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박철희) 미·중 모두에게 버림받을 무모한 줄타기

지난달 한·미 외교·국방(2+2) 회담에 이어, 지난 2일 미국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3일에는 중국 샤먼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잇달아 열려 한국을 둘러싼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한국은 잇단 회담에서 대중(對中) 직접적 비판을 회피함은 물론 중국과 협력의 문을 열어 놓고 있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북한 비핵화를 목표치로 내놓으면서도 북한과의 협상 재개에 대한 관심을 계속 표명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도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지만, 방점은 미·북 협상 재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 역시 북핵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중국을 끌어넣은 모양새다.


현 정부가 취하는 ‘균형외교’란, 미·중 경쟁 구도에서 미국 중심의 ‘동맹중독’에서 벗어나 중국도 동등하게 배려하는 것으로 읽힌다. 중국과도 2+2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게 그 증표다. 오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이런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주의할 점은 ‘균형외교’가 ‘양다리 걸치기’나 ‘등거리 외교’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중간한 입지 선정은 오히려 어느 쪽에서도 신뢰받지 못하고 ‘방기’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균형외교가 ‘전략적 선택의 회피’나 ‘전략적 모호성’의 일관으로 보여선 안 된다. 한국은 중국과의 일상적인 교류, 교역은 충실히 하더라도 안보 문제와 첨단기술 문제에서는 미국과 함께할 것이란 ‘선택적 불관여’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비공식 그룹인 쿼드(Quad)의 세 가지 워킹그룹, 즉 코로나, 기후변화, 핵심 신기술 분과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둬야 한다. 군사적인 중국 포위망 참여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초국경적 이슈, 국제법 질서 수호, ‘활력 있는 아시아’의 건설 등에 앞장서는 중견국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


북한 문제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알리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만, 북핵 해법 제시에 앞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개념이 정확하다는 진단을 국제사회와 함께 정착시키는 게 옳다. 또, 북한이 8차 당대회를 통해 핵무장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 한국도 자체적인 안보 역량 강화와 더불어 연합훈련 재개를 포함한 한미동맹 강화 조치에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 ‘힘의 우위에 기반한 평화’ 기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돌려막기식 대북 협상 추구’라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보여주기식 정상회담’이 어려움을 직감한 정부는 일본에 ‘도쿄올림픽을 활용한 평화제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일본이 시큰둥하고 열의를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중국에 정치적 해결을 위탁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시야에 넣은 정상회담을 구상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항간에 떠돌고 있다. ‘평창 어게인’이라는 반전의 추억을 기대하기보다는 북한을 비핵화시키기 위해 미국과도 잘 조율된 장기 협상 전략을 짜야 한다. 정권 말기의 선거전략 같은 평화 게임에 북한도 순순히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문화일보 2021년 4월5일자 A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