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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낀 국가’의 숙명과 처세의 교훈 일깨운 우크라이나 전쟁 1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지정학적 단층지대에 위치한 중소 국가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그래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일깨우는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한반도에 강한 시사점을 준다. 미국의 한 전략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2의 6·25 전쟁’이라고 했다.


한러대화(KRD·조정위원장 이규형 전 주러대사)는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타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관계’를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배경과 원인, 전쟁의 성격을 분석하고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집중 분석했다.


● ‘여타 국가들’과의 다층적 외교로 활로 찾아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센터에서 8일 열린 한러대화 세미나 종합토론 섹션에서 전문가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상두 연세대 교수, 박종호 KRBC 대표, 고재남 우라시아정책연구원 원장(사회자),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3중 전쟁’의 성격이 있다고 진단했다. 첫째는 러시아와 서방, 특히 러시아 대 미국 간 전쟁이다. 탈냉전 이후 유럽 안보질서 개편 과정에서 러시아 안보에 대한 고려가 배재돼 불만을 가지게 된 것이 원인(遠因)으로 지목됐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바탕에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게는 나토의 동진은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흔들 수 있는 위협으로 인식됐다. 2003년 이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키르키스스탄에서 나타난 각종 색깔의 민주화 혁명이 러시아의 체제 변화 요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러한 도전에 러시아가 공세적 방어로 전환해 나타난 것이 2008년 조지아 남오세티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과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이었다.


둘째는 나토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와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 간 전쟁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만이 안보를 보장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9년 2월 포로센코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통해 나입 가입을 천명했다. 그런데 이런 나토 가입 가속화는 오히려 올해 2월 러시아 침공의 근인(近因)이 됐다고 신 교수는 분석했다.


세 번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강화된 민족주의의 충돌이라는 측면이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민족주의에 근거한 배타적 정책이 가시화하면서 동부 돈바스 지역 등에서 러시아어 사용 주민에 대한 압박정책을 강화한 것을 신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촉발적 요인으로 보았다. 러시아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준비없이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나치화 움직임을 전쟁 명분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신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타난 서방과 중-러 진영간의 대립 구도를 ‘신냉전’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과거 냉전과는 성격이 다른 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념에 따라 두 개의 진영으로 확연히 갈라졌던 냉전 시대와 달리 이번에는 적지 않은 ‘여타 국가들(the Rest)’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한 명백한 침범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나토 회원국 터키, 인도 태평양에서 대중 견제전선의 핵심 국가인 인도, 중동에서는 미국의 군사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포함됐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국가 일부와 유럽에서는 세르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이 있다. 자국 이익에 따라 진영화해 G20 국가 중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가 절반인 10개국이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은 ‘지정학적 활성 단층대’에 있는 ‘중간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강대국 논리에 따라 얄타회담에서 한반도가 분단되었듯 우크라이나도 자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래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신 교수는 “지질 구조상의 단층대가 활성화하면 지진이 발생해 많을 피해를 줄 수 있듯이 지정학적 단층대가 활성화되는 상황에 처한 중간국의 갑작스러운 외교 안보 노선의 변경은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중간국은 외교적 자율성 확보가 외교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에 강대국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국 연대나 소다자 협력같은 다층적 국제정치 구도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타 국가들’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이들 국가와의 연대를 통해 미국 유럽 대 중국 러시아의 대립 구도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모색하고 외교의 자율성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외교 전략이나 노선을 정하는데 있어 국내 정치적인 합의 기반을 마련해 국내적 분열의 요소를 억제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