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3)

 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남시욱(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종전선언의 유래


  종전선언(Declaration of the End of War)은 국제법 용어가 아닌 정치적 용어여서 엄격한 정의가 없다. 대체로 전쟁을 종료시켜 상호 적대 관계를 해소하기를 원하는 교전 당사국 간의 공동선언을 말한다. 전쟁종료 선언을 뜻한다는 점에서, 전쟁상태인 ‘정전’이나 ‘휴전’과는 다른 개념이다. 또한 전후 뒤처리 선언이 아닌 점에서 평화조약과도 다르다.


  종전선언의 예는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체결된 캠프데이비드협정이 있다. 이는 그해 9월 5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메릴랜드 주에 있는 대통령전용별장 캠프데이비드로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총리를 초청해 마라톤 정상회담을 개최한 결과 도출된 역사적인 협정이다. 이 협정의 정식조인은 17일 백악관에서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평화조약이 1979년 3월 26일 조인되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반도가 1982년 4월까지 이집트로의 반환이 완료되어 양국 간의 평화가 회복되었다.


  또 다른 종전선언의 예는 금년 7월 9일 동북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인접국인 에리트레아 사이에 체결된 '전쟁상태의 종식' 선언이다. 이 선언으로 그 동안 18년간 계속되었던 양국간의 국경분쟁이 끝났다. 두 나라는 지난 2000년, 2년간의 국경분쟁을 끝내는 화평협약을 맺었으나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그 동안 '전쟁도 평화도 아닌 긴장상태'가 지속되어오다가 이번에 다시 종전선언에 합의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2006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 한다. 이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1단계 조치로 '종전선언'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때 평화조약과 명확히 구별하지 않은 채 종전선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의 언급에 주목한 노무현 대통령은 이듬해 9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정색을 하고 이를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은 약 1개월 후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한국에서 종전선언 아이디어는 노무현정부 당시 국정원의 구상이라는 것이다. 이 때 국정원은 북핵문제 해결방안으로 핵문제 해결조치 진행→평화체제 구축 협의 진행→북·미 간 대타협 구도→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루어진 4단계방안을 마련했는데 종전선언 아이디어는 여기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국정원은 2006년 청와대 안보실에 북핵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포함된 상징적 행사인 종전선언을 따로 분리해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종전선언은 ‘노무현 국정원’이 저작권을 가진 셈이라는 것이다(송호근, “발굴 단독-문 평화체제 노무현 국정원 구상대로 실현 중”, 신동아 2018년 7월호, p. 76).


2007년 노무현-김정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합의


  여하간, 노 대통령은 2007년 10월 초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문제를 제의해 결실을 보았다. 김정일은 처음에는 이 문제를 우선 부시 대통령과 토의해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상회담 결과를 정리한 10·4 선언 4항에서 “(양측은)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3개국 또는 4개국 정상들이 한반도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약간 논란이 있었지만 북한이 그 전해, 즉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10·4 선언에서 ‘종전’을 미국 또는 미중 2개국과 함께 선언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10·4 선언이 북핵문제를 6자회담에 떠넘긴 사실이다. 즉 10·4 선언은 6자회담의 9·19공동선언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한반도평화체제를 북핵문제와 전혀 연동시키지 않았다. 


2007년 10월 2일 낮 평양시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나 악수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사진기자단.


  사실 노 대통령은 이 무렵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정신이 쏠려 북핵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는 평양방문 직전인 2007년 9월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평양 가서 핵 논의하라는 것은 김정일과 싸우고 오라는 얘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평양방문 때 김정일과 핵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국민과 언론, 그리고 야당의 요청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정략적인 의미로 평가한다” “시빗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라는 등 해괴한 논리로 김정일과의 북핵문제 논의를 기피했다. 그러면서도 노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평화협정이어야 한다는 이상할 정도의 강력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북측이 핵개발을 계속하는 한 평화협정을 백번 맺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멘토인 노 대통령의 종전선언 DNA를 물러 받았는지 10년 6개월이 경과한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김정은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어김없이 예의 종전선언 추진에 합의했다. 판문점 공동선언은 3조 3항에서 “휴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2018년)에 종전을 선언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노무현·김정일 간의 종전선언 합의는 그로부터 2개월 후 실시된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집권당인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정동영의 낙선으로 사실상 백지화가 되고 말았지만 이번 문재인·김정은 간의 종전선언은 이와는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은 이를 비핵화 추진을 거부하는 빌미로 삼으면서 문재인정부가 자주성이 없다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다. 북측 요구로 8월 13일 열리는 판문점 남북고위급회담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을 논의하면서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 등과 관련해 대남압력을 높이려는 의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종전선언 문제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때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듯이 보여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1일 백악관에서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았을 때였다. 김영철과의 면담에 만족한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공식화한 다음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종전선언문제 논의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소식이 서울에 전해지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3국의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언제든지 싱가포르로 날아가기 위해 대기상태에 들어갔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이미 중국으로부터 모종의 지원 약속을 받고 입장이 강화된 김정은의 양보 없는 행보로 인해 미북 핵협상은 기대만큼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내건 한반도운전석론은 어느새 북측의 비아냥거림처럼 한국이 ‘조수’석에 앉은 듯한 상황으로 변하고 말았다. 북핵문제는 사실상 미북간의 문제가 되어버리고, 문재인 정부는 주로 남북관계 개선에 치중해 남북연락사무소 개소와 개성공단 재개, 그리고 남북철도연결 문제에 열을 올리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북측은 지금까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지극 정성으로 호의를 베푼 사실도 잊은 듯 문 대통령 개인에게 퍼부은 욕설은 거의 배은망덕의 수준이라고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느끼고 있다.  
 
종전선언에 냉담한 트럼프 행정부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선언에 냉담한 이유는 북 측 비핵화조치의 지지부진한 진전 속도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의 반대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지난 8월 2일, 주한대사로 부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진 해리 해리스 대사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종전선언은 한번 선언하면 (새로)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속내를 털어놓은 다음 “종전선언을 하려면 비핵화를 위한 (북측의) 상당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에 의하면 북한이 핵시설 리스트를 제출하는 성의를 보이면 종전선언 문제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조치를 취하는 데는 미국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현재로서는 북한이 응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미국 측이 종전선언에 대해 미온적으로 나오고 있는 데는 자국 여론의 악화도 큰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북한산 석탄이 비밀리에 한국으로 유입된 사실이 탄로 나고 한국정부가 개성공단 재개 등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유화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불만과 불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예가 미국 하원의 핵무기비확산 무역소위원회의 움직임이다. 이 소위원회의 테드 포(공화당) 위원장은 최근 대북추가제재법안을 하원에서 준비 중이라면서 북한산 석탄 밀반입사건에 연루된 한국 기업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북한의 비핵화 추진태도와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국무부 대변인실 담당자도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북한정권을 계속 지원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일방적 조치를 취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무성의한 비핵화 추진속도에 대해 미국의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대사는 “북한은 국제사회가 여전히 비핵화를 기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그들이 기다리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기다리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래저래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양 측으로부터,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중국으로부터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압력에 점점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끝>


(2018년 8월 10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