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북한 이미지 정치 리포트 2025년 6월
[북한 이미지 정치 리포트 2025년 6월]
2025년 6월 24일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이 열렸다. 이틀 뒤 26일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세계를 앞서나가려는 우리 인민의 애국적 열정을 배가해주는 긍지스럽고 고무적인 창조물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이 6월 24일에 성대히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 영상의 특징
북한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원산갈마해안광광지구 준공식 영상 편집본은 33분짜리다. 김정은의 동정을 보도하는 아나운서 이춘히의 나래이션과 현장음, 그리고 배경음악을 적절히 배합한 영상은 북한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계정을 통해 전 세계로 전달되고 있다. 필자가 본 계정에는 ‘댓글 사용이 중지되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일방적인 선전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조치로 판단된다.
360도 카메라로 행사장 전체를 한 프레임에 넣음으로써 도입부부터 행사장에 있는 듯한 현실감을 주는 촬영법을 사용하고 해가 떠서 밤까지 이어지는 하루의 모습을 배경 화면으로 사용했다. 사진기자와 영상기자들은 연단 위와 연단 아래로 배치되어 각각 ‘엘리트’와 ‘일반인’들을 따로따로 촬영해 이어 붙인다. 연단 위에 있는 엘리트에는 김정은 가족과 당 간부들, 주 북한 외교관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발언 기회가 아닐 경우 모두 앉아 있다. 이들의 발언을 저 멀리 연단 아래에서 보고 있는 인민들과 군인들은 행사 시간 동안 줄을 맞춰 서 있다. 연단 위에서 김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발언을 하면 참가자들은 연호를 외치거나 박수를 친다. 손에는 꽃술과 인공기가 들려져 있기도 하고 빈 손이기도 하다.

<사진 1. 김정은 위원장의 테이프 커팅 순간에 맞춰 군중 속에 있던 풍선이 일제히 하늘로 오르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 스펙타클한 준공식
요트와 검정 승용차를 갈아타고 행사장 레트카펫에 도착했던 김정은이 준공식 테이프를 커팅하는 순간 행사장 곳곳에 있던 풍선이 일제히 하늘로 오르고 폭죽이 터진다. 급하게 전체 광경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중경 (10명 이내)으로 프레이밍 되어 화면에 등장한다. 집에서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박수를 쳐서 행사에 대한 동의를 해야 할 것 같은 화면 구성이다. 김정은 일행이 건물 위와 호텔 내부 등을 둘러보는 장면 중간중간에 관광지의 건물과 위락시설이 교차편집된다.
이날 준공식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행사장에 등장한 사람들의 숫자이다. 2024년부터 북한 김정은의 ‘1호 행사’의 등장 인물 숫자가 많아졌다. 북한 매체들이 참가자 숫자를 전하고 있지 않는데다 워낙 큰 인파라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다. 다만 북한 행사가 가로줄과 세로줄이 일사불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로줄에 서 있는 숫자와 세로줄에 서 있는 숫자를 곱한다면 추산이 가능하다. 2024년 이후 김정은 ‘1호 행사’ 중 규모가 큰 경우, 가로 300여 명에 세로 150여명의 행사가 반복되고 있다. 약 4만~5만 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은 이보다 규모가 더 크다.
게다가 행사는 낮에 있었던 준공식 뿐만 아니라 야간 공연까지 이어졌다. 최소 5만명의 인민과 군인들이 최소 5,6시간의 행사에 참가한 것이다.
사진기자로 세상의 많은 이벤트를 직접 지켜 본 필자의 눈에 이번 행사는 마치 올림픽 개막식 행사처럼 느껴졌다. 행사의 시작과 끝부분에 폭죽과 화려한 조명이 등장한 점에서도 그랬다. 올림픽이라는 지구인의 축제를 위해 주최국들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 역량을 이용해 시나리오와 동선을 기획하고 리허설 등을 거쳐 스펙타클을 완성한다.
북한의 1호 행사를 전담하는 부서와 인력들은 평소 다른 일을 하지 않고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수만 명의 인원을 동원하고 그들에 대한 이동과 식사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만큼 국가 차원에서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스펙타클의 정점이었다고 분석이 가능하다.

<사진 2. 낮에 동원된 수만 명의 인민들은 밤 공연 때까지 현장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신문 뉴스1>
● 정치적 활용과 인민의 피로감
북한은 화려하고 규모가 큰 준공식을 기록하고 편집한 영상을 국내외에 송출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보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촬영 뿐만 아니라 편집에도 신경을 썼다. 뒤쪽 야간 공연 부분을 보면,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음악과 현장 화면이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인민들이 나오는 장면은 커트가 빠르고 김정은 가족들이 나오는 장면은 커트가 길게 편집된다. 지루하지 않게 편집하면서도 주인공을 확실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게다가 현장 조명 특성상 인민과 군인들의 모습은 어둡게 촬영되었고 무대 위는 밝다.
긴 시간 야외에서 대기하고 서서 행사에 참여하고 박수를 친다는 것 자체가 인민들 입장에서 문제가 될 것은 없을 수도 있다. 볼거리가 많지 않은 사회에서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에 그것도 최고권력자와 최고 문화 인력들이 찾아와 공연과 행사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참여하고 싶은 명분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북한 내부에서 여지껏 해왔던 이미지 정치의 반대 급부가 사라진 점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는 면밀하게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1호 행사’는 ‘사진’을 남겼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이 방문하는 군부대와 공장, 단체의 구성원들은 열정적인 환호가 끝나고 나면 차분하게 서서 기념촬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2000명 3000명의 집단 기념촬영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은 일반 카메라보다는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때 사용하는 해상도 높은 카메라를 이용해 이뤄지기 때문에 수천명이 등장하는 사진이라도 등장인물의 얼굴을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다. 사진은 인화된 후 각 참가자들에게 사후에 전달되며 그 사진은 각 가정에 액자로 걸린다. 탈북자들의 증언과 북한 방송을 보더라도 1호와 함께 찍은 사진이 북한 내부에서 중요하게 인식되며 승진과 직장 이동에 일종의 증명서로 역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반복되는 준공식을 비롯한 대규모 스펙타클 행사에 참여했던 인민들이 기념사진의 형식으로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는다는 점은 과거와는 다른 현상이다.
360도 카메라와 드론으로 공중에서 행사장을 부감하는 경우, 주최측 입장에서는 행사장이 가득 채워져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인민들이라는 요소로 행사를 빛나게 하지만 반대급부로 줄 선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 딜레마일 수 있다. 이미지 정치가 효용은 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허탈한 행사 참여로 기억될 수 있다.

<사진 3. 김정은과 딸 김주애가 연단 위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그들은 연단 아래 군중의 입장에서 보면 무대 위 배우일 수도 있다. 노동신문 뉴스1>
● 퍼스트레이디 이설주의 변신
이미 언론과 분석가들이 내린 결론이긴 하지만 원산갈마관광지구 준공식 행사에서 도드라진 부분은 이설주의 행보였다. 김 위원장의 아내 이설주는 2024년 1월 1일에 열린 신년경축대공연 이후 1년 반만에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18개월 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와 행사 참석에는 딸 김주애가 동행했다. 초등학교 6학년 나이의 김주애는 그 사이 성인들이 입는 정장과 하이힐을 신고 등장하고 있었다.
엄마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이어 소위 백두혈통이 후계자로 준비학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유래없는 4대 세습이 준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설주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였고, 북한 역시 그 부분을 잘 알고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설주의 모습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우선 김주애가 투피스 정장 치마를 입고 있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해 보이는 바지를 입고 등장했다는 점과, 직접 핸드백을 들고 등장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명품 구찌백의 가격보다는 수행원이 들어도 될만한 가방을 직접 어깨에 걸치고 있다는 점에서, 김주애에 비해 공식적인 역할을 덜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이설주 김주애 3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커트에서도 화면의 중심은 김정은과 김주애다. 화면 속 몸의 크기와 위치에서 이설주는 주변에 서있고 보조의 요소로 등장한다. 통역 또는 비서의 위치처럼 등장하고 있다.

<사진 4. 요트를 타고 행사장에 접근한 뒤 김 위원장이 레드 카펫 위를 딸 주애와 함께 걷고 있다. 이설주는 저 멀리 떨어져 비서나 통역 등 보좌의 역할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뉴시스>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