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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서양 동맹 균열… 한-유럽 안보 파트너 가능” [화정 인사이트 ⑧]
화정평화재단은 4월 17일 동아닷컴 대회의실에서 ‘대서양 동맹의 균열과 유럽의 지정학적 변환’을 주제로 연구위원 간담회를 가졌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 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왼쪽부터)가 토론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을 넘긴 가운데 러시아는 수미(Sumy) 및 하르키우(Khakiv) 지역에서 다시 공세를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완강히 방어하며 치열한 전쟁이 전개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의 지원 없이 자체 군사력만으로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러-우 전쟁 종식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이해 당사자들의 물밑 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자체적인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한 방위산업 투자 확대와 더불어 다층적 지정학 전환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러-우전쟁 중재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서구 정체성과 규범을 빠르게 해체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전략적 연대와 긴장 사이를 오가는 복잡한 구조로 재편되는 중이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는 20일 동아닷컴 대회의실에서 ‘대서양 동맹의 균열과 유럽의 지정학적 변환’을 주제로 사내외 연구위원 초청 간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대서양 동맹 균열 속에서 한국과 EU가 전략적 협력분야가 많다”며 “한국도 새로운 동맹관계 설정으로 미래 생존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 발제와 사회는 이재승 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가 맡았다.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 이세형 동아일보 국제부장이 토론에 나섰다.


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이재승=지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핵심은 쿠르스크 지역이다. 우크라이나는 동-남부 지역 영토의 상당부분을 상실했지만 러시아 영토인 이곳을 점령하고 있다. 북한군이 들어간 곳도 바로 이곳이다.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거의 유일한 카드가 될 수 있지만, 러시아 역시 이 지역을 반드시 탈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푸틴은 영토를 실제로 확장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이름이 남을 ‘대제’를 꿈꾸고 있다. 쿠르스크 지역을 러시아가 탈환할 것인가가 전쟁의 큰 관전 포인트다. 트럼프 2기 집권 후 그동안 고착화 되었던 우크라이나의 전선이 몇 달 사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와 젤렌스키 사이에 개인적인 감정도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이 다시 무기 지원을 재개 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완전한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로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김인한=왜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 편에 서서 행동하고 있을까. 올해 2월 유엔에서 러시아 침략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철수를 주장한 우크라이나 결의안에 미국이 반대표를 던졌다. 정말 쇼킹했다. 이제 국제정치에서 센 나라들 미·중·러 이 나라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조정되고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국제질서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전에 미국은 중국을 이용해서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했다면 트럼프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 견제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재승=2월 28일 트럼프와 젤렌스키 정상회담은 대 참사로 끝났다. 젤렌스키가 미국의 안보 보장을 요청했지만 트럼프는 경제적 이익과 연결된 지원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회담 결렬 후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항변하자 트럼프는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했다. 회담 직후 영국에서 개최된 유럽 정상들의 긴급회의에서는 50억 달러 지원과 무기 생산 확대 추진 등 우크라이나 지원의 지속과 더불어 유럽 방위연합 창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에서 고초룰 겪은 젤렌스키는 런던에서 유럽국가 들로부터는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유럽 내 프랑스와 독일을 위시한 서유럽과 폴란드 및 발트 3국과 같은 전선국가 사이의 안보적 이견은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동맹의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을 믿고 전쟁을 했지만 한 순간 등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젤렌스키는 동맹이 없는 약소국의 서러움을 받고 있다.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과연 한국에게는 진정한 우방이 있을까? 우리는 미국을 포함해 우방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필요할 때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가 과연 어느 나라일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한다. 우방을 찾는 노력과 함께 우방을 정교하게 만들어 나가는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


장원준=이렇게 유럽의 안보 상황이 불안한 가운데 K-방산 수출이 잘 되고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와 독일이 강력한 경쟁자다. 한국은 EU의 진정한 안보 파트너이자 지원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유럽 재무장 2030계획에 따라 방위비 예산을 대폭 늘리고 있다. 투 트랙 접근이 필요하다. 현지 생산과 지원을 통해 교두보 확보를 하면서 실질적으론 프랑스 영국 독일과 공동 개발 파트너십 구축을 강화해야 한다. 올해 6월 NATO 정상회의 또는 G7 회의 등에 적극 참여해 방산 협력을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 또한 새 파트너 적극 발굴도 필요하다. 방위비를 대폭 늘린 일본을 비롯해 호주와 필리핀 등 아시아 태평양에서 미국만이 아닌 다층적인 협력 강화를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재승=NATO는 지금 상당한 위기 상황이다. 미국은 이제까지 나토 사령관을 파견했는데 안 보내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유럽이 아무리 국방비 지출을 늘린다고 해도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 정보와 능력의 갭을 당장 메꾸기 어렵다. 트럼프는 유럽을 배제하는 외교 전략을 쓰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결과 중심의 접근으로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 싸우지 않고 강제로 그냥 봉합시켜 놓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하려는 것이다. 강대국 중심의 외교가 그 핵심이다.

이세형=유럽은 복지 예산 때문에 방위비 증액이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다. NATO가 없으면 유럽은 굉장히 힘든 상황일 텐데 안보에 대한 노력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유럽이 과연 어떤 카드로 NATO 개혁과 개편을 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미국과 우크라이나 광물협정이 체결되면 과연 종전으로 이어질까.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푸틴은 트럼프나 미국이 지쳐서 손을 떼면 더 많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이세형 동아일보 국제부장


이재승=쿠르스크를 러시아가 탈환하면 푸틴은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종전으로 갈 가능성이 있고, 반면 쿠르스크 전선이 유지되는 한 종전은 안 할 것이다. 유럽에서 선전하고 있는 K-방산도 이제까지의 접근법과는 다른 제 2라운드를 준비해야 한다. EU가 방위 조달의 65%를 내부 조달로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나머지 35% 안에서 미국과 영국 등 주요 방위산업 수출국과 경쟁해야 하고, 동시에 유럽 내 내부생산을 통해서 시장에 진입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외교와 안보가 발을 맞춰야 한다. 기술력에 더불어 유럽과의 안보파트너를 형성한다는 전략으로 유럽 방위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또한 이번 러우 전쟁을 보면서 우리도 특히 전쟁 초반 버틸 수 있는 초기 대응력을 점검해야 한다. 자강(自强)은 독자 무기 체계 뿐만 아니라 한국이 동원 가능한 방어 체제, 즉 미국을 포함해서 최대한의 지원 가능한 범위를 어디까지 상정해 놓을지에 대한 논의까지 완성되어야 성립된다. 능동적으로 우리의 안보의 자강 역량을 확대시키기 위해 무기 뿐 만 아니라 여론과 인지전, 안보 파트너십 역량도 배양해야 한다.

장원준=방산에서 2라운드 준비가 중요하다. 기존의 가성비 좋은 무기체계와 함께 구매국이 요구하는 첨단 기술과 AI 등을 접목해 지속적으로 무기 성능 개량을 해 나가야 한다. 또한 완제품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구입하면 20~30년 쓸 수 있는 패키지와 이를 전략적 외교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자주 국방을 시작한지 50년이 지났다. 새 방법론을 고민해 봐야 할 시기다. 우선 핵 추진 잠수함과 한국형 전영역 실시간 지휘통제시스템(KJDC2),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아이언돔), 첨단항공엔진 등을 통해 부족한 영역에서 실질적 자강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인한=미국은 더 이상 넉넉한 인심의 큰 형님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방위비 부담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방위비 분담과 방위비 지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트럼프가 최근 벌이고 있는 관세 폭탄도 결국 다른 나라가 그동안 차지했던 경제적 이익을 자기들이 차지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외교에서는 민주주의, 자유, 인권, 피해자라는 이데올로기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종언 아니면 적어도 사망선고가 내려진 상황이다. 트럼프의 발언에서 민주주의 이야기가 자취를 감췄다. 다자주의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일궈왔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큰 위기 상황을 맞았다. 냉정한 국제 정치의 본질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힘없는 나라는 결국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된다는 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재승=트럼프 외교는 대국주의와 우월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에 법치와 원칙의 주변화 현상이 발생한다. 결과 중심의 접근으로 미국의 외교는 기존의 판을 완전히 흔들어 놓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전략적 균열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북아에서 전략적 변화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편 트럼프가 주목하는 조선 부분에서 한국을 대체할 나라가 많지 않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지속적으로 전략적 자산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군함 제작 및 보수 등에서 한국이 미국이 필요한 기술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면 상당히 유용한 카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여러 국가 안보 규정들을 한국에 유리하게 풀어내는 협상도 필요하다. 특히 한-미-일 조선 및 방위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동북아 안보 면에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기자 yun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