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제목제28회 강좌-이종찬 전 국정원장
-제28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 강좌

-표류하는 남북관계 돌파구는 없나
-이종찬 전 국정원장
-2019년 11월 18일(월) 오후 2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

▣ 동아일보 2019년 11월 19일 A8면

"지소미아 종료 美가 이해? 거짓 보고자 문책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해 청와대 사람이 ‘미국이 이해한다’고 보고(8월 22일 청와대 브리핑)했는데 거짓말이었다. 그 사람은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원장(사진)은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개최한 제28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지소미아 종료 논란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일본 입장을 반박하는 것은 마땅하나, 지소미아 유지를 강력하게 원하는 미국 기류를 일부 청와대 관계자가 애초에 잘못 파악하고 보고했다면 문책감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 것이다.


이 전 원장은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경제 보복을 하면서 안보상 한국을 믿을 수 없으니 전략물자를 통제한다는 것은 고도로 교활한 이중 정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이해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이를 청와대 사람이 상부에 잘못 알려 이 난리가 난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마치 임진왜란 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김성일이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잘못 보고한 것과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어 이 전 원장은 이 같은 의사 결정의 뿌리에 ‘청와대 중심적 구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작 때부터 청와대가 비대해지면 실패한다고 지적했는데, (현재) 내각은 사라져 버렸다”며 “후반기에 들어선 문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청와대가 권한도 줄이고 사람도 줄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 주간동아 1215호 

"일방적 호의로 평화 달성 못 해...북한에 할 말은 해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거론은 서툴렀다. 청와대 인사가 미국에 다녀온 뒤 공식 브리핑을 통해 ‘미국 측이 이해한다’고 국민에게 설명했는데 거짓말이었다. 거짓 보고를 한 그 사람은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국정원) 원장(사진)은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11월 18일 ‘표류하는 남북관계 돌파구는 없나’를 주제로 개최한 제28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한일 지소미아 파동에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 전 원장은 “대통령 임기 5년 내 남북관계에서 뭐가 다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국정원장을 지냈다. 다음은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지소미아 잘못된 보고자 처벌받아야”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지만, 역사를 잃으면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10여 개 정당이 난립한 것에서 보듯이 우리보다 더 분파가 심하지만 수시로 대화하며 하나의 목표를 만들어간다. 공통의 구심점으로 뭉쳐 영토를 넓히며 버티고 있다. 

 
반면 쿠르드 민족은 어떤가. 인구는 이스라엘보다 많고 여성 전투원의 용맹성은 세계 최강이지만, 역사도 잃고 영토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쿠르드 점령지역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밝히자 터키가 쿠르드 민병대를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에는 관대하고 쿠르드에는 냉혹하다. 자국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다. 무역이 흔들리고 대외관계가 끊기면 살 수 없는 나라다. 그럼에도 외교를 홀대한다. 역대 정부조직표를 보면 통일부총리, 경제부총리, 과학부총리가 있는 것에 비해, 외교부는 쪼그라들어 있다. 지금의 어려운 외교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현재 사면초가 상태다. 미국은 한국이 부자 나라라면서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까지 들먹인다. 하지만 평택 미군기지에 가보면 규모나 위치로 봤을 때 철군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요지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쟁 수행이 가능한 국가로 가기 위해 헌법을 바꾸려 한다. 이럴 때 지소미아 종료를 거론한 것은 서툴렀다. 청와대 인사가 미국에 다녀오더니 ‘미국이 이해한다’고 보고(8월 22일 청와대 브리핑)했는데 거짓말이었다. 그 사람은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은 경제보복을 하면서 안보상 믿을 수 없으니 전략물자를 통제한다는 핑계를 댔다. 교활한 이중정책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도 어렵다. 최근 지소미아 이외에 B안을 만들어 지소미아는 거의 덮어놓고 가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것을 일본이 받아들일까 의구심이 든다. 정보는 어디서든 필요한 내용을 얻는 것이다. 일본에서 제공하는 정보라고 안 받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 그렇다고 이제 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기도 굉장히 어렵다. 


후반기에 들어선 이 정부에 꼭 하고 싶은 말은 “청와대를 줄여라. 권한도 줄이고 사람도 줄여라”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부터 청와대가 비대해지면 실패한다고 말했다. 지금 청와대는 역대 청와대 가운데 가장 비대하다. 비서들이 득세하면서 내각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장관 위주로 정책을 펴야 한다. 


미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너무 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언론은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고 악선전한다. 북한은 계속 악담만 한다. 한국 정부는 무관중 폭력 축구, 금강산 관광 철회 위협, 북한 선원 송환 문제에 끌려다닌다. 줏대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임기 5년 내 뭐가 다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남의 일인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쪽은 우리다. 우리는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다.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쏘면 위협이 되니 쏘지 말라고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라고 자꾸만 호의를 베풀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북한과 눈을 부릅뜬 채 싸우라는 말이 아니다. 줄 것은 주되, 주지 못할 건 절대 주지 말아야 한다. 할 말은 하라는 것이다. 통일은 먼 얘기다. 평화가 제일 중요하다. 평화는 일방적으로 호의를 베푼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와 관련된 우리 협정문에는 결함이 있다. 국회 비준을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면 다른 소리를 한다. 남북기본합의서 북측 발표문을 보면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동의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국회 동의 사항이 없으니 정부가 바뀌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합의서가 되는 것이다.


한미동맹 유지, 발전에 큰 그림 필요


안보 측면에서 보면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하면서 한미일 3각 체제에 들어서는 것을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중국을 상대하는 현실을 살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스위스와 스웨덴만 침공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변으로부터 대우받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4강에 포위된 우리는 확고부동해야 한다. 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목표는 확실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70년 동안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기여해왔다. 그렇지만 상황이 바뀐 만큼 미국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한미동맹을 유지, 발전시키는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물론 자주국방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 한국도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돌입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도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서도 어떤 입장을 취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북정책의 초당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통일을 정쟁 이슈로 삼지 말아야 한다. 국론 통일 없이는 어떤 힘도 갖기가 어렵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