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윤상호]군의 환골탈태를 위한 제언
“오늘날 전쟁에선 표적 제거 시간을 수분에서 수초 단위로 줄이지 않으면 (아군은) 죽은 목숨이다.” 2020년 당시 라이언 매카시 미국 육군 장관은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주최 화상대담에서 미군이 추진 중인 다영역작전(MDO)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작전적 변화가 미 금융 중심지인 월가의 거래 속도가 15년 사이 초 단위에서 1000분의 1초로 단축된 것과도 유사하다고 했다.

장병과 무기체계, 지휘·지원 요소 등 모든 전투 역량을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융합·결집해 최고 지휘관이 보다 신속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다영역작전의 요체라는 얘기였다. 그 일환으로 미군은 과학기술과 무기체계의 발전을 반영해 육해공에 국한됐던 전장 개념을 우주·사이버·전자기까지 확장하고, 각 군의 대응 영역도 확장하는 군사 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모든 전투 구성요소를 더 빠르고 촘촘하게 연결해 합동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다영역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합동성 강화는 그간 우리 군이 매진해온 국방개혁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군은 지난 수십년간 합동성 강화를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다. 북한 도발에 적시적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잠재적 적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군사력 건설이 핵심 목표로 제시됐다. 하지만 그 성과는 낙제점을 겨우 면할 정도에 그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단적인 사례가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에 대한 대응 부실이다. 군 안팎에선 합동작전의 실패이자 고질적 엇박자를 노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반도의 좁은 전구(戰區)에서 휴전선 가까이 기습전력을 대거 배치한 북한군을 상대하려면 작전 반응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휴전선에서 불과 40∼50km 떨어진 서울과 수도권을 적의 어떤 위협에서도 방어하는 것에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신속 정확한 상황 전파와 지휘보고, 판단 및 대응 결심 등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북한 무인기 침투 당시 군의 고속상황전파체계는 작동하지 않았고, 육군과 공군, 육군 상·하급 부대 간 상황 공유도 이뤄지지 않았다. 초를 다퉈야 할 무인기 침투 보고는 층층의 지휘보고 과정에서 수십 분씩 지체되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북한 무인기가 서울의 비행금지구역까지 유유히 내려온 뒤 북상할 때까지 군의 대응은 느리고 허술하기만 했다. 수천만 원짜리 무인기로 수백억 원대의 한국군 장비를 농락한 점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따지면 북한군의 완승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소형 무인기로 우리 군의 최전방 방공태세와 서울·수도권 방어체계를 염탐했을 가능성이 크다. 발사 후 수십초∼수분 내 서울을 때릴 수 있는 탄도미사일, 장사정포 공세 상황을 가정해 우리 군의 대응 태세를 떠보려는 목적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우리 군과 국방의 현주소를 냉철히 되짚어 봐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실제로 우리 군의 지휘·부대·전력 구조 등 전반적 국방체계가 6·25전쟁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덩치는 커졌지만, 체질은 거의 그대로라는 얘기다. 군이 운용하는 장비는 첨단·현대화되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주변국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군사전략과 능력, 작전계획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군사전략과 작전계획이 미흡하면 미래 군사력 건설도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군이 합동군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합동성 구현에 애를 먹는 상황도 이런 요인들이 누적되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자군 이기주의와 각 군의 인사권 고수 등 합참의 기능을 저해하는 구태와 제도적 한계도 합동성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지목된다. 합동성 강화를 위한 부대 개편과 무기체계 도입 등 군사력 건설 결정 과정에도 각 군의 나눠 먹기식 상황이 반복됐다. 어떤 분야는 중복되고, 어떤 분야는 부족한 채로 방치되면서 국방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것이 사실이다.

이달 초 열병식에서 고체엔진 추정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한 데 이어 화성-15형 ICBM 도발까지 감행한 북한은 핵 무력 고도화를 뒷배 삼아 더 대담하고 예측불허의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때보다 비상한 결전 의지와 대비 태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군은 타성과 관행을 털어내고 ‘싸워 이기는 군대’, ‘적이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군대’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길 바란다. 그것은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출처: 2023.02.21 동아일보 A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