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전승절 참석 김정은의 숨은 뜻은?
■북한 이미지 정치 리포트 2025년 9월
● 천안문 망루에 선 북중러 3개국 수장이 보여주려 했던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행사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톈안먼 망루에 선 사진은 단순한 기록 사진을 넘어선다. 켜켜이 쌓인 3개국의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재 국제 정치의 긴장과 균열을 미묘하게 드러내는 ’정치의 얼굴‘이다. 연출된 무대라고 해서 모든 장면이 통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잘만 해석한다면 화면과 사진은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1959년 김일성·마오쩌둥·흐루쇼프 회동 이후 66년 만에 북·중·러 정상들이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선 장면은 ‘반(反)서방 연대’의 상징적 구도였다. 행사의 주인공인 시진핑은 중앙에서 주도적 위치를 지켰고, 푸틴은 시진핑과의 대화를 독점함으로써 여전한 국가 위상을 드러내려 했다. 김정은은 두 지도자와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섬으로써 국내외에 세상의 중심이라는 점을 드러낼 수 있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방중 소식을 6면 중 절반 이상 할애해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행사 다음날 1면, 2면, 3면을 기사를 최소화하고 사진 수십 장을 보여줌으로써 김정은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려고 했다. 중국 정부는 사전에 북한측 요구를 받아들여 북한 사진기자들이 행사장에서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도록 접근(access)권을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신기자들과 차별화되는 김정은 중심의 사진이 촬영되었다는 것은 북한 기자들의 현장 접근이 허용되었다는 의미이다. 노동신문은 북한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 이외에 신화통신의 사진도 출처 표기 없이 적극 게재했다.
압도적인 권력의 이미지는 김정은의 권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편 동시에 강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김정은은 강대국 두 정상과의 ‘투 샷’을 통해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례적으로 김정은과 푸틴이 함께 푸틴 전용 리무진 ‘아우루스’에 탑승한 장면을 공개했다. 보통 차량 내부는 보안상의 이유로 노출하지 않는데, 러시아와 북한이 이를 공개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사진은 “김정은이 세계 강대국 정상과 동등한 자리에 있다”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전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세밀히 보면, 사진의 구도는 차량 내부가 아닌 김정은의 존재를 강조한다. 푸틴이 주인인 공간에서조차 김정은이 중심으로 자리하는 장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카메라는 푸틴이 아닌 김정은쪽의 차량 천정 쪽에 설치된 액션 카메라로 추정된다. 2024년 푸틴이 방북했을 때 북한이 설치했던 액션 카메라와 같은 방식이다.
권력은 사진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때로는 통제를 벗어난 카메라 때문에 원하지 않는 해석에 직면할 수 있다. 시진핑과 푸틴이 ‘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영생할 수 있다’는 기대에 찬 대화를 한 점도 로이터 통신에 의해 외부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푸틴과 김정은의 회담을 앞두고 벌어진 장면도 주목받았다. 북한 수행원들이 에어컨 리모컨을 두고 러시아 측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회담 종료 후 김정은이 앉았던 의자를 닦고 물컵을 치우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는 권력의 과시와 함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불안의 표현이다. 사진으로 남은 수행원의 움직임은 권력자의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막후에서 벌어지는 수행원들의 노력을 드러낸다.

<사진 1>2025년 9월 4일자 북한 노동신문 1면. 뉴스1
● 김정은의 개인 SNS가 되어가는 노동신문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된 직후,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스타그램이 있었다. 북한 정부가 운영한다고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사진의 내용과 업로드 속도가 북한 공식 매체와 차이가 없었고 사진의 설명이 고급 영어로도 번역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계정에는 2022년 3월 25일 ‘화성 17호’ 발사 현장의 김정은 사진 10장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진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오늘날 정치인은 SNS를 통해 대중과 직접 연결된다.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한국 정치인의 페이스북 계정은 그 전형이다. 북한 역시 해외 유학 경험을 가진 젊은 지도자가 권력을 잡은 후 얼마간은 SNS을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치인과 대중을 연결하고 있다. 김정은이 트위터 또는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미 신문·방송·인트라넷(광명망)과 스마트폰이라는 폐쇄형 플랫폼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스마트폰 보유 비율도 상당히 높다는 게 정설이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인트라넷 구조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지도자의 뉴스와 사진을 강제로 포워딩 시키는 것은 쉽다는 것을 상상한다면 북한의 김정은은 강제 구독형 인스타그램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컨텐츠가 이미지다. 신문에는 1장의 사진을 쓸 수 있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많은 사진을 게재할 수 있다.
2025년 중국 전승절은 북한 노동신문 1면(8장),2면(24장),3면(14장) 등을 통해 46장의 사진으로 보도되었다. 비슷한 지면 크기의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1면 3장, 2면 3장, 3면 1장, 5면 3장)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의 사진으로 신문 지면이 도배되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지도자의 행보를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사진으로 보도하는 신문은 없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와 비교해도 김정은 시대 노동신문의 이미지 비율은 높다.

<사진 2>2025년 9월 4일자 북한 노동신문 2면. 뉴스1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과 행사 전반 모습을 기록한 사진으로 외교 무대를 보도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담론의 양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텍스트보다 이미지가 소통의 주 도구가 되는 인스타그램과 닮은 방식이다.
중단된 북한의 공식 인스타그램은 권력이 장악한 신문 지면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신문 지면이 인스타그램처럼 활용되는 ‘북한식 이미지정치’가 시도되는 것은 아닐지 지켜볼 일이다.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