하지만, 현송월은 대부분 화면 밖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송월의 역할은 김여정과 차이가 있다. 물론 모든 장면에서 김여정과 김정은이 함께 등장하지 않는다. 김정은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맨들은 행사를 촬영할 때, 제작진과 행사 진행자들이 화면에 포함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그녀를 단순히 의전 담당자로 보기보다는, 행사 전체의 연출을 담당하는 진행자의 역할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김정은 사진에서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현송월이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던지 화면에 잡히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느라 김정은에게 시선을 집중하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도 현송월이 현장에서 진행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라면 '언론 비서 (press secretary)' 쯤의 역할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에는 언론 취재를 염두에 두고 메시지와 동선을 기획해야 하지만 북한은 권력이 모든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의 귀찮은 취재나 보도를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최종 보도와 영상 컨텐츠의 품질의 최고 수준을 확보하기 위한 현장 지휘만 잘하면 된다. 

● 연출가 현송월
현송월은 김정은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북한의 '이미지 정치'를 설계하는 핵심 인물이다. 2024년  6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영접하는 자리에서도 김정은 위원장 바로 곁에 선 유일한 인물이 바로 그녀였다. 현송월은 회담장, 공연장, 만찬장 등 김 위원장의 모든 동선을 따라다니며 현장을 지휘하고 상황을 점검했다. 때로는 스마트폰을 들어 두 정상을 직접 촬영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2024년 7월 압록강이 범람해서 대규모 수해와 이재민이 발생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보트를 타고 참모들과 현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당시 총 7대의 보트가 현장에 등장했는데 그 중 4번째 보트에 김 위원장과 최측근들이 탔다. 이때 보트 운전 임무를 맡은 2명의 군인 이외에 4명의 측근이 동승했다. 1호 사진가, 조용원, 김덕훈, 현송월이었다. 

이 장면은 뉴스 보도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콘텐츠 제작을 염두에 두고 연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김정은의 현장 활동을 음악과 영상으로 편집해 ‘뮤직비디오’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내보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음악을 전공한 비서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 가수에서 이미지 권력자로
현송월은 원래 보천보전자악단 출신 가수로, ‘준마처녀’라는 히트곡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김정은 집권기에 모란봉악단 단장으로 발탁되었고, 예술인대회와 우리나라 평창올림픽 당시 삼지연관현악단을 이끌며 방남해 남측 무대에 직접 오르기도 했다. 대중 앞에서의 당당한 태도와 언변, 정치행사에서의 현장감각은 단순한 예술인을 넘어선 것이었다.
현송월은 특수혈통 출신도 아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깊은 신임 아래, 김여정과의 친밀한 관계, 리설주의 음악적 공감대 등을 토대로, 북한 권력 핵심부에서 ‘이미지 정치’를 담당하는 유례없는 입지를 확보했다.
김정은의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지도자의 신화’를 재생산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 그 이면에는 현송월이라는 선전 담당자가 존재한다. 그의 역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할지 아직 정답은 없다. 현장 감독(Director)이라고 해야할지, 현장 조정자(Corner people)라고 해야할지, 이미지 핸들러(Image handler)라고 해야할지...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이미지는 점점 체계화되고 있고 발전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