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윤상호의 밀리터리 포스] ‘압력’ 물리치고, ‘야망’ 잠재워라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정경두 합참의장(오른쪽) 등 참석 지휘관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모셰 다얀(1915∼1981)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추앙받는 국방장관이다. 38세 때 역대 최연소 참모총장에 오른 그는 1차 중동전쟁(1948년) 승리 이후 정체된 군에 대대적인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젊고 패기 넘치는 장교들을 고급 지휘관에 파격 발탁하고, 기갑·공수부대 등 공세 전력을 크게 강화했다. 또 행정부대 등 비전투 병력은 확 줄이고, 군 내 관료적 문화를 깨뜨려 이스라엘군을 실전에 최적화된 군으로 변모시켰다.


그 효과는 ‘연전연승(連戰連勝)’으로 입증됐다. 이스라엘군은 2차 중동전쟁(1956년) 개시 8일 만에 이집트군을 굴복시켰다. 다얀 장관이 진두지휘한 3차 중동전쟁(1967년)도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압승으로 결판을 내 ‘6일 전쟁’의 신화를 썼다. 공군과 기갑전력으로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의 허를 찌르는 과감하고 치밀한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 주효했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기도 했다. 그의 딸은 3차 중동전쟁에 일선 부대 병사로 참전했다 전사했고, 그 자신도 지휘관 시절 적의 총탄에 왼쪽 눈을 실명했다. 후방에 편히 앉아 부하들만 전장에 보내려는 지휘관을 적보다 경멸하고 엄히 다스린 그를 군과 국민은 신뢰하고 존경했다.


국방장관은 군 통수권자의 위임을 받아 군과 안보를 책임지는 자리다. 중대한 안보 위기 때에는 그의 판단과 후속 조치가 전쟁의 승패는 물론이고 국가 존립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주변 4강에 둘러싸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씨름하는 대한민국의 국방수장의 책임과 역할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른 어떤 자리보다 높은 수준의 자질과 역량, 도덕성이 요구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1927∼2008)는 첫 저서 ‘군인과 국가’에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고 여론의 지지와 존경을 받으며 외부 압력과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정치적 야망이 없는 전략가’를 국방수장의 조건으로 꼽았다. ‘우리는 이런 국방수장이 있었던가’ 하고 자문해 보면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국방·안보 정책을 역주행시킨 경우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물며 국가 위기에 도주하거나 방산비리나 추문에 연루돼 불명예스럽게 중도 하차한 장관도 있었으니….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 유화 무드가 지속되면서 정부는 안보 문제에 한시름을 놓는 모양새다. 연말 발간될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이 적’이라는 문구 삭제를 검토하고, 최전방 감시초소(GP) 시범 철수와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에 속도를 내는 데서 그 기류가 뚜렷이 감지된다. 서둘러 종전선언을 하면 되돌릴 수 없는 평화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팽배한 것 같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와 기습 전력의 후방 배치 등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평화선언과 몇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북한의 실존적 위협이 가려질 순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 패권 대결과 역내 군비 경쟁의 가속화 등은 한반도 주변의 안보정세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4년 만에 공군 출신으로 차기 국방수장에 발탁된 정경두 장관 후보자(현 합참의장)에게 비상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정 후보자는 합참의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미 항모 강습단이 북방한계선(NLL) 인근 동해 최북단까지 올라가 대북 무력시위를 한 것도 그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북한의 대남 평화전술의 허와 실을 가려 빈틈없는 안보태세를 이끌 적임자라는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반면 그의 직무 수행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은 보다 전향적 화해 공세로 군사분계선(MDL) 인근 비행정찰금지구역 설정과 재래식 군축 등을 밀어붙일 것이다. 정부가 이를 덥석 물지 않고, 안보에 미칠 영향을 철두철미하게 따지도록 하는 것이 국방수장의 역할인데 대북 유화 기조가 심화될수록 그 역할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후보자 지명 뒤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40년 군 생활의 소임은 장관이 돼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군을 책임지고 군 통수권자를 보좌하는 차기 국방수장의 모습을 기대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