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변영욱] 김정은 체제 15년, 이미지는 어떻게 변했나
■ 북한 이미지정치 리포트 / 2026년 10월
군사무기박물관과 불고기집 이미지의 공존
● 눈에 띄는 옷차림 전방에 나타난 김여정, 그리고 김정은 사망설
2026년 10월 셋째 주, 세계는 또 김정은 사망설에 휩쓸렸다. 10월 18일 무렵부터 해외 SNS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19일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쥔이 자신의 X에 김정은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으로 이송됐다가 숨졌다는 글을 올리면서 증폭됐다. 영국 대중지 더선이 이를 소개했고, 한국의 일부 언론은 희망 섞인 관측(wishful thinking)을 기사로 옮겼다.
북한은 사진으로 답했다. 20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전날 딸 주애, 부인 리설주와 함께 '전국피복·신발전시회-2026'을 둘러보는 사진을 실었다. 소문이 퍼지던 바로 그날의 공개 활동이었다. 21일에는 김여정이 리일환 당 비서, 박정천 국방성 고문 등과 함께 한국과의 접경 지역 요새화 공사 현장에 나타났다. 눈에 잘 띄는 색의 여성복 차림이었다. 김정은이 정말 유고 상태였다면 김여정이 평양을 비우고, 그것도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접경 군사지역에 나타날 리 없다. 23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사망설이 허위라고 보고했다.
해프닝에 마침표를 찍은 것도 이미지였다. 24일 북한 매체는 김정은이 22~23일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제3차 중대장대회를 주재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정은은 24일 지난 15일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중국 단둥을 당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중국 공식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영접을 받아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았고, 오후에는 단둥 자동차공장에서 버스 조립 현장을 둘러봤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단둥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고 서열 4위를 당일 치기로 만난 것도 이례적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건재함을 확실하게 보여주려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정은이 며칠 동안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내놓으면 어김없이 유고설이 창궐한다. 그만큼 북한의 정보가 차단돼 있고 고립돼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 북한을 해석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북한의 이미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최고지도자의 사진과 영상을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촬영해 배포한다. 시각 정치라고 할 수도 있고 이미지 정치라고 할 수도 있다. 북한 내부와 외부의 관객을 향한 이미지 정치를 잘 해독한다면 북한 정보의 빈틈을 조금 더 메울 수 있을 것이다.
● 김정일 사망 때부터 시작된 김정은의 이미지 정치
2011년 12월 19일 북한은 낮 12시 특별방송을 통해 12월 17일 8시 30분에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가던 열차 안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열흘간의 장례 절차가 진행되었고, 12월 28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현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영결식을 끝으로 김정일 시대는 끝났다. 세습 3대째인 김정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김정은 이미지 정치의 출발점을 김정일이 숨졌다는 그 열차의 이미지라고 본다. 의도적 설계였든 실제였든, 죽는 순간까지 인민을 위해 현장을 향하던 지도자라는 서사에서 김정은의 후계가 시작된다. 기차라는 이동의 이미지, 멈추지 않는 혁명의 이미지가 김정일의 마지막 장면에 부여됐다. 동시에 그것은 김정은으로의 계승을 정당화하는 장치였다. 멈추지 않는 기차처럼, 혁명도 계승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로 김정은이 카메라 앞에 선 지 약 15년이 흘렀다. 미국과 한국 등 전 세계 어떤 지도자와 비교해도 짧지 않은 시간이다. 게다가 북한은 러시아나 중국과 달리, 당 기관지를 통해 많은 양의 사진을 배포하고, 관영 방송을 통해 많은 분량의 화면을 지도자의 얼굴로 채운다. 그만큼 시각물이 정치에서 갖는 비중이 큰 사회다.
이번 리포트는 역사, 정치, 문화연구, 도상학, 기호학 등을 아우르는 시각연구(visual studies)의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미첼(W.J.T. Mitchell, 1994)이 제시한 '영상 전환(pictorial turn)' 이후의 이 관점은 이미지를 현실의 객관적 재현도, 단순한 장식도 아닌, 신념과 가치, 신화와 정체성을 전달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인공물로 본다. 특히 정치 이미지는 설득과 조작의 기능을 수행하므로, 분석을 통해 숨겨진 기획 의도를 드러내고 해체할 수 있다.
카메라 앞의 김정은은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을까. 대중의 지지를 얻기 원하는 모든 정치인은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쓴다. 특히 권력이 독점된 사회의 수장들은 사전 지침과 검열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원하는 이미지만 생산되도록 할 수 있다. 지난 15년간 북한 최고 권력자의 이미지 정치가 보여준 패턴과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자의 편의에 따라 시대를 네 단계로 나눴음을 먼저 밝힌다.
1. 정통성 계승 이미지 (2011~2014)
처음 김정은이 20대의 젊은 얼굴로 북한 대중과 전 세계 미디어 앞에 나타났을 때, 외부 관찰자들은 어린 나이와 정당성의 한계 때문에 북한을 제대로 통치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북한 내부의 반응이 관측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시대의 경제적 궁핍과 대비되는 김일성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을 김정은에게서 발견하고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 등이 있었다. KBS 공용철 PD는 『민족화해』 통권 59호(2012년 11·12월)에서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의 인민 중시 정책과 시장 규제 완화 등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갖기 시작했으며 지도자에 대한 충성 맹세 분위기까지 있다'고 평가했다.
김일성을 닮았다는 특징이 먼저 인지되었든, 김일성과 닮은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김정은과 선전 담당자들의 노력이 먼저였든 상관없이, 집권 초기 김정은은 김일성을 닮은 이미지로 대중 앞에 등장했다. 외국에서 공부한 20대 젊은 세대와 어울리지 않게 밀짚모자를 쓰거나 속옷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소탈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인민들과 신체 접촉도 스스럼없이 하는 행보를 연출하기도 했다.
목소리도 달랐다. 김정일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중 앞에서 단 한 문장,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열병식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는 말만 남겼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에서 20분간 대중 연설을 했고, 2013년 1월 1일에는 조선중앙TV를 통해 육성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일성이 1994년 1월 육성 신년사를 낸 이후 19년 만의 일이었다.
각종 행사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김정일 시대에는 최고지도자의 활동이 촬영, 편집, 검열을 거친 뒤에야 방송되었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에는 2월 16일 김정일 생일 열병식, 3월 25일 김정일 사망 100일 추모대회,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과 축포 야회가 잇따라 생중계되었다. 미숙함도 드러났다. 2012년 4월 17일 인민극장 공연 생중계에서는 30분 동안 공연이 시작되지 않아 카메라가 빈 무대와 객석만 번갈아 비추기도 했다.
사진의 형식도 달라졌다. 2013년 중반 무렵부터 배경을 흐리게 날리고 인물만 선명하게 살리는 사진, 망원렌즈로 당긴 얼굴 클로즈업, 드론으로 내려다본 항공 사진이 김정은 보도에 눈에 띄게 늘었다. 집단 속의 지도자를 보여주던 사진이 지도자 한 사람에게 시선을 모으는 사진으로 옮겨갔다. 김정은의 이미지 전략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유사했다.
정통성의 이미지는 공포로 완성되었다. 2013년 12월 9일 조선중앙TV는 당 정치국 확대회의장에서 장성택이 보위부 요원들에게 끌려 나가는 장면을 방송했고, 12월 13일 노동신문은 두 손이 묶인 채 고개를 숙인 장성택의 사진과 함께 처형 소식을 전했다. 숙청은 그보다 먼저 화면에서 시작되었다. 12월 7일 재방송된 기록영화에서 장성택의 모습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처형되기 닷새 전이었다. 1980년대 이후 북한이 정치 엘리트의 숙청 장면을 직접 보여준 것은 처음이었다. 사라지게 하는 숙청에서 보여주는 숙청으로의 전환이었다.
2. 국제 사회를 모방한 이미지 (2015~2018)
아버지와 할아버지 시대의 이미지 정치를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김정은은 권력이 어느 정도 안정된 2015년부터 국제 사회의 정상 국가 지도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전환의 신호는 옷에서 먼저 나타났다.2012년 4월 12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노동당 제1비서 추대 소식을 전하며 양복에 넥타이 차림의 대형 사진을 실었다. 화면 오른쪽 위에서 내려오는 빛을 비롯해 최소 세 개 이상의 조명을 쓴, 공들여 찍은 사진이었다. 양복 차림의 김정은이 공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김정은은 양복을 입었고, 같은 달 공작기계 공장 현지지도에서도 양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인민복을 입어야 할 자리에 양복을 입은 첫 사례였다. 신년사 복장도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인민복에서 2017년과 2018년에는 양복과 넥타이로 바뀌었다.
같은 시기 미사일 발사는 하나의 미디어 이벤트가 되었다. 기술 정보 노출을 우려해 저해상도 사진만 내놓던 북한은 이제 발사 장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해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핵과 미사일은 협상의 밑천이었고, 그 밑천을 보여주는 방식부터 세련되어졌다. 다분히 국제사회를 의식한 보여주기 방식의 전환이었다.
정상국가로의 모방은 2018년에 도드라졌다. 정상국가 영부인처럼 리설주의 역할은 계속 이어져서 남북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날 때도 부부 동반 모임의 형식을 이어갔다.
김정은은 미국 대통령처럼 최고지도자를 상징하는 엠블럼을 디자인한 뒤 자신의 승용차와 포디엄, 마이크, 컵 등에 금색으로 붙이기도 했다. 이 엠블럼은 2018년 3월 첫 중국 방문 때 이미 차량 하부에 등장했고, 5월 다롄 회담 때는 전용기 참매 1호의 동체에서 인공기를 지우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국가를 상징하던 자리를 지도자 개인의 표지가 대신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문장(紋章)이 대통령 전용기와 전용차, 연설대에 두루 쓰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미국 대통령이 이동할 때 노출시키는 경호팀처럼, 양복 입은 경호원들을 자신의 차 주변에 배치해 위력을 과시하는 방식도 예전 북한에서는 없던 이미지였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검은 양복의 경호원들이 김정은의 차량을 둘러싸고 함께 뛰는 모습은 미국 비밀경호국이 대통령 전용차 '비스트' 곁을 달리는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전용차 메이바흐를 화물기로 미리 실어 보내고, 똑같은 차 두 대를 함께 운행해 어느 차에 지도자가 탔는지 알 수 없게 하는 방식도 미국의 관행과 같았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김정은은 국제 사회 지도자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언론에 노출되었고, 자연스러운 사진 촬영에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카펠라 호텔의 악수 장면 뒤에는 성조기와 인공기가 6개씩 나란히 섰다. 같은 수의 깃발, 같은 높이, 같은 간격. 북한이 공들여 만든 '동등한 프레임'이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와 똑같은 서류철을 들었고, 그 겉표지에 자신의 엠블럼을 새겨 넣었다.
3. 봉쇄의 이미지 (2019~2022)
김정은의 이미지가 큰 변화를 겪은 것은 2019년 2월 미국과의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다. 싱가포르에서 국제 사회 지도자와 같은 방식으로 카메라 앞에 섰던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미지 장치가 관리할 수 없는 장면을 맞았다. 합의문도, 서명식도, 성공적인 귀환 장면도 없었다.
북한이 내놓은 답은 백마였다. 2019년 10월과 12월, 두 달 사이에 김정은은 두 차례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백마 위의 지도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복자와 군주를 상징해 온 오래된 도상이다. 북한에서 백두산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서사가 깃든 곳이다. 사진이 없는 그 시대를 북한은 그동안 그림으로 채워 왔다. 김정은은 그 서사를 자신의 몸으로 다시 연기했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미국과의 협상 대신 자력갱생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코로나가 겹쳤다. 2020년 1월 국경을 닫은 북한은 외부 세계와의 시각적 접촉도 함께 차단했다. 국제 무대에서 북한 지도자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지도자가 보이지 않자 외부의 오독이 시작됐다. 2020년 4월 김정은 위중설과 사망설이 퍼졌고, 한국과 미국의 주가와 환율까지 흔들렸다. 그러나 5월 1일 김정은은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정보가 되고, 그 공백이 오독을 낳는 구조를 보여 준 사건이었다. 그 구조는 6년 뒤인 올해 10월에도 그대로 반복됐다.
이 시기 김정은은 군사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무기를 고도화하고, 각종 무기 시험 현장에 나타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2022년 11월, 이 군사 이미지 안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현장이었다. 노동신문이 실은 사진 23장 가운데 5장에 김정은과 함께 선 어린 딸, 김주애가 있었다. 후계의 이미지는 미사일을 배경으로 시작됐다.
4. 레버리지의 이미지 (2023~2026)
봉쇄의 시기를 지나며 김정은은 새로운 협상 상대를 찾았다. 러시아다. 2024년 6월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북한 이미지 정치가 얼마나 정교한 연출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 줬다. 김일성광장에는 레드카펫과 임시 구조물이 설치됐고, 유치원생까지 포함한 수만 명의 주민과 군인이 대기했다. 김정은이 커튼 뒤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오는 장면, 행사를 총괄하는 현송월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순간, 정각을 가리키는 시계까지, 영상은 몇 달간 준비된 무대의 뒷모습을 드러냈다.
2025년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는 김정은이 시진핑, 푸틴과 나란히 섰다. 북·중·러 지도자가 함께 이 망루에 선 것은 1959년 김일성·마오쩌둥·흐루쇼프 이후 66년 만이었다. 다음 날 노동신문은 1~3면에 걸쳐 46장의 사진을 실었다. 국제 제재를 받는 나라의 지도자가 세계 최대 강국 정상들과 같은 높이에 섰다는 사실, 그 한 장면이 곧 메시지였다.
러시아와의 밀착은 국내에서 새로운 과제를 낳았다. 러시아 파병과 전사자다. 북한은 죽음을 관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2025년 8월 귀환 장병 표창 행사 영상에서 유가족의 눈물은 보였지만 울음소리는 지워졌다. 그 자리를 아나운서의 해설과 음악이 채웠다. 2026년 4월 26일, 쿠르스크 해방 1주년에 맞춰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행사는 해 질 무렵 시작돼 밤의 추모 공연으로 이어졌다. 노동신문은 80여 장의 사진을 실었다. 전쟁의 죽음은 국가의 의례 속에서 결속의 언어로 바뀌었다.
그리고 2026년 올해 10월 11일, 노동당 창건 81주년을 맞아 국방혁명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20형과 극초음속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 전시장을 채웠다. 김정은은 딸 김주애와 함께 테이프를 끊었다. 무기를 박물관에 넣는다는 것은 위협의 도구를 성취의 기록으로 바꾸는 일이다. 대외적 과시이면서, 우리 국가가 이만큼 강해졌다는 자부심을 인민에게 심어주는 대내 설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북한은 정상국가의 일상을 연출했다. 2025년 6월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준공식은 33분짜리 편집 영상으로 공개됐는데, 불꽃놀이와 드론 촬영, 정교한 시나리오가 올림픽 개막식을 방불케 했다.
같은 시기 노동신문은 인민 생활 선전에도 공을 들였다. 2025년 말 자강도 강계시를 시작으로 2026년 9월과 10월 사이 강계·평성·신의주·평양·나선에 수백 석 규모의 불고기 전문식당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노동신문은 사흘 연속 개점 소식을 실었다. 냉면이 평양의 상징이었다면, 불고기는 전국민의 풍요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기획되고 있다. 같은 달 평안북도 논판양어 사업도 보도됐다. 논에서 메기를 수천 톤 수확했다는 내용인데, 현장 사진 속 노동자들이 인공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국기를 일상의 의복으로 들여오는 것은 나라와 노동과 인민이 하나라는 메시지를 이미지로 연출한 것이다.
사망설이 돌던 올해 10월 19일에는 '전국피복·신발전시회 2026'이 열렸다. 노동신문은 20일 1면에서 김정은이 알록달록한 아동복 마네킹 앞에 서서 제품을 살펴보는 사진을 실었다. 김주애도 함께였다. 김정은은 "시·군의 옷공장들을 비롯한 지방의 경공업공장들에서 생산한 질 좋은 피복·신발 제품들이 중앙의 제품들과 어깨를 당당히 겨루고 있다"며 "이는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청산하고 전국의 동시적·균형적 발전을 목적한 우리 당 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의 뚜렷한 과시"라고 말했다. 불고기, 메기에 이어 아동복까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기는 나라의 이미지가 같은 달 노동신문 지면을 연속으로 채웠다. 미래 세대의 옷 앞에 후계자가 섰다는 것도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국방혁명박물관이 강한 나라를 증명한다면, 불고기와 메기와 아동복은 잘 먹이고 잘 입히는 나라를 증명한다. 무기만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인민의 밥상과 옷차림도 챙기는 나라. 두 방향의 이미지가 같은 달 같은 지면에서 공존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의 중심에 김주애가 자리 잡았다. 국가정보원은 2026년 2월 12일 국회 보고에서 김주애에 대한 평가를 '후계 수업'에서 '후계자 내정 단계'로 바꿨다. 같은 달 김주애는 새 살림집 입주식에서 주민을 직접 껴안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지도자만 하던 신체 접촉을 이제 딸이 한다. 2월 28일에는 홀로 저격소총을 겨누는 사진이 공개됐다. 다른 인물이 한 명도 없는 단독 사진이었다. 3월에는 아버지와 같은 가죽 외투 차림으로 권총을 쏘고, 천마-20 전차를 탄 모습이 이어졌다.
1인 지배의 완성은 가슴에서 확인됐다. 2024년 6월 당 전원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의 가슴에서 김일성·김정일 쌍상 배지 대신 김정은 단독 초상 배지가 처음 포착됐다. 1960년대 말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진 배지의 문법이 바뀐 것이다. 2026년 3월 23일에는 더 상징적인 장면이 나왔다. 최고인민회의 사진에서 김정은 뒤편의 김일성·김정일 입상이 무릎 높이에서 잘린 채 배포됐다. 지도자의 몸은 절대 잘려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반세기 동안 외국 방문객에게까지 강요해 온 북한이 스스로 선대 지도자의 몸을 잘랐다. 화면의 중심에는 김정은만이 있었다.
● 15년의 김정은 이미지 정교하고 전략적
15년을 네 단계로 나눠 보면 김정은의 이미지는 크게 변한 것처럼 보인다. 김일성을 닮은 젊은 후계자에서 미국 대통령을 모방하는 정상국가 지도자로, 다시 고립된 군사 지도자로, 그리고 러시아와 손잡고 딸을 앞세운 1인 지배자로.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민주국가에서도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는 우연히 기록된 초상이 아니라 철저히 기획된 시각적 전략의 산물이다. 다만 독재 국가에서는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가 경쟁과 검증의 과정 없이 생산되고 배포된다. 북한에서 이미지는 권력의 노골적인 언어다. 김정은의 이미지는 상황에 따라, 용도에 따라 기획되었다. 그리고 용도의 변화는 결국 관객의 변화다. 집권 초기 정통성의 이미지는 북한 주민을 향했고, 모방의 이미지는 미국과 국제 사회를 향했다. 봉쇄의 시대 과거의 향수를 일으키는 이미지는 다시 북한 인민을 향했고, 레버리지의 이미지는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다. 북한의 사진은 언제나 누군가를 향해 찍힌다. 15년의 궤적은 북한이 그때그때 누구를 가장 필요로 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다음 15년의 문법은 이미 쓰이기 시작했다. 미사일 앞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등장했던 아이는 이제 홀로 총을 겨누는 모습으로 화면에 선다. 보호받는 아이가 아니라 인민을 껴안고 보호하는 인물로, 관료들이 고개를 숙여 권위를 부여하는 인물로 대중의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다. 사진에 국가의 전략이 담긴다면, 지금 북한이 가장 공들여 찍고 있는 것은 김주애다. 김주애는 현재의 성과와 미래를 함께 상징하는 이미지로 포장되고 있다.
김정일이 숨졌다는 기차 위에서 시작된 계승의 이미지는 이제 다음 역을 향해 가고 있다. 그 계승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두 가지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풍요로운 경제의 증거다. 지금 노동신문 지면을 채우는 김정은과 김주애의 '투샷'은 언젠가 김주애의 '원샷'으로 넘어갈 것이다. 김정일이 그랬듯이, 김정은이 그랬듯이. 북한이 내놓는 이미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전략적이다.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사진01/ 딸 주애와 출품된 신발 살펴보는 김정은 총비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6년 10월 20일 1면에서 지난 19일 김 총비서가 '새 제품 개발과 질 제고 열풍'을 주제로 열린 '전국피복, 신발전시회-2026'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 김 총비서 옆에서 딸 주애가 전시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사진 2/ 대량 살상무기 박물관에 김주애 대동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6년 10월 13일 당 창건 기념일(10일) 81주년을 맞아 제2경제위원회의 국방혁명박물관 개관식이 지난 11일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신문은 사진을 통해 김정은이 딸 주애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16마'를 비롯해 각종 미사일, 초대형방사포, 무인 정찰기, 대전차유도미사일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둘러보는 모습도 공개했다. 노동신문 •뉴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