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김병연] 김정은은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이 앞으로 어떤 경제개발 모델을 따를지 추측이 분분하다. 중국, 베트남, 박정희 모델에다 싱가포르 방식까지 언급됐다. 북한이 핵개발까지 포기하겠다는 마당에 경제개혁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낙관론도 팽배하다. 반면에 북한 체제의 경직성 때문에 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김정은은 과연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까.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김정은 스스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사회주의 국가가 경제개혁을 시도한 경우는 모두 일곱 건이다. 이 중 성공한 경우는 중국과 베트남 둘뿐이고 소련, 헝가리, 구(舊)유고슬라비아에서의 다섯 개혁은 실패했다. 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 짓는 핵심 요인은 독재 권력의 유연성이었다.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을 택할 수 있었던 것도 마오쩌둥의 강성 권력이 덩샤오핑이라는 유연한 권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1980년대 도이머이(쇄신)도 공산당 총비서가 개혁적인 인물로 교체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베트남의 집단지도체제에선 개인 권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적어 경제 발전 요구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만약 마오쩌둥의 통치가 계속됐다면, 베트남이 집단지도체제가 아니었다면 개혁·개방이 가능했을까.
 
경제 발전 의지가 반드시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의 정책이 김정일에 비해 진일보한 면은 있다. 시장 거래를 단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협동농장을 소수의 가구가 공동 경작하는 것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하진 않는다. 중국과 베트남 사례처럼 사(私)기업 혹은 비국유기업을 허용하고 시장을 합법화하며 협동농장을 완전한 가족농으로 전환해야 시장경제로 가는 것이다. 그래야 북한은 체제 이행의 루비콘강을 건너 경제를 연 4%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다. 

북한은 사회주의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강성 개인독재 체제다. 더욱이 시장경제로의 개혁은 절대권력의 절대적 축소를 의미한다. 시장은 주체사상형 인간을 독립적 개인으로 바꾸고, 사기업과 가족농은 자본가와 부농(富農)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돈을 모은 자들은 권력의 자의적인 횡포로부터 자신과 재물을 보호하려 한다. 이는 독재권력과 결국에는 부딪치게 돼 있다. 덩샤오핑과 베트남 집단지도체제는 경제 활동을 보호하고 자본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즉 정치 제일주의에서 경제 제일주의로의 대전환이 나라를 살렸다. 과연 김정은이 이런 결단을 자발적으로 내릴 수 있을까.
 
김정은이 중국, 베트남 모델을 택한다면 이는 무역과 시장에 의해 강제로 떠밀렸을 경우일 것이다. 제재 이전 북한의 무역의존도는 세계 평균에 근접했으며, 시장의존도는 사회주의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만약 북한이 무역을 통해 세계 경제에 더 깊숙이 편입되고 시장화가 일층 진전된다면 김정은은 안팎으로 체제이행 압력을 더욱 강하게 받을 것이다. 시장 활동과 관료 부패가 결합함으로써 김정은의 통제력이 현저히 약화될 때 그는 하는 수 없이 시장과 타협하려 할 것이다.  
     
김정은은 이런 압력을 공포정치를 통해 제어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성과 잔인성에 기초한 공포정치는 경제 발전에 독(毒)이다. 돈이 있는 자도 자본가로 몰릴 것을 우려해 제조업에는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곳에서는 현금장사를 하는 유통업이 최고다. 그러나 수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업으로 돈이 가지 않고서는 경제가 발전하기 어렵다. 그가 공포정치를 포기하고 경제 제일주의로 옮아가려 할 시점은 무역과 시장으로 돈을 번 자들의 세력이 워낙 커졌을 때다. 이들과 싸우다간 자신의 권력 모두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할 때라야 권력의 절반을 내놓고 유연한 독재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책의 방향도 분명해져야 한다. 김정은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경제체제 유지의 기로에 서 있다. 경제 발전에 대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로서 그의 본능은 후자로 향할 것이다. 만약 우리 경협마저 북한 사회주의 경제를 공고히 하는 데 이용된다면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김정은의 강성 독재를 유지시켜 줄 가능성이 있는 경협은 재설계하거나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경협 구상을 북한의 대외 개방과 시장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의도와는 달리 김정은을 덩샤오핑이 아니라 리틀 스탈린으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 지원과 경협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 주민이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김정은은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까 (2018년 6월 20일  A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