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남시욱] 어느 새 위상 뒤바뀐 남북한(1)

문재인정부의 북핵외교 어디로 가는가


                                 남시욱(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한국을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북한 정부 


  문재인·김정은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4월 27일)과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6월 12일) 성사로 곧 서광이 비칠 것 같았던 북핵문제가 두 달째 표류하고 있다. 
 

 불길한 조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7월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무장관의 3차 북한방문 때였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합의한 한반도비핵화 원칙의 실천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그는 북한 측에 비핵화시간표의 제시를 요구했다가 협의다운 협의도 제대로 해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김정은은 그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북한정부는 거기다가 폼페이오를 떠나보내면서 외무성 담화 형식으로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불과 20여일 만에 안면을 싹 바꾼 것이다.


  북한 측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욕설을 퍼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지난 7월 20일 장문의 평론기사를 통해 문재인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비판하면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갑자기 재판관이나 된 듯이 북미 공동성명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누구가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감히 입을 놀려댄 것"이라면서 그의 말을 '쓸데없는 훈시질'이라고 비난했다. 이것은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7월13일 행한 ‘싱가포르 렉처’(강연)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북측이 노골적으로 남측을 모욕한 최근의 예는 8월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외교장관환영만찬회장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이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에게 다가가 남북외상회담을 제안했다가 그로부터 "응할 입장이 아니다"고 거절당한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상당히 장기간 치밀하게 준비한 남북외상회담은 이렇게 간단하게 무산된 것이다. 강 장관 자신은 비록 정식 회담은 못 가졌지만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으나 국민들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태풍의 눈이 된 종전선언 문제


2018년 8월 3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외교장관환영 만찬장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강경화 외교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그러나 별도회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진 외교부.



  당초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북핵문제가 이렇게 빨리 꼬인 것은 바로 종전선언문제 때문이다. 지난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발표된 판문점선언 제3조 3항은 남과 북이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3개월여가 지난 8월 6일 현재, 남북의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제1보로 합의했던 종전선언 문제가 한 발작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이 비핵화 진전 없이는 종전선언이 불가하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을 출발점으로 해서 북의 안전보장에 나서지 않는 한 본격적인 비핵화조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난처해 진 것은 문재인 정부다. 트럼프의 반대로 종전선언 실현이 늦어지자 북측은 난데없이 문재인 정부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오는 바람에 그의 ‘한반도운전석’론이 완전히 무색해졌다. 북한정권은 지난 7월 23일에도 대외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종전선언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중요한 합의사항 가운데 하나"라면서 남측 정부가 판문점선언을 이행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윽박질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당시 물에 빠지다 시피 한 김정은을 건져냈음에도 이제는 북측이 오히려 내 보따리를 내 놓으라는 형국이 되었다. 여기다가 중국 역시 북한을 거들고 나서면서 자국도 종전선언에 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불과 6개월 만에 남북의 위상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북핵문제는 또 다시 장기화의 수렁에 빠지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가 사실상 기정사실화할 우려가 있다. 중국 측이 벌써부터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완화를 거론하고 나선 것도 심상치 않다. 여기다가 북한산 석탄을 실은 제3국의 화물선이 한국을 여러 차례 들락거리면서 석탄을 한국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문재인정부는 미국의 불신을 사고 있는 판이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판문점선언은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히 당사자가 될 미국 측과 사전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 미국 측이 사전합의를 해 놓고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꾸었다면 그런대로 문제가 있지만 이번에 미국의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밝힌 바에 의하면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게 1년 이내에 비핵화를 완료할 것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그처럼 들뜬 이유도 이제야 짐작이 간다. 그래 놓고 북측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난 7월 초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요 국무장관이 비핵화 일정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한데 대해 욕설로써 대한 것은 말이 안되는 행동이다.  


  여하간 문재인정부는 종전선언문제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미북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재의 방향은 북한 측이 비핵화조치에 성의를 보여 비핵화일정 제시, 핵시설신고, 검증수용 의사를 표명하고, 이에 대해 미국 측은 북한에 대한 단계별 보상방안 및 체제보장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 이를 서로 맞바꾸는 대등한 패키지 교환방식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위해 8월 중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가능하면 9월 유엔정기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채택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는 현단계로서는 북미 간의 이견이 타협 가능한 수준이라고 보고 '종전선언'이라는 명칭에 경계심을 가진 미국의 여론주도층을 고려해 종전선언에 ‘비핵화’를 병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역시 북한이 진짜로 핵을 포기할 의사가 확고한가, 다시 말하면 김정은의 진정성 여부가 관건이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매체에 고정칼럼을 쓰기 시작한 태영호 전 북한 주영대사관 공사는 김정은이 판문점선언에 서명하기 1주일 전인 4월 20일 당중앙 전원회의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평화수호의 보검, 후손들도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근본담보’라고 강조했다고 그의 칼럼에서 전했다. 또한 7월 초에는 북한 당국이 당 핵심 간부들을 모아놓고 “핵무기는 선대 수령들이 남겨준 고귀한 유산이며, 우리에게 핵이 없으면 죽음”이라고 강조하는 내부강연을 진행했다고 한다. 태 공사는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의 7월 초순 3차 방북 때 트럼프와 김정은이 합의한 비핵화 실무그룹 구성을 거부하고 종전선언 선전전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즉, 북한정권은 그들이 개발한 핵무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에서 주한미군 철수의 선행 조치인 주한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올해 안에 달성하려는데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2017년 연말의 긴박한 한반도 상황


  2017년 연말은 한반도에 결정적인 시기였다. 지내 놓고 보니 김정은에게는 운명적인 시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해 11월 29일은 북핵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날이다. 김정은은 이날 새벽 평안남도 평성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화성-15형은 사거리가 1만3천km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와 뉴욕을 포함하는 미국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그 때가지 북한이 개발한 미사일 가운데 최장거리의 미사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화성-15형 ICBM의 발사성공은 당시 까지 유엔 안보리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벌이고 있던 모든 핵개발저지를 위한 예방외교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안보리와 서방국가들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실력 행사 뿐이다. 


  화가 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처리는 자기가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엔 안보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 통화로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은 일단 선제타격만 빼고 군사-원유-금융의 ‘3중 봉쇄’작전을 쓰기로 방향을 정했다. 틸러슨 미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한 해상 봉쇄를 위해 유엔 참전 16개국 회의를 소집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 러시아가 포함되어있는 안보리 대신 참전 16개국 회의를 소집한 것은 해상봉쇄작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긴급 소집된 유엔 안보리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모든 유엔 회원국은 북한과의 외교 및 교역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투표권 등을 제한하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독재자가 우리를 전쟁으로 더 가깝게 이끌었다. 전쟁이 난다면 북한 정권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보리 제재 강화로 북한 공황상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은 2017년 연말까지 계속되었다. 중국으로서도 더 이상 개별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되어 원유공급의 부분적 중단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12월 4∼8일 실시된 한미 연합 공군훈련은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3종과 B-1B 전략폭격기 등 총 260여 대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김정은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가로 인정하면 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공표했지만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이를 묵살하고 전투태세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언제 군사행동에 나설지 일촉즉발상태가 지속되었다. 이달 중순이 되자 중국군 난징(南京)군구 부사령원 출신 왕훙광(王洪光) 예비역 중장은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전쟁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긴장은 그 만큼 고조된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12월 29일, 김정은이 참수작전이 두려워 미군의 정찰위성에 포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로 새벽에 외부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벤츠 600을 타지 않고 간부들에게 선물한 일본제 렉서스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무역도 중국이 본격적으로 경제제재에 동참한 탓으로 급감했다. 중국은 11월 북한산 철광석, 석탄, 납 등의 수입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북한의 대중 수출액은 전년도의 같은 기간보다 61.8% 급감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원유는 공급했지만 안보리의 규제범위 보다 더 강한 독자제재에 나서 휘발유 등 석유제품 수출을 중단했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10월과 11월의 휘발유 가솔린 디젤유 항공유(제트유) 연료유 등 공식수출액은 0이었다. ‘화성-15형’ 발사를 계기로 12월 22일 채택된 새 안보리 결의 2397호가 새해부터 집행될 경우에는 북한의 대중국 수출액은 10분의 1로 급감할 것이 예상되었다.  <끝>


(2018년 8월 5일 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