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박철희] “지소미아 종료는 위험한 도박… 일단 연장 후 정보교환 안 할 수도”

《23일 0시 자동종료를 앞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시한이 임박해오면서 가장 절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미국 정부다. 군 수뇌부가 연달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협정을 살려내려 압박을 가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소미아에 대해서는 전문가 그룹의 의견도 엇갈린다. 한미일 3각 공조를 중시하는 전문가들 대부분은 지소미아 종료가 한반도에 가져올 후폭풍을 크게 우려한다. 반면 여권에서는 지소미아의 효용이 크지 않다며 별문제 없다는 주장도 들린다. 이대로 지소미아 종료는 기정사실이 돼 가는 걸까. 한미일 관계 전문가인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에게서 지소미아와 한미동맹, 한일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 일본에 내민 지소미아 종료 카드, 전략적 실책


―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임박했다.
 
“애초에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실책이었다. 정부는 지금도 일본이 먼저 수출규제 철회 조치를 하면 지소미아 연장 선언을 하겠다고 한다. 반면 일본은 수출규제와 지소미아는 등가 교환할 대상이 아니라며 꿈쩍도 않는다. 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제 와서 돌아가고 싶어도 명분이 마땅치 않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연장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크다.”

 

―미국의 반발이 지나치다는 느낌은 없나.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일 간 경제 문제인 반면 지소미아 종료는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직접적인 균열을 가져오는 문제다. 인도·태평양 전략하에 미국은 동맹 및 우방과 힘을 합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공동대처하려 하는데 한국은 정보 공유마저 거부하는 양상이다.”


―지소미아와 관련해 정부 여권에서는 다른 주장들이 나온다. 2016년 시행 이래 효용이 크지 않았다거나 한미일 정보공유협정(TISA)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주장이 그런 것들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지소미아와 한미동맹은 별개”라고 공언했다.

 
“지소미아는 그 효용성보다는 정치적 상징성이 더 강하다. 지소미아 파기는 한국이 한일 협력, 한미일 안보협력을 거부한다는 제스처로 보일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 나아가 미국 본토를 함께 사수할 의지가 없다는 뜻이 되니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행위로도 받아들여질 것이다. ‘한국은 북한 편을 들더니 우리와 북한에 대한 정보교환을 할 의사가 없구나.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을 적극 보호하겠다는 의사도 없구나. 혹 한미동맹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인가….’ 한반도 중심주의에 빠져 북한엔 구애를 계속하면서, 미국과 일본에는 등을 돌리는 양상이다. 마치 한국이 나서서 신애치슨라인을 그으려고 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 이후를 전망해 본다면….


“미국은 수출규제를 한 일본에도, 지소미아를 거부하는 한국에도 불만을 표했지만 종료 이후로는 한국을 외통수 고집불통이라고 여길 것이다. 결국 한미일 협력 거부의 책임을 한국이 모두 끌어안게 되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방위비 분담 문제에서도, 주한미군 및 동맹 조정 문제에서도 한국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돈은 더 내고, 신뢰는 잃고, 미래는 불안한 상태를 자초하게 된다.”


○ 지소미아 파기, 한일·한미일 안보협력 거부로 비쳐


―마침 지난해의 5배나 되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와 겹치면서 미국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


“5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식 협상술이다. 한국의 부담이 더 늘겠지만 5배까지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년 전 협상에 아쉬움이 있다. 한미는 그간 5년마다 맺던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지난해 1년으로 끊어 맺었는데, 당시 분담금을 조금 더 올려주더라도 3년 정도 기한을 잡는 게 현명했다는 생각이다. 내년에는 미 대선이 있고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순으로 분담금 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첫 협상국인 한국에서 성과를 얻고 싶을 것이다. 5년을 절반 잘라 2년 혹은 3년 기한으로 했다면 우리가 시험대에 오르는 상황은 아니었을 수 있는데….”


―주한미군 감축을 우려할 상황인가.


“지소미아가 종료되고 방위비 분담금 협상마저 실패라 여겨진다면 일부 감축도 가능하지 않을까. 현재 주한미군이 2만8500여 명인데, 지난해 미 의회에서 통과된 국방수권법 수정안에 ‘주한미군은 2만2000명 이하로는 줄이지 않는다’고 돼 있다. 결국 6500여 명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차제에 우리도 핵무장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주한미군이 감축되는 사태가 온다면 플랜B로서 핵무장을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도 북한처럼 해나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경제제재, 외교 고립, 국제사회에서의 평판 저하 등을 감수해야 한다. 그보다는 동맹을 잘 관리하고 한반도 안보와 평화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길 아닌가. 흔히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란 말을 많이 듣는데 그 성장을 뒷받침한 힘이 뭐였나. 한미동맹이 초석이 됐다.”


―당초부터 지소미아를 깨고 싶어 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일본 중심의 안보질서 밑에 들어가기 싫고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현 정권이 원하건 아니건 간에 한국은 한미일 3각 공조보다는 북한과 중국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인상을 최종적으로 주게 됐다. 현 정권의 외교안보 노선은 북한과의 평화체제 구축에만 올인한다는 점에서 ‘단선적’이고, 위협에 대한 현실적 대처를 게을리한다는 점에서 ‘이상론적’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평화협력과 동시에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공고해야 한다. 현 정부는 전자만 우선시하고 후자는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국민의 안보 불안이 가중되는 이유다.”


○ 북한과의 평화 구축에 실패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건가.


“북한에 속을 수도 배신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북한과의 평화 구축에 실패할 경우 우리는 반전 평화도 비핵 평화도 실패한 외톨이로 남을 수 있다. 미국 및 일본과의 안보협력의 끈을 이완시키는 것은 결국 북한에는 이롭지만 한국에는 위험한 도박이다. 북한에 배신당하고 미일에 버림받으면 한국은 고립무원의 상태가 될 것이다. ‘설마’ 하는 일이 벌어졌을 땐 이미 늦은 것이다.”


―지소미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소미아를 일단 연장하되 실질적인 정보교환은 유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소미아를 시한부로 연장하면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는 순간 자동 회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빅딜’을 통해 지소미아를 조건부 연장하면서 수출규제의 조기 철회 약속을 받아내고 그사이에 징용 판결에 대한 공동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지막 선택지는 이미 실기한 듯하다. 두 번째는 마지막 담판이 가능하지만 일본이 동의해야 한다. 가장 쉬운 것은 첫 번째 선택이다.” 


―한일 간 극적인 타협이 가능할까. 


“양국 정권이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나. 다만 이런 일은 비공개 채널로 해야 한다. 일본 측은 아베 신조 총리, 한국 측은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외교안보 라인의 최측근이 나서면 가능하다.”


―정부 사이드에서 국민 여론도 그렇고 일단 지소미아는 종료하되, 필요하면 다시 협정을 맺으면 된다고도 한다.


“글쎄. 있는 것도 이렇게 난리를 치며 종료를 하는데 무슨 과정을 거쳐 복원을 할까. 안보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지 국민 여론에 흔들리면 곤란하다.


그는 그간 지켜봐온 문재인 정권의 특징을 △희망적 사고 △남 탓 △‘우리가 남이가’의 세 가지로 요약했다. 플랜B가 없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자 감상적 민족주의가 강하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토론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 임기 반환점을 지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혼자 생각에 빠질 게 아니라 모든 해법을 끄집어내놓고 토론하고 결단해야 한다.”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국가 간에 군사 기밀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맺는 협정. 정보 제공 방법, 정보의 보호와 이용 방법, 보호의무와 파기 등의 내용을 규정한다. 협정을 체결해도 모든 정보가 상대국에 무제한 제공되는 것은 아니며, 상호주의에 따라 사안별로 선별적인 정보 교환이 이뤄진다. 한국은 34개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지소미아를 맺은 상태다. 협정을 맺은 나라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세계뿐 아니라 러시아와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등 옛 공산권 국가도 포함돼 있다.


서영아 동아일보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