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한승주 "문 정부 외교...있어야 할 건 없고, 없을 건 있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다자외교 무대가 급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방국들에 중국과 러시아에 함께 맞설 것을 촉구했지만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에게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한승주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미국과의 신뢰는 금이 갔고, 일본과는 최악이고, 중국과 돈독해진 것도 아니고, 북한에는 끌려다니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영삼(YS)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주미 대사를 지낸 그는 최근 이 같은 고민을 담은 책(‘한국에 외교가 있는가’)을 출간했다.》


―책 제목은 직접 정하신 건가요.

“그렇지요. 평생의 마지막 책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외교에 있어야 할 건 없고, 되레 없어야 할 건 있으니까요.”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트럼프 외교를 인재, 정책, 절차가 없는 3무(無) 외교라고 했는데 우리도 닮은꼴입니다. 외교 부처 간부나 주요국 대사를 선정할 때 전문성과 경험보다 정권의 ‘코드’나 정치적 개인적 인연을 중시해 효과적인 외교에 지장을 주고 있지요. 일본과의 관계가 최악인 것처럼 출구 없는 무모한 결정을 내리기 일쑤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는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선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언급은 외교적으로 아주 비현실적이고 경우도 없는 거예요.”


   ―경우가 없다니요.

“외교 관례상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가 훈수와 조율이나 합의 안 된 사안을 먼저 발표하는 서프라이즈(surprise)예요.” (문 대통령의 말이 훈수입니까?) “결국 바이든에게 트럼프 정책을 계속하라는 것 아닙니까? 좀 친해지면 대화 도중에 넌지시 말할 수는 있지만 기자회견에서 상대국 대통령에게 대놓고 말할 성격은 아니지요.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난 건 정상적인 외교 행동이 아니에요. 트럼프니까 한 거지. 그걸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훈수를 한 거죠.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 민주당에서 가장 오래 외교위원장을 한 사람이에요. 북핵은 물론이고 한반도 문제에 대해 트럼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고요. 그런 바이든이 즉흥적으로 김정은을 만날 거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인 생각이지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검증을 거쳤을 텐데 왜 안 걸러졌을까요.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외교부가 모를 수는 없고… 전문가 검증을 안 거쳤든지, 아니면 했더라도 지적을 안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럴 수도 있습니까?) “문 대통령은 일편단심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이뤄지길 바라는데 아랫사람이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강경화) 장관이 그런 말을 할 스타일도 아니고…. 2001년 3월 김대중(DJ)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잘 안됐습니까?) “자신이 북한 전문가라고 생각한 DJ가 취임 두 달도 채 안 된 부시에게 북한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강의를 했지요. 부시가 굉장히 기분 나빠했는데, 지금도 외교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정상회담의 디재스터(disaster·참사 재앙) 사례로 공부하고 있어요.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먼저 통화한 것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지요.”


―먼저 하면 안 됩니까.

“안 될 건 없지만 전 비정상이라고 보는데… 동맹국인 미국 신임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에 미국과 긴장 관계인 중국 국가주석과 먼저 통화를 하면 미국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미국이 한국은 중국 영향력 아래 있는 나라라는 인상을 가질 수 있어요. 센스 있는 정부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의미를 몰랐을까요?) “몰랐다면 문제가 있는 거고… 의도를 갖고 했다면 더 큰 문제고….”


―미국과의 신뢰 관계가 과거보다 많이 손상됐다고 보시는지요.

“제 생각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보다도 못한 것 같아요. 노 대통령은 말은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세게 했지만 한미동맹을 중시했고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주미 대사 시절 한 미국 당국자가 제게 ‘노 대통령이 말은 과격하지만 행동은 믿을 만하다’고 했지요. 안 될 것 같다고 하면 알아들었고…. 지금은 뭐… 말 자체를 안 듣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서로 성향이 다른 것 같은데 노 전 대통령이 왜 주미 대사를 부탁한 겁니까.

“2003년 초인데… 노 대통령에게 나는 당신을 찍지도 않았고, 당신의 정책을 다 동의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주미 대사를 하느냐고 반문했지요. 그랬더니… ‘그래서 맡아달라고 하는 겁니다’라고 하더군요.” (이유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자신이 반미가 아니라는 걸 미국에 보여줘야 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당시 2차 북핵 위기가 터졌는데 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 거라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어요. 제가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 외무부 장관을 했으니 그 경험을 살려서 막아달라는 거였지요. 노 대통령이 잘못 생각한 거긴 하지만….” (잘못 생각했다니요?) “1차 북핵 위기 때 당시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에게 물어봤는데 (북폭) 계획안 자체는 자기 책상 서랍에 있었지만 그걸 대통령에게 보여준 적도 없고, 내부적으로 논의하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1994년 9월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받고, NPT에 복귀하는 제네바 합의로 위기가 해소됐으나 북한은 다시 2003년 1월 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


―일본과도 최악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만….

“YS 이후 역대 정권들은 늘 집권 초에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어요. 그러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 때문에 나중에는 관계가 안 좋아졌지요. 노 대통령조차도 처음에는 개선해 보려고 했으니까요. DJ 때는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고요. 그런데 문 대통령은 시작부터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깨고 시작해서… 좋아지려고 노력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요.”


※2017년 12월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때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합의로 발족한 화해·치유재단은 해산됐다. 사실상 합의 파기로 간주된다.


―전·현 주중 대사인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중국에는 문외한인데 대사직이 그래도 상관없는 자리입니까.

“상관이 왜 없습니까? (그 나라) 말도 좀 하고 그래야지…. YS는 대사 인사에 관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점점 더 청와대가 관여하는 것 같아요.” (신임이 두터우셨나 봅니다.) “저를 믿었다기보다는… YS 인사 스타일이 그런 것 같아요.” (진짜 한 명도 관여하지 않았습니까?) “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이 세 명 있었는데… 하하하. 한 명은 문제가 있어서 적절치 않다고 했더니 ‘알았다. 없던 걸로 하자’고 해서 안 했어요. 다른 한 명은 본인이 희망하는 곳으로 보내주지 않았고요. 당시에 외무부는 정말 인사 청탁이 많았어요. 하도 많아 공식적으로 직원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 인사 청탁 들어오면 이름을 공개하겠다고 했지요. 이후로 많이 줄더군요.”


―무식한 질문인지는 모릅니다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습니까.

“10년 전만 해도 내 평생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는 걸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아요. 노력은 해야겠지만… 일단은 지금보다 더 만들지 않고 줄여가도록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외교는 트럼프나 북한처럼 해야 된다고도 합니다만….) “당장은 그런 게 속도 시원하고 뭔가 얻는 게 있어 보이지만 정상적인 국가들이 외교를 그렇게 안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지요. 좀 답답하고 모호해 보여도 서로 예의와 선을 지키는 이유가…. 트럼프나 김정은이나 혹자들은 잘한다고 하는데 지금 결과적으로 된 게 뭐가 있습니까. 뒤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 비웃음이나 받지.”


―현 정부가 1년여 남았는데 당부하실 말이 있으신지요.

“외교는 바둑처럼 다음 수를 생각해야 하는데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일단 저지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잘 풀릴 경우와 아닐 경우 모두 대비가 돼있어야지요. 감당할 수 있는지도 잘 따져 봐야 하고…. 북한과의 정상회담도 성과라면… 자기선전에 급급한 대통령이 들어서면 김정은에게 놀아날 가능성만 있다는 교훈을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걸 세계에 한번 보여줄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이 조금 길게, 넓게 보고 일을 했으면 합니다.”

(동아일보 2021년 2월 23일 A31면 이진구 기자의 對話)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