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제목제13회 강좌 -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제13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 강좌
-김정은, 핵 포기 할 수 있나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강연

-2018년 7월 23일(월)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19F




동아일보 2018년 7월 24일 A6면


윤덕민 前 국립외교원장 “한국은 북핵 중재자 아닌 당사자… 압박 유지해야”

“북핵 협상이 촉진되기 위해선 강력한 압박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가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한미 공조를 공고히 하고, 남북 경제협력은 자제해야 한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사진)은 23일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개최한 제13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강력한 대북 압박이 최근 지지부진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원장은 “제재가 형해화(내용 없이 뼈대만 남은 상황)되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 북한에 전략적 손실이 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구조를 풀어놓으면 핵 문제 해결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윤 전 원장은 ‘김정은, 핵 폐기 할 수 있나’란 주제의 이날 강좌에서 “결론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직 핵무기 폐기 결단을 내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앞서 9·19공동성명, 제네바 합의 등과 비교했을 때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윤 전 원장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중국이나 베트남 모델을 좇아 경제 발전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에도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베트남과 중국의 개혁개방 모델은 절대 권력의 유연함이라는 전제가 있다”면서 “권력 집중을 유연화하는 체제 전환 과정에 있어서 김정은이 절대 권력의 50%는 양보해야 베트남과 중국 모델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윤 전 원장은 북한이 ‘파키스탄식 전략’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등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해 핵 보유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사례들을 북한이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새로운 관계’가 곧 전략적 관계를 의미한다고도 지적했다.
윤 전 원장은 “북한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원하며 미국에 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의 위협에 대해 미국의 대중 전략에 협력할 수 있다’는 카드로 나설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북한이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하는 천재일우를 만났다. 미중 대립이 심할수록 최후의 승자는 김정은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전 원장은 “핵 포기 의지가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북한이 하면 된다”며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와 같은 담론이 시장에 나오면 (비핵화에) 희망이 없다”고도 했다. 이어 “정부가 수도권을 방어할 미사일 방어막을 만드는 등 북한에 대해 실효성 있는 억지력을 갖는 식으로 여러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우연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졸업







주간동아 2018년 7월 31일 1149호



“김정은 핵 폐기 결단? 근거 부족하다”


“우리는 북핵 문제 해결의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다. 한미공조를 공고히 유지하고 남북경협은 자제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전략적 손실이 계속 생기는 구조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사진)은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7월 23일 ‘김정은, 핵 포기할 수 있나’를 주제로 개최한 제13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강연에서 “평화적으로 북핵을 해결하려면 실효적 핵 억지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 전 원장 강연의 주요 내용.

북한이 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한 것은 3월 6일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평양에서 한국 대북특사단을 만났을 때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비핵화는 선대유훈”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그가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다’는 내용을 판문점선언에 담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최근 메시지는 2016년 7월 6일 북한이 정부 대변인 성명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다. 여기엔 남핵 폐기와 남조선 주변의 비핵화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과거 여러 차례 북한과 핵 관련 합의를 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있으나 최근 싱가포르 북·미 합의에서는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김정은이 핵 포기 결단을 내렸다고 가늠할 근거가 부족하고, 아직은 아니다.  

최근 북한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열렸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 즉 경제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미·중 대립이 심화할수록 최후 승자는 김정은이 될 수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기막히게 줄타기를 했다. 이런 모습은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겠다고 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동안 외면하던 것과 달리 김정은을 3번이나 만나 달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상황이 바뀐 것이다.  

북한은 지금 ‘핵전력을 묵인해달라.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 핵군축 노력을 하고, 제3자에게 이전도 안 하며, 핵실험도 안 하겠다.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에 협력할 수 있다. 한국보다 더 한 동맹국이 될 수 있다’고 미국을 설득하는 과정일 수 있다. 

트럼프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는 최대한 압박을 가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실질적인 대북 경제제재를 만들었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협상할 때는 뭔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그동안 북한과 협상한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협상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본토가 북한 핵미사일의 공격을 받거나 북 핵물질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테러조직 등에 이전되는 상황을 일단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7년 동안 북한은 핵을 포기한다는 합의 자체는 쉽게 했다. 1992년 남북 비핵화공동선언,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 첫 핵실험 후 나온 2007년 2·13합의 등이 그렇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긴장 상황 높이기, 돌연 협상 제의, 협상 수용과 합의문 발표 등이 네 차례 이상 반복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후속 실무협상을 위해 7월 6~7일 방북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이번에는 김정은이 만나주지도 않았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폼페이오의 뒤통수에 대고 미국이 비핵화를 압박하는 것에 대해 ‘일방적인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도 후퇴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목표로 당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인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라는 표현을 썼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5월 취임 때는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인 PVID(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를 주장했다. 요즘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라는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를 이야기한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얼마 전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에 대해 시간과 속도 제한이 없고 서둘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답답한 상황이다.  

북한은 살라미 전술로 나가고 있다. 북·미 합의의 결렬은 피하되 핵협상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군 유해송환 문제도 종전선언과 연계하고 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까지 트럼프의 체면을 살리고 이해관계를 맞춰주려 할 것이다. 미사일 엔진실험장 정도를 폐쇄하고, 미군 유해송환도 할 것이다. 9월에는 김정은이 유엔에서 연설하고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혹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몇 개를 미국에 보내 해체하는 쇼도 벌일 수 있다.

북한의 핵 포기 결단을 우리는 뭘 보고 판단할 것인가. 먼저 북한이 가진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핵 제조시설을 신고하게 하는 것이다. 북한의 신고를 받아보면 대충 어느 곳에 핵시설이 있고, 어떤 무기를 가졌는지 95%는 파악 가능하기 때문에 핵 포기 의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신고서를 낸 적이 없다. 또 하나는 철저한 사찰과 검증을 수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이 두 가지를 북한이 받아들이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본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우리나라의 담론구조 변화도 우려스럽다. 1990년대 초 북한 영변에서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됐을 때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방산업자들이 결탁해 만들어낸 음모”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왔다. 그런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현지를 사찰하자 “북한 핵카드는 협상용”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자 “미국의 적대에 따른 자위용”이라는 시각이 형성됐다. 최근에는 “먼저 평화협정을 맺고 후에 비핵화를 하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핵 있는 평화가 가능하다’는 담론이 형성되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의 입장이 중요하다. 앞으로 상당 기간 핵무장한 북한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실패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강력한 대북 압박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우리는 북핵 문제 해결의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다. 한미공조를 공고히 유지하고 남북경협을 자제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전략적 손실이 계속되는 구조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면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대북 억지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핵무장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효적 핵 억지력이 없으면 어떤 대북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핵 억지력을 위해 먼저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핵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자동으로 공격할 수 있는 독트린, 즉 핵우산의 신뢰성을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해안에 미국의 공격형 핵잠수함을 두고 한국과 미국이 공동 관리하는 방법도 있다. 또 하나는 수도권을 보호할 미사일방어막을 갖추는 것이다. 현재 수도권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확실한 ‘킬 체인’(북한 미사일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공격하는 방위 시스템) 구축으로 대한민국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가장 급박한 일이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