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화정안보 인터뷰 2] 남성욱 고려대 교수 (2)
(1편에서 이어집니다)

Q.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을 보면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는데 맹목적으로 김정은이나 북한 정권의 선의에만 매달렸다는 비판들이 많다. 임기 마지막까지 문 대통령이 매달린 것이 종전선언이다. 그런데 2월 10일 세계 7대 통신사와 연합뉴스 공동 서면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임기 내 종전선언은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종전선언에 관한 마침표를 찍는 그런 발언이었던 것 같다.

A. 그래도 현실을 깨닫고 임기 중에 마침표를 찍고 퇴임을 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혹시 퇴임 후에도 붙들고 밤마다 양산에서 뒤척일까봐 걱정을 했다. 종전선언 이 아이템은 정말 헛발질을 했다. 뭐가 헛발질이냐면 우리가 무슨 거래를 하려고 하면 거래 당사자들이 관심을 갖는 아이템을 가져와야 한다. 청와대는 매번 미국 워싱턴만 갔다 오면 미국이 종전선언 문안에 합의했다고 했다. 그런 미국이 왜 1년이 지나가도록 서울에 대사를 안 보내지 않았나. 한마디로 스토킹 당하기 싫어서 안 보내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서면 보내겠다는 거다. 미국이 했던 10마디 중 한 마디를 가지고 전제조건 없이 미국이 종전선언에 합의했다, 문안이 곧 나온다고 했다. 주미 대사, 외교부 장관 등이 국회만 가면 거짓말하는 것이다.

중국은 종전선언은 하면 좋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해한다. 북한은 어떤가. 종전선언에 무슨 관심이 있겠나. 북한의 관심은 11건의 제재 중 한 건이라도 풀려고 한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해봐야 뭔 소용이 있냐고 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것은 서울이 아니라 평양이다. 종전선언을 하면 북미 간 적대관계가 사라지고 양국이 외교 정상화를 하면 자동으로 제재가 풀린다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그냥 관망하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발을 땅을 디디지 않은 공허한 것이었다. 외교부 장차관, 통일부 장차관, 청와대 참모, 국회의장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프랑스 의회가 한국의 종전선언에 찬성을 한다고 언론에 푸시를 해서 보도하게 한다. 프랑스 상원이 그런 결의를 하는 것은 ‘기브 앤 테이크’가 있어서다. 국제 외교가 그런 거 없이 진행된다고 이해한다면 니콜슨 경의 ‘외교론’을 다시 읽어야한다. 외교에 공짜는 없다. 이 작은 나라가 경제 안보 외교 시대에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모든 장 차관이 파리 런던 도쿄에 가서 종전선언 협조나 요청하다 끝났다. 그러면 상대방은 한국은 뭐 줄 거냐고 한다.

Q. 종전선언 지지 외교에 관리들이 분주했던 것은 대통령의 뜻이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A. 프랑스 의회가 종전선언 결의를 하면 한국 외교부에 주한 프랑스 대사를 통해서 “이번에 어떤 입찰에 들어가는데 프랑스 업체 좀 선정해 주세요” 할 수도 있다. 이런 게 거기뿐이겠나. 미국에서 삼성과 LG가 반도체와 배터리 투자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 얻어낸 것이 뭔가.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회사 대표들 일어나 보세요”하고 립 서비스 한 것 밖에 없다. 비자 쿼터를 더 얻어 냈나. 한국 유학생들 지원책을 얻어냈나. 교민 우대책을 얻어 냈나. 김훈 소설에 나오는 말처럼 ‘조정을 떠도는 유령’에 얽매여 외교력을 낭비하는 것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1941년 진주만 폭격 이후 일본인 13만 명을 격리한 것을 잘못된 것이었다고 했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얻어낸 것이다. 그러면서 관계를 대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은 안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Q. 문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북한으로부터 ‘머저리’ ‘삶은 소대가리’ 등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북한이 역대 한국 대통령을 비난했는데 대북 유화정책을 폈던 문 대통령이 빈도수에서 단연 1등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인내하고 기다리고 선의를 기대했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왜 이렇게 했는지. 김정은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하면서 생긴 친근감인지, 북한의 반발을 막기 위한 전략적 판단인지, 아니면 겁을 먹고 하는 굴종인지 어떤 심층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A. 하나는 문 대통령의 조상이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 (부모가) 6.25 때 배를 타고 온 뿌리에 대해서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함흥에서 우리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에 무얼했었지” 생각하면서 (북한) 사람들을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로 구분한 게 아니라 같은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지북주의자라고 하는 서훈 전 원장에게도 그래서 국정원장을 맡긴 것일 것이다.

그런데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간판을 내걸어 북한의 협조가 없으면 안되는데 북한은 그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과거에 북에 협상하러 가면 북한 인사들이 남측 NGO 관계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당신들 우리 때문에 밥 먹고 사는 거 아니냐. 당신들 우리가 안 오면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 그러면서 서울에서 선물을 더 가지고 오라고 한다. 북한에 약점을 잡혀 강 대 약 구조로 가면 계속 정도가 심해지다 함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Q. 북한의 속성을 청와대나 정부 당국자들이 전혀 모르지 않을 텐데 유화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랄까 긍정적으로 이해할 만한 전략적인 요소는 없는지.

A. 한반도 프로세스는 상대방의 선의를 기초로 한 정책이다. 평화를 제안해서 상대방이 응하면 경제협력을 해서 남북한이 윈-윈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사실은 진보든 보수든 대북 정책은 상대방이 있다. 상대방이 협력하고 선순환 구조로 가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선의를 기초로 평화를 제의했는데,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그 정책은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북 유화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가 역설적으로 제일 못한 게 이산가족 상봉이다. 박근혜 이명박 정부 때도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이 없었다. 왜 그럴까. 남북 관계도 어차피 ‘기부 앤 테이크’여서 주고받고 하는 건데 대등한 구조가 안 되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정책이 이제 선의만 갖고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북관계는 국제관계보다 더 어렵다. 남북 협상이 영어나 중국어로 하는 것도 아닌데 대화가 안 되고 소통이 안 되고 상식이 안 통한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선의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2018년 북한과 미국 간에 어떤 협상의 물꼬를 트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이후 북한의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해 대북전단 방지법, 9·19 군사합의 등 우리 안보상의 취약성을 유발하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등을 얻어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학점은 C학점에 그칠 수밖에 없다.

Q.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종전선언,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9·19 군사합의 이 세 가지를 ‘최악의 3종 대북 정책 선물세트’라고 규정한 것을 보았다. 다음 달 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차기 정부가 들어서는데 3종 세트 등 대북 정책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A. 대북전단은 북한 주민이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것을 법으로 그것도 북한의 요구로 제정된 것은 헌법상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맞지 않는다. 북한 내부적으로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어떤 문틈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9·19 군사합의로 전방 40개 정도의 GP를 무인(無人)으로 바꾸고 비무장지대 근거리에서는 훈련을 하지 않게 됐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1년 전 38선에서의 군의 경계 태세와 뭔가 닮아가는 양상이다. 종전선언은 북한도 별로 관심이 없는 사항이다.

Q. 북한이 다음 달 대선을 주시하면서 선거가 끝나면 어떤 도발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나. 특히 야당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좀 더 강한 도발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지.

A. 네 명 후보 누가 다 당선되든지 도발은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친북 후보라고 생각해서 도발이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1월 7번 미사일을 발사한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김정은은 워싱턴과 게임을 크게 벌리고 있다. 미국의 전선이 약해진 틈을 타 벌이는 것이다. (도발은) 남측 여야 진보 보수 후보를 떠나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워싱턴과 큰 게임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안 그럴 것 같다고 하는 말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됐을 때 도발을 해야지 워싱턴에 가서 바이든 손을 붙잡고 압박을 하든지 바지가랑이를 잡든지 해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5월 15일 차기 대통령이 취임하면 지금 예정으로는 6월 1일 지방선거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호기를 김정은이 놓칠 수가 없다. 워싱턴은 한반도에서 1만km 이상 떨어져 있는데 바이든이 서울에 왔을 때 쏴야지 위험을 절감할 수 있게 만든다. 미국이 전략자산을 괌에서 전개하든지 하겠지만 김정은 입장에서는 올해는 그런 게임을 벌려야 될 시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야 제재를 해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3월 9일 대선 이후 한미 간 어떤 정치 일정에 맞춰서 ICBM 발사 시험 등 북한의 도발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김정은은 과거 유엔안보리에서는 중러가 자신들을 압박해 결의안을 내놓았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Q.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두 개 자치공화국을 승인하고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분으로 푸틴은 진공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으로 규정했다. 우크라이나와 한반도의 관련성에 대한 분석들이 많다. 특히 1990년대 초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주권을 위협당한다는 시각이 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면 우크라이나처럼 되니 포기하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삼지 않을까 싶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 중에서 가장 심각한 측면이 이런 것이 아닌지.

A. 김정은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사태를 겪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핵개발을 해왔다.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언이라는 거짓말에 속아서 일부 친북 학자들이 되뇌이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은은 미국의 전선이 약해지는 틈을 노릴 것이라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본다. 심리전 경제전 군사전 등이 혼합되어 있다. 3월이 되면 벌판의 얼음이 녹아 탱크 등에 의한 군사 기동이 여의치 않게 된다. 그럼에도 푸틴 입장에서는 이 전쟁은 구조의 문제여서 얻는 것 없이 철수할 수는 없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등이 과거 친 러시아연방에서 분리 독립된 것이기 때문에 원위치시켜야 된다는 논리다. 여기에 중국이 서포터즈(지원국)가 되어 푸틴는 아주 신이 났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국력이 조금 다운사이즈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국제정치의 판이 조금 흔들리는 것을 보여준다. 한반도에도 영향을 주는데 결국은 자강의 논리를 심어주는 것이다. 북한도 자강, 남한도 자강인데 우리는 한미동맹 속에서 자강을 해야 된다. 미국과 철저하게 동맹관계를 맺지 않으면 만약 대만 해협에서 긴장이 고조돼 주한미군이 빠져나가면 한반도의 역학 구조가 변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훈은 북한 뿐 아니라 한국도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터뷰 후기

남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문재인 정부 5년의 대북 정책을 정리하는 백서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북 유화 정책을 펴면서 진행했던 대북 접근에서 문제점은 무엇인지, 후임 정부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면밀히 분석해 기록으로 남겨 둘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 교수는 “북한은 남한 당국자와 대화나 협상을 할 때 ‘과거 남측 장관은 이런 얘기를 했는데 왜 다른 소리를 하느냐”고 책상을 손으로 치면서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대북 정책은 북한에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 정책 백서 발행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조가 달라지면서 빚어지는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이해된다

구자룡·윤융근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