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 자료

제목34차 한미 국제안보학술회의-2-1 한국안보문제와 일본의 역할

제2패널: 한반도 주변 4국 관계


발표 내용
“정치인, 패러독스, 실행자, 조달자: 한국 안보에 일본의 강화된 역할”
(Mr. James Durand, ICKS)
“남북관계의 중국의 역할" (Mr. Gordon Chang, Forbes.com)
“북한과 지역 안보: 북한 비핵화를 위한 다자적·포괄적 접근”
(Dr. 허남성,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토론자: Mr. William Newcomb, 예)해병대 중장 이갑진, Dr. 윤석준


사회자: 데이비드 맥스웰(David Maxwell, 민주주의 수호재단)

통상적으로 저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유일한 인물로 틸럴리 장군님을 꼽아왔는데, 이제는 그 대상이 2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바로 틸럴리 장군과 비건 대표이다. 여러분도 모두 동의하시겠지만, 오늘 오찬연설을 해주신 비건 대표와 이 분을 소개해주신 틸럴리 장군은 이번 콘퍼런스를 더욱 빛내주신 인물들로서, 우리에게 깊은 통찰의 기회를 부여해주었다고 생각된다. 즉, 틸럴리 장군은 소개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비건 대표는 연설을 통해서, 지금 북한과 관련하여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큰 틀의 그림으로 엮어서 우리에게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그 틀은 오늘 우리가 진행하는 콘퍼런스의 주제들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오늘 오전에 이미 진행한 제1패널과 지금 진행하려는 제2패널,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행할 인권문제 패널에 이르기까지, 모든 패널의 주제와 연계하여 비건 대표는 조목조목 빠지지 않고 그 동안 전개되어 온 모든 과정과 주요 내용들을 언급하였다. 저는 비건 대표야말로 오늘 콘퍼런스에 가장 적합한 연설자였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한반도를 둘러 싼 4국 관계에 대해서 발표와 토론을 들어보기로 하자. 오전에 진행한 제1패널에서 이미 깨우친 사실이지만, 중국의 존재와 그 영향은 특별한 중요성을 띄고 있다. 우리는 북한 문제를 아무런 외부의 영향 요인 없는 ‘진공’의 상태로 들여다 볼 수 없고, 또한 단일의 문제로만 볼 수도 없다. 지역적 관점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우리 패널은 3명의 저명한 발제자들과 3명의 뛰어난 토론자들을 모셨다. 이분들은 진짜 탁월한 군사적 경력들을 지닌 분들로서, 연합적이고, 통합적이고, 범 기관적 배경을 두루 갖춘 그야말로 전사회적 인물들이다. 육군, 해군, 해병 등 모든 군종 출신들이 다 모였고, 재무성 업무를 경험한 사람도 있으며, 탁월한 언론인이자 작가, 분석가, 그리고 학자인 고든 창 변호사도 발제자로 참여했다. 이처럼 다양하고 통합적인 경력과 식견을 지닌 패널리스트들로부터 이 패널은 큰 성과를 도출해내고자 한다.


우선, 짐 듀랜드가 일본에 관해 발제 할 것이고, 이어서 고든 창 변호사가 중국에 관해서 발제 한 다음, 마지막으로 허남성 박사가 북한과 지역안보에 대한 발제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지정토론으로 들어가겠는데, 맨 처음 한국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이갑진 예비역 중장이, 이어서 한국 해군의 예비역 대령인 윤석준 박사가, 끝으로 재무부 근무 경력을 겸비하여 경제제재 문제에 탁견을 지닌 윌리엄 뉴컴이 토론하겠다. 발제와 지정토론이 끝나면, 청중들이 함께 참여하는 질의 응답 시간을 가질 것이다. 매우 활성적이고 역동적인 토론의 장을 기대한다. 발제자에게는 각각 15분을, 지정토론자에게는 각각 10분씩을 할당하겠다. 그러면 짐 듀랜드부터 시작하겠다.


제1발제: “한국 안보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
Mr. Jim Durand (국제한국학저널 편집장)


제 이름은 짐 듀랜드, 국제한국학저널의 편집장이다. 작년에 제가 말했듯이, 우리는 비영리 학술단체로서 외부와의 소통 창구가 열려 있다. 편집자의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안보 전문가들로부터 자주 논문들과 정보 자료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복무할 수 있었던 행운아들은 한반도가 매우 복잡한 환경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틸럴리 장군을 만나러 가야 할 때, 계급에 관계없이 일련의 브리핑을 거쳤는데, 그 브리핑 중 하나가 지휘 관계 브리핑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지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항상 여러 당사자들 사이의 역할을 알아야 하는 일종의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진행했던 과제들 중 하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휘 관계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숀 크레이머 대령의 논문인데, 우리는 유엔 사령부에서의 그의 역할을 추출하여 그것을 출판했고, 다음 호에서는 전 공군 대위로 현재 일본에서 박사과정 학생인 마이크 보삭의 논문을 발표할 것이다. 마이크는 유엔 사령부 후방기지에 대해 썼다. 그 두 기관은 정말 한국의 안보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을 중요하게 해 주었고, 오늘날 일본은 더 이상 첨언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중요하고 합당한 안보파트너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한국의 전통적인 안보 메커니즘에 속하지 않고서 그렇게 작동해왔다. 우리는 사실 일본과 한국을 미국과 엮어서 일종의 영구적인 안보 메커니즘을 구축하려고 할 때마다 실패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과 미국은 동맹관계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직접적인 동맹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제 논문은 정말 이 역설적인 것을 탐구해왔고, 사실 이 문제를 다룬 것이 이번으로 네 번째인데, 처음 시도는 대한민국 해군대학 교환학생 시절이었다. 당시 저는 3국 안보 협력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그 때가 바로 3국 안보 협력이 필요한 단계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 국가이고, 해양 강국이고, 서로 공통의 국가이익을 공유한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그 시기가 90년대 후반이라는 걸 아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당시 미국 정부는 3국 안보 메커니즘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었다. 당시 셔먼 대사와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이 함께 노력했다. 우리는 정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관료적, 문화적, 역사적 장벽들을 극복할 수 없었다. 제가 두 번째로 이 문제를 다루게 된 것은 일본 방위연구소(일본판 국방대학교)의 학생이었던 때였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빅터 차 박사는 3국 안보협력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틀을 주었다. 차 박사는, 기본적인 입장에서 동맹국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동맹국은 아닌 일본과 한국이라는 두 개의 국가를 큰 틀의 3국 동맹 및 협력이라는 시스템으로 엮기 위해서, 미국은 이 3국 사이의 안보 협력에 정말로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제가 일본에서 두 번째로 이 문제에 접근했을 때, 3국동맹의 이론적 타당성은 여전히 유효했다. 하지만 냉전 이후 시대에 우리가 실제로 3국 안보 협력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탐구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또 다시, 역사적 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인하여 3자 또는 한일 양자 간 메커니즘을 확립하는 것이 좌절되었다. 10년 후 브루스 벡톨 교수가 저를 초청하여 이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게 했고, 이제 저는 9/11 이후를 제외하고 똑같은 역동성과 환경을 접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고,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갇힐 것이라고 느꼈으며, 또 다시 어떤 형태의 안보 협력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북한을 제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속 가능한 안보 메커니즘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적대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국제적 지원세력을 투입하는 전시증원계획(RSOI)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살펴봤더니, 두 개의 훌륭한 논문을 참고할 만한 것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숀 크레이머가 UN 논문에서 한 일은, 그가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지휘체계에 대해 논했다. 당시 일본에 있었던 유엔군사령부 휘하에는 930,000명의 병력이 있었는데, 16개국의 전투 병력과 5개국의 의료 지원단이 유엔의 깃발 아래서 싸웠다. 그 사령부는 전쟁 기간 내내 일본에 있었고, 이 기간 동안 한반도에 갈 최초의 병력은 일본을 거쳐서 갔을 뿐만 아니라, 전쟁 기간 내내 일본이 제공한 기지들을 통해 그러한 병력과 물자 이동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RSOI 기능은 전쟁 내내 원활하게 수행되었다. 일본이 1952년에 주권을 되찾았을 때, 일본 정부는 UN이 지정한 일본 주둔 기지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동의하였다.


이것은 1954년 일본 주둔군 지위 협정의 기초가 되었다. 이로써 유엔군에 전투병력을 파견한 16개국과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5개국은 일본에서 유엔이 지정한 기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전쟁 종료 후 해가 거듭될수록 파병국가들의 관심이 줄어들었다. 전쟁 말기에 90만 명 이상의 총 병력이 있었으나, 1950년대 말에는 미군 이외의 유엔참전국들의 병력규모는 대대급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1960년대 말에는 중대급으로, 그리고 1970년대에는 UN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가 6개국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한미연합군 사령부가 창설되었을 때 기본적으로 유엔사 참모진들을 모두 데려갔고, 따라서 1976년부터는 참전국들의 유엔군사령부에 대한 관심도 급속히 축소되었다. 제 생각에 그들 입장에서는 북한은 더 이상 국제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은 물론 유엔군 사령부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대한민국이 비록 가장 큰 병력을 유엔군의 깃발 아래 두고 있었지만, 그러나 한국이 파병국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한국은 유엔군 사령부를 한국에 유치하였고, 미국은 당초 일본에 그것을 설립했으며, 일본은 유엔군 사령부 후방기지를 주관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UNC 사령관의 연속성이 유지되어왔다. 틸럴리 장군을 시작으로 UNC 사령관의 연속성이 이어졌으며, 그는 UN 사령부를 실제로 실행 가능한 사령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28개의 포지션을 추가했다. 그리고 라포르테 장군은 백 명 이상을 덧붙였다. 스캐퍼로티 장군은 "유엔군 사령부 부활"을 주도적으로 추진했고, 그래서 1950년대 후반 이후 처음으로 이 사령부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부활되었다. 그리고 캐나다가 캐나다군 활성화 계획에 입각하여 10명의 장교들을 유엔사 참모진에 배치했다. 영국, 호주가 잇따라 한국에 있는 유엔군 사령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 사령부를 수년간 국제기구로 만들려는 노력과 병행되었다. 이것은 캠프 자마에 설치되어 육군 대령의 지휘 아래 두었다. 2009년경,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노력과 함께, 일본에 있던 고위 육군과 합동 지휘관들은 UNC 후방사령부를 실질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합의했고, 그래서 그들은 호주 연대의 대령을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호주는 계속해서 그곳에 지휘관과 참모들을 보직하고 있다.


이제는 UN 깃발 아래 일본에 있는 UN 지정 기지에 정기적으로 파병국들이 병력을 파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유해 송환식에 가 본 분들은 우리가 북한에 맞서서 함께 뭉쳤던 국제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국제 유해 송환팀으로 판문점에서 유해를 회수할 수 있다면, 우리가 캐나다나 영국이나 호주 선박을 UN 깃발 아래 일본에 들여올 때, 그리고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전념하기 위해서 이 과업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할 때, 진정으로 대내외에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런데 일본에 유엔사 후방기지들이 있기에, 거기에는 님비현상과 같은 기지 갈등 요소가 늘 잠재되어 있다. 저 또한 우리나라 땅에 추가적인 기지들이 더 들어서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일본정부와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유엔사 기지가 일본에 설치된 것을 지지하지만, 사회 일각에 여전히 반대 기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같은 기지가 유엔사 기지이자 또한 미군기지인 현실에서 때로는 기지 확장이나 기지이전에 대한 반대 시위를 목격할 수 있으나, 그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제가 여기에서 언급할 또 다른 문제는 일본이 무기조달 분야에서 한 일이다. 일본은 한국처럼 미국의 무기 시스템을 매우 많이 구입한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미일동맹이 공통의 구도 하에서 같은 무기체계를 활용하여 운용할 수 있는 이점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는 E-2 호크아이, F-35 전투기,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이지스함과 이지스 어쇼어 시스템을 포함한 많은 프로그램에서 이것을 해 왔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 가운데 F-35는 700억 달러에 가까운 개발비를 투입했다. F-35 전투기의 파트너인 나라들도 모두 유엔 파병국들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일본에 드나드는 모든 유엔 병력들 사이에 정보를 상호 교환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제가 또 하나 제기하고 싶은 것은 이지스 어쇼어 시스템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언론에서 마땅히 다루어야 할 문제임에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분명히 일본, 한국, 미국 사이의 3국 협력이 가장 시급한 사례 중 하나이다. 일본은 이지스함 6척, BMD체제를 갖춘 것은 5척, 한국은 3척, 미국은 38척을 보유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는 세계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맞서서 일본을 방어하고,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미군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미·일의 이지스함을 매우 긴밀하게 운용하고 있다.


미국, 일본, 한국 해군은 자주 모여서 탄도 미사일 방어 훈련을 한다. 가장 최근에 그들은 ‘링크 X’라고 불리는 연습을 2017년에 실시했다. 지휘 및 통제시스템에서 가지고 있는 도전을 생각해본다면, BMD는 기본적으로 공통의 운영 체계, 그리고 실시단계에서의 개별적 의사결정을 필요로 한다. 이지스함의 미사일방어체계는 바다에서 시행되는 만큼, 언론의 시선으로부터 이격되어 있고, 따라서 다른 종류의 지상 훈련에서 종종 드러나는 부정적인 홍보의 부작용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해 알고 있고, 벡톨 박사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광범위하게 썼기 때문이다. 일본을 통한 RSOI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탄도 미사일 위협 탐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한·미·일 3국 체계가 모두 함께 운용된다면, 그 능력을 상당히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은 현재 최초로 이지스 시스템을 지상에 구축하는 이지스 어쇼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 나라다. 그들은 북쪽의 게이타 현과 남쪽의 야마구치 현에 각각 1개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것들은 루마니아와 폴란드에 배치된 이지스 어쇼어들과 유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미국인들에 의해 운용되는 미국 정부의 소유가 아니라 일본에 의해 소유되고 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이지스 어쇼어가 할 일은 방어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현재 북한 미사일에 대해서 피켓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들을 도와서 보완해주는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현재 일본은 과거보다 더 향상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따라서 지난 50년과 비교해서 훨씬 더 효율적이고 신뢰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한일 안보 관계나 3국 안보 관계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이룩한 성과이다. 일본은 이제 그 동안 쌓아온 자체의 군사력과 통합작전 운용능력에 바탕하여, 미래의 지휘관들로 하여금 타국의 군대들과 대등하게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을 구축했다.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를 실행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뿐이다.


제가 과거를 되돌아볼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항구와 비행장 문제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것과 관련된 논쟁들은 저의 수준에서 시작되어 제기되었지만, 결국은 틸럴리 장군과 같은 최고위 수준에서 해결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이 문제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군대 동료들과 많은 투쟁을 했다. 일본에 UN이 지정한 7개 기지를 확보하게 하고, 국제사회가 그 기지들을 이용하게 하고 친숙해지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대단한 억제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저는 유엔 병력들이 얼마나 자주 UN 깃발 아래서 일본을 통과하고 있는지를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로 4번째가 되는 저의 일본 관련 발제를 통해서, 저는 결론적으로 한국의 안보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확고하다고 매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