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논문

제목[강은아] ‘공짜’가 당연했던 탈북청년 “롯데월드 가던 날, 빈손으로 나갔다가…”



(상편에서 계속) 김여명 씨의 부모님은 목숨을 걸고 넘어온 남한 땅에서 자식들에 본보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렇게 두 분 모두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이 남한 땅에서 어떻게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다고요. 본인들이 누려야 할 많은 걸 포기하며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사셨어요. 그래서 박사 학위도 받으셨어요. 그런 부모님을 정말 존경하고, 전 무엇이든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10년이 넘게 걸린 부모님의 공부는 단 한 번도 가족 여행이나 외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늘 바빴고 또 늘 가난했다. 그런 환경은 김 씨에게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김 씨는 어려서부터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때부터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뭐든 잘 만드는 능력을 키우고자 기계공학과에 들어갔고, 정말 최선을 다해 다양한 지식을 익혀 나갔다.


김 씨는 지난해 중국에서 3D 프린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빠르게 변화하는 ‘블록체인’이라는 신 분야를 접했다. ‘공공거래 장부’라고 불리는 블록체인은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해킹을 막는 ‘암호화’ 기술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 씨는 ‘인블록’이라는 블록체인 개발회사를 설립했고, 현재 4명의 이사진을 포함한 총 8명의 구성원들이 회사를 일궈나가고 있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블록체인을 개발해 판매합니다. 지난 6월엔 법인 설립을 완료했어요. 사실 시작은 학교 동아리였어요. 제가 올해 초에 한양대에서 블록체인 동아리를 만들고, 거기에서 만난 뜻이 맞는 친구들과 사업을 시작한거죠.”


 
그렇게 김 씨는 꿈을 이뤘고, 지금도 이뤄나가고 있다.



탈북청년이자 인블록 대표 김여명 씨.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공짜’는 당연한 게 아니더라고요”



김 씨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지냈다. 그런 김 씨에게 ‘공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배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차를 탈 때 돈을 낸다는 개념 자체가 김 씨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탈북민 정착을 위해 운영하는 제도 중에 ‘멘토링’ 제도가 있어요. 중학생 때 고등학교 형 누나들이 공부도 가르쳐주고, 롯데월드 같은 재미난 곳도 데려가줬죠. 어느 날 제 멘토 형이 롯데월드에 가자고, 지하철 역 앞에서 보자고 해서 나갔어요. 그렇게 개찰구 앞으로 갔는데, 형이 표를 사자고 하는 거예요. 돈을 주고 표를 사야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거였죠. 하지만 전 한 푼도 챙겨가지 않았어요. 그런 개념 자체가 제 머릿속엔 없었거든요. 그 때 그 형의 난감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결국 형이 교통비며, 입장료까지 전부 내줬어요. 밥도 사줬죠. 그때 느꼈어요. 뭔가를 그냥 받는다는 게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걸요.”

김 씨는 탈북민 정착을 위해 나라에서 받는 모든 지원과 혜택 역시 공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 세금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그만큼 언젠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너무나 절실하게 느낀다. 


사업을 하며 월급을 주는 입장이 된 김 씨는 늘 직원들에게 똑같이 월급을 준다. ‘성과급’에 대한 개념이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왜 업무 강도를 따져서 월급을 차등해 줘야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똑같이 주고, 그만큼 똑같이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내가 받을 것만 생각하면 되는데, 자꾸 남과 비교하는 동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원래 자신의 성향인지 아니면 탈북민이라 갖게 되는 특성인지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사회주의권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그렇다는 주변인들의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저도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원래 제 성향이 이런 건지, 아니면 정말 탈북민의 특성인건지 혼란스럽죠. 그래서 전 저를 탈북민이 아니라, 개인으로만 바라봐주길 바라요. 정치, 이념 같은 것과 상관없이 그냥 저 개인으로요. 그게 탈북민이어서 생긴 가치관이든, 아니면 원래 제 성향이든 어쨌든 그게 저인 거잖아요.”



평양이 북한의 전부가 아니다



김 씨는 통일이 된다면, 남북 간 이질적인 요소를 없애는 중재자가 되고 싶다. 남북을 모두 겪은 자신은 양쪽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씨는 남북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북한에선 접하기 힘든, 그러나 남한에선 너무나 발달되어 있는 IT기술을 가르치는 상상을 하곤 한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미리 아는 것이다. 유튜브에 떠도는 북한 관련 영상들 중 북한을 정확히 담고 있는 건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오해도 많고, 남북이 계속 멀어지는 느낌만 든다.

“사실 남한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평양’이 전부인 거 같아요. 하지만 평양은 정말 일부거든요. 진짜 북한을 알기 위해선 평양이 아닌, 다른 지역을 들여다봐야 해요. 제가 살았던 남포만 해도 평양과는 다른 세상이었죠. 제대로 된 진짜 북한의 실상을 아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김 씨는 최근 홈페이지 하나를 만들었다. ‘노스 스페이스’라는 이름의 사이트에는 앞으로 평양이 아닌, 북한의 다른 지역들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꾸준히 올릴 예정이다. 이를 통해 평양 사람이 아닌, 일반 북한 사람들이 입는 옷, 먹는 음식, 생활 모습을 공유하고 싶다.
“제가 생각해왔던 통일을 위한 방법 중 하나를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진짜 북한을 제대로 알리는 거죠. 사진 한 컷, 한 컷이 주는 이미지는 엄청난 힘을 갖겠죠. 좋은 사진기도 사서 북한에 보내주고 하려면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할 것 같아요. 하하하.”

강은아 채널A 국제부 기자 euna@donga.com