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화정안보 인터뷰 2] 남성욱 고려대 교수 (1)
길잃은 문재인 정부 대북 유화정책 5년, 백서 만들어 귀감 삼아야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남성욱 교수 인터뷰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새 정부 출범은 선거 후 2개월 여 뒤지만 국정의 축은 당선자와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남성욱 교수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5년을 되돌아본다.

Q. 2월 20일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평창 어게인’을 하려고 한다는 관측이 많았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듯이 결국은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A. ‘평창 어게인’이 아니라 ‘미사일 어게인’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한국 주도로 북미 또는 남북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2018년은 북미간에 접촉이 없었고 김정은도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이었다. 모든 것이 다 낯설고 새로운 상황이어서 한국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중계자 역할을 시도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와 하노이 그리고 판문점까지 세 차례 북미 접촉을 통해서 양측은 수많은 러브레터를 서로 교환하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북미간 메인 게임의 핵심은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기브 엔 테이크’를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였다. 하노이에서 봤듯이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한국이 뛰어들어 양측의 손목을 붙잡고 어떤 회담을 전개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었다.

한국 대통령은 단임 5년이어서 3년 반~4년 차에 들어가면 정권이 동력을 잃으면서 레임덕에 빠진다. 이것은 대외 정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임기 말에도 종전선언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모든 참모들이 외교력을 낭비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굉장히 공허한 것이었다. 임기 말에 ‘평창 어게인’을 하겠다는 시도는 너무나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Q. 베이징 올림픽은 문재인 정부로서는 친중국 정책을 마무리하는 계기도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편파 판정 시비 등으로 한중 양국 국민들의 감정이 오히려 악화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A. 문 대통령의 대외 정책 중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을 분야 중 하나가 대중 정책이다. 왜 미국에 가서는 할 말을 하면서 베이징에 가서는 혼밥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오판과 오해는 중국에게 있어 한국의 가치는 한미동맹의 강도에 비례한다 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가까워질 때 중국이 우리를 챙기고 돌아보고 배려한다는 외교 상식의 ABC를 잊었다. 때문에 한미 동맹이 이완되고 한미 간에 거리가 생겼다. 한국 대통령은 베이징에 가서 조선시대 조공 구도 형식으로 황제를 알현하는 시대의 한중 관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든가 김정은 위원장을 활용한다는 구상 자체가 중국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중국은 세계 제2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아직 1840년 아편전쟁 시절 서구 강대국에 의해서 공격을 받았던 트라우마,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고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뭔가 품격을 보여줘야 되는데 중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G2 국가이긴 하지만 베이징 상하이(上海)를 비롯한 대도시를 벗어나면 내륙으로 갈수록 국민소득 5000 달러 미만인 지역들이 많다. 시진핑은 빈부 격차가 공산당의 토대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공동부유(共同富裕)’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반(反)시장 정책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IT, 유튜브를 비롯한 SNS 플랫폼의 중단, 연예인 활동 금지, 영어 공부 하지 마라 등 문화대혁명 시절로 회귀하는 듯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중국의 도약이 역설적으로 한계에 맞고 있는 상황을 한국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일방적인 구애나 중국에 대한 존경, 예우 등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결국 2030세대의 공정 합리성 키워드와 맞지 않아 차기 정부는 한중 관계를 바로잡는 숙제를 맞고 있다.

Q.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들어선 뒤 그 해 후반 북한은 6차 핵실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실험 등을 했다. 한반도에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이듬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한 것을 계기로 극적인 반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A. 국제 정치를 볼 때 구조적인 문제냐, 전략 전술의 문제냐를 구분해야 한다. 지금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구조에 관한 문제다. 푸틴 입장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막아야 된다는 것이다.

2017년 트럼프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북한과의 여러 가지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미국 지도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군사적인 도발은 하나의 수단이다. 이건 전략 전술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구조적인 문제인 것과는 다르다.

나는 2017년 하반기에도 일촉즉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두 사람이 대화 국면이 일어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양측은 일종의 전술 전략적 측면에서 화염과 분노를 얘기했고 한쪽은 미사일 도발을 했던 것이다. 양측의 접점 꼭지를 평창에서 찾았고 문재인 정부는 그 틈새를 파고들어 (남북과 북미) 회담으로 이어졌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를 한 것은 오산이었다. 차관급 회담에서 해결되지 않는 아젠다는 대통령 회담에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성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한 최선희를 판문점에서 7번 만났지만 북한은 어느 것도 양보할 수 없었다. 결국은 양측 모두 정상에게 공을 던져 실무자들은 책임을 면피했다. 싱가포르는 트럼프로서는 상견례에 불과했지만 승리자는 김정은이었다. 김정은은 꿈에 그리던 시진핑과의 회담을 다섯 차례나 하면서 브로맨스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연극의 시간은 끝나고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다. 이제는 양측이 패를 다 까야하는 상황이었다. 김정은은 “영변을 포기할 테니 대북 제재 11건 중 5건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영변과 5건의 제재 해제’. 북한은 미국의 정보를 쉽게 과소평가했다.

영변이 북한 핵 개발의 성지이긴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될까말까였다. 분강 강선 등 수많은 우라늄 농축 시설이 산재해 있는데 영변 해체만으로 제재를 풀어달라고 했다.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제재 11건 중 5건만 해제해 달라는데 이걸 안 들어준 미국은 날강도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2016년 안보리 제재 2270호 이후 제재는 돈줄 제재다. 이 돈줄 제재는 하나를 풀면 실타래 줄이 끊어져 결국은 유야무야 된다.

김정은은 5개만 풀면 되겠다고 생각하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 아마도 김정은이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을 떠나기 전 작전을 세울 때는 트럼프라는 사람이 덜렁거리고 비즈니스맨이라 우리 장군님이 코너로 몰고 가 그냥 쑥덕쑥덕해서 사인을 하면 될거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최용해 김영철 등이 그런 보고를 했을 것으로 추정을 한다.

미국 정치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트럼프의 행동을 제지할 여러 가지 그물망이 있다. 존 볼턴 등 스태프들이 나서 대통령이 와인 한 잔 먹고 사인을 하는 그런 외교 행태를 못하게 견제를 했다. 여진은 남아서 트럼프가 오사카 G20 정상회담에 왔다가 6월 30일 판문점에서 한번 만나고는 각자 갈 길을 갔다.

여기까지 진행될 때 문재인 정부의 중계 외교를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북미 남북 관계 진전이) 왜 안 됐을까 자성과 자숙을 해보고 대안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방향이 잘못됐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나고 평양가서 9·19 군사합의하고 15만 명 북한 군중 앞에서 연설도 하고 부인을 동반해 백두산 정상에도 올라가니까 감격과 흥분이 있었다. 마치 통일 대통령이 되는 착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북한의 전면 비핵화를 전제로 제재 해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평양에 가면 듣기 좋은 얘기를 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당시의 서훈 국정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본인들이 지북파(知北派)라고 한다. 그렇지만 2019년 6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턴을 하면서 바로 잡아야 됐어야 되는데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원하는 정책만 너무 많이 했다. 대북전단방지법, 일명 김여정 하명법, 그리고 9·19 군사 합의인데 이것은 비무장지대 무장 해제로 이어졌다. 이 두 가지 정책은 한국의 근본적인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가 있다. 북한 체제의 변화는 정보의 유입인데 대북전단 방지법을 제정함으로써 인민들이 여전히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의 감옥에 갇히게 만들었다.

Q. 북한은 올 1월에만 7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또 핵실험과 ICBM 발사 유예 조치도 재검토하겠다고 해서 여차하면 레드라인을 넘겠다고까지 선언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의 대북 유화 정책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헛발질을 했다, 평화쇼만 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A.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키워드로 정리하면 ‘대북 유화 정책’ ‘친 김정은 정책’ ‘향북(向北·북한 바라기) 정책’ ‘올인 평양 정책’ 등이다.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서 2년간 근무했던 서훈 전 국정원장은 자신은 친북이 아니라 지북이라고 한다. 북한을 알면서 안하면 그거는 더 문제가 있다. 북한을 알았으면 거기에 맞는 정책을 했으면 오늘날과 같은 결과는 안 나왔을 것이다. 결국 북한을 가짜로 아는 사이비 지북 정책이 됐다. 북한의 심기를 고려해 기분을 좋게하는 정책을 한다고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통일이나 남북 문제가 우리의 문제니까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주체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민족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1월 7차례 발사한 미사일은 서울을 겨냥하는 동시에 워싱턴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 국제정치의 전선이 약해졌다는 틈새를 노리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UN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더 이상 미국의 전선이 대만, 우크라이나, 판문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가 대북 제재를 해제할 호기로 보고 강공 모드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한국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한미 동맹을 통해서 대응을 해야 한다.

우리 문제인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야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단이 우리가 원해서 됐나. 한반도의 국제 정치에서 우리의 역할은 70~80%가 안된다. 동북아는 남북 관계도 있지만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중과 압력이 굉장히 높은 곳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우크라이나의 운명에 대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목소리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크다. 이게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의 운명이다. 우크라이나는 기본적으로 동서의 대립이다. 한반도에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하면서 우리끼리 손잡으면 뭔가 내일 모레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끔 걱정이 된다.

(2편에 이어집니다)

구자룡·윤융근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